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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Mar 08. 2021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41

최초의 "3,600보 화성"은 어떤 모양일까?

정조는 규모를 성역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하였다. 그런데 규모의 결정을 가장 늦게 하였다. 왜 그랬을까?


최초의 "3,600보 화성"은 어떤 모양일까?


화성에 오시는 분은 대부분 팔달산에 오르신다. 서장대에 서면 수원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화성 전체 모양도 볼 수 있다. 전체 길이는 4,600보(5.4km)로 의궤에 "화성전도(華城全圖)"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최초 계획은 3,600보였다. 축성 기본계획인 "어제성화주략(御製城華籌略)"에 기록되어 있다. 이 계획은 정조의 지시로 정약용이 만든 "성설(城說)"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아쉽게도 성의 윤곽을 볼 수 있는 그림은 없고 3,600보(4.2km)라는 숫자만 남아 있다.


과연 최초의 화성, 즉 "다산의 3,600보 화성"은 어떤 모습일까? 무척 궁금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바뀐 부분을 찾아보자. 먼저, 공사 중 변경이 있었을까? 


성 쌓기는 1794년 1월 25일에 시작해서 1796년 8월 18일에 완료한다. 이 기간에 성의 모양이나 규모를 변경하였다는 기록은 없다. 그렇다면 착공 전에 변경이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럼에도 어느 화성 연구가의 저서에 "축성하는 과정에서", "현장에서 조금씩 변경해서", "축성 공사를 진행하면서 성벽의 전체 길이가 1,000보 늘어남에 따라" 등 사실이 아닌 내용이 실려있다. 

완공 당시의 화성 전체 모습이고, 현재도 똑같은 모습이다. 한글본 정리의궤의 색채 화성전도이다.

착공 전 어느 시점에 변경되었을까?


정조가 정약용에게 지시해 만든 축성 기본계획 "성설(城說)"이 1792년에 완성된다. 그리고 1794년 1월 25일 착공식을 한다. 둘 사이에 긴 시간이 있었음에도 막상 착공 직전 2개월은 숨 가쁘게 돌아간다. 책임자 임명, 현지조사, 돌 뜨기 시작, 입표정기(立標定基), 성지개기(착공식, 城址開基)까지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진다.


입표정기(立標定基)란 길이를 재며 성터를 정하고, 성을 쌓을 위치에 깃대를 꽂아 표시하는 것이다. 정조는 수원 전체와 깃대 표시를 살펴보고 여러 지적을 한다. 바로 이때 화성의 모습이 대폭 바뀌고, 현재와 같이 최종 확정된 것이다. 이렇듯 정조의 지적으로 대폭 바꿔 확정된 사실에도 불구하고 공사를 진행하며 조금씩 바뀌었다는 연구가들의 발표는 의아하다.


깃대로 표시한 성, 즉 최초의 계획 "3,600보 화성" 모양을 필자가 지도로 만들어 보았다. 세련되지 못하나 세계 최초로 발표되는 것이다. 정조의 지적을 거꾸로 감안하여 만들었다. 깃대 위치를 추적한 내용은 아래에 자세히 담았다.


지도를 보시면, 전체가 현재의 "4,600보 화성"이고, 붉은색 선 부분이 최초로 계획한 "3,600보 화성"이다.

붉은 선이 최초의 "3,600보 화성"이다. 붉은색 직선이 없어지고 푸른색 선으로 바뀌어 현재의 화성 모습이 된다.

정조는 이틀간에 걸쳐 답사를 하고 여러 지적을 한다. 최초의 계획에 대해 정조는 어떤 지적을 했을까? 지적을 감안하여 깃대 위치도 함께 가늠해 보자.


첫 번째 지적은, "깃대가 북쪽 마을을 지나가니, 인가(人家)가 많이 훼철될 것(將多毁撤)이고, 깃대 세운 것을 가늠하여보니 성 밖으로 나갈 인가가 꽤 많을 듯하다(人家之當 出城外者)"라고 지적한다.


이 지적에서 깃대 표시가 행궁 기준 북쪽 마을 인가 가운데를 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깃대 밖으로 많은 인가가 있다는 것이다. 북쪽 마을은 대략 지금의 장안사거리 동서축(軸)의 북쪽으로 보면 된다.


두 번째 지적은, "득중정(得中亭)과의 거리가 불과 백 수십 보로, 성(城)이 마치 행궁의 담장처럼 보인다(不過百數十步 殆若墻面)"라고 지적한다. 백 수십 보를 170보 정도로 보면, 행궁에서 200미터 정도 떨어져 깃대가 꽂혀있던 것은 확실하다. 


지명이 확정되어 있고 수치가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3,600보 지도"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무슨 근거인지 몰라도 지금까지의 정설은 서문에서 북수문까지 직선이었다. 이 직선은 득중정에서 백 수십 보의 범위를 2배 이상 북쪽으로 벗어난 곳이 된다. 

