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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Feb 22. 2021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39

잃어버린 홀(笏) 형 화성을 찾아서

아름다운 형상의 "홀(笏) 형"을 계획하고도 실제로는 왜 없을까?


잃어버린 홀(笏) 형 화성을 찾아서


"정약용은 화성에 무엇을 남겼을까" 편에서 다산의 "성설(城說)" 8개 항 중 성 쌓는 제도, 즉 성제(城制)에 대해서만 아주 좋은 제안이라고 평가하였다. 이 글을 읽으신 독자께서 2가지를 지적해 주셨다. 


하나는, "다산이 성설을 쓰기 전에 현지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어떻게 확정합니까", 그리고 "화성은 실제로는 다산이 제안한 방법과 다르게 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홀(笏) 형으로 쌓은 곳이 어디입니까"라는 말씀이셨다. 


다산의 성 쌓기와 화성의 성 쌓기는 같을까? 다를까? 탐험을 떠나보자.

조선시대 관직이 있는 사람이 임금을  만날 때 관복을 입고 손에 들었다는 홀(笏)이다. 모양이 수직선이 아니라 약간 휘었다.

"성제(城制)"란 성화주략 중 "성 쌓는 제도"에 관한 지침이다. "성의 높이를 3 등분하여 아래의 3분의 2까지는 매 층의 차를 1치씩(每層差以一寸) 점점 안으로 좁힌다. 위의 3분의 1부터는 매 층의 차를 3푼씩(每層差以三分) 점점 밖으로 넓힌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쌓으면 "성의 모양이 3분의 2까지는 안으로 축소되어 들어간 듯하고, 그 위는 밖으로 약간 벋은 것처럼 보여" 모양이 홀(笏)과 같아 "홀 형(笏形)"이라 부른다. 홀이란 벼슬아치가 관복을 입었을 때 손에 갖고 있는 물건을 말한다. 사진을 참고하면 된다.


이 모양으로 한 이유로 "아래 부분은 안으로 좁아들어 무너질 리가 없고(無以潰圮), 위 부분은 처마 같아 뛰어넘을 수 없게(無以踰越) 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낙안읍성의 성 쌓기 제도를 볼 수 있다. 수직선으로 쌓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세련되고 아름다운 선은 아니다.


현재 화성이 홀(笏) 형이 아니라는 주장은 여러 문현, 그리고 학자들도 같은 의견이다. 그중 "화성성역의궤 건축용어집"을 보자.


홀(笏) 형에 대해 "실제 축성 과정에서 성벽을 과연 홀 형으로 했는지 좀처럼 확인이 되지 않는다. 현재 화성에서 홀 형을 한 곳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마 실제 축성과정에서 매우 소극적으로 수용되었거나 거의 실현되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된다"라 하였다.


또한 규(圭) 형 성제에는 "현재 화성의 성벽에서 홀 형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돌로 구축한 성벽에서 규형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토압에 의해 사라진 것인지 당초부터 적용을 하지 