정조는 용연에 서서 용두를 감싸고 성을 쌓으라고 지시한다. 각건대, 방화수류정, 용연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세 번째 지적은, "성터의 남북 간 거리가 너무 가까우니(南北相距 亦爲太近) 이것은 먼 미래를 경영하는 도리가 아니다(非經遠之道)"라고 팔달산 정상에서 내려다보고 지적한다.


이런 언급으로 보아 깃대를 꽂은 전체의 모습이 남북으로 좁고, 동서로 긴 모양이었음이 확실하다.


네 번째 지적은, "용연(龍淵) 위에 우뚝 솟은 용두(龍頭)는 정기와 신령함이 있고, 물막이 역할(有捍水之功)도 하니, 마치 화성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용두를 둘러쌓아야 좋다(此迤築爲好)"라고 지적했다.


용두는 현재 방화수류정 자리로 용연 위로 높이 솟은 바위를 말한다. 용두암이 깃대 표시밖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다섯 번째는, "계획에 맞추려 내문성에 석성을 쌓아 사각(砂角)을 밖으로 물리고(以讓砂角), 외문성에 토성을 쌓아 내문성을 보호(以護內城)하려는 뜻은 알겠다. 하지만 내 뜻은 외문성에만 성을 쌓아 내문성을 성 안으로 싸 들이는 것이 좋다"라고 하였다. 

계획 때문에 내문성에 석성을, 외문성에 토성을 계획했으나, 정조는 외문성에만 성을 쌓아 내문성을 성 안으로 들이라 지시한다.

수원의 동북쪽은 풍수(風水) 상 내문성과 외문성(文星)이 겹쳐 있다. 계획 3,600 보라는 제약 때문에 내문성에만 성을 쌓으려 한 것이다. 이 지적에서 외문성은 깃대 표시밖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문성(文星)은 풍수(風水) 용어이다.


이상의 5가지 지적과 깃대 표시를 감안하여 "3,600보 화성" 지도를 국내 최초로 발표하게 되었다. 귀중한 자료다. 근거도 충분하다.


이런 지적이 있은 10일 후 착공식을 갖는다. 다산이 부친상(父親喪) 임에도 기본계획 "성설(城說)"을 완성해 제출한 것이 1792년이다. 정조는 "성설"이 완성된 후 1년 반을 흘려보내고, 착공을 10일 앞에 두고 규모를 확정한 셈이다.


더구나 정조는 "규모를 무엇보다 먼저 확정해야 한다(先定規模)"고 강조하였다. 기본지침인 "어제성화주략"에도 규모를 제1항에 싣고, "비용은 모두 이것을 기준으로 삼아라(以此爲準)"라고 공표할 정도로 성의 규모(푼수, 分數)는 정조의 가장 중요한 지침이었다.


"성설" 완성 후 1년 반의 세월을 정조는 허비하였다. 필자는 이런 정조의 행위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왜 이리 늦게 성의 규모를 확정했을까?

정조는 다산의 "성설(城說)"이 만들어진 후 1년 반이 지나고, 착공식을 10일 앞두고 성의 규모를 결정하였다. 이해가 안 가는 처사이다.

우선 1년 반 동안의 정조의 주요 일정을 추적해 보자. 현륭원 이주민 안정화, 수원 유수부 승격, 공사기간 협의, 공사비 조달 논의, 석산 찾기 등의 일정이다. 내용을 보면 공사 착수 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안문제(Critical Items)인 것은 사실이다. 


경비 조달 방법을 확정하고, 석산을 발견하였다는 보고를 12월에 받는다. 곧바로 총리대신, 감동당상을 임명하고, 착공식까지 2개월 이내에 모든 일을 해치운 것이다.


정조의 2대 고민이었던 "공사비 마련"과 "돌의 확보"가 해결된 것이다. 이에 자신감을 갖고 정조는 마음에 품었던 규모로 확대한 것이다. 마음속에 품었던 것은 바로 "웅대한 화성"이었다. 시간낭비가 아니라, 시간을 기다린 것이다. "돈"과 "돌"을 기다린 시간이었다.  

정조가 마음에 품고 있던 화성은 "3,600보 화성"이 아니었다. "웅대한 화성"을 위해 "돈"과 "돌"을 기다린 것이다. 사진은 화서문과 장안문 밖 옛 모습니다.


규모의 변화를 살펴보며, 최초로 최초의 "3,600보 화성"을 만나 보았다. 경중(輕重)과 선후(先後)를 분명히 한 정조(正祖)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21세기 최대 덕목인 분별력(分別力)을 엿보았다.


최초 계획에서 1,000보를 늘린 정조의 "속마음"은 바로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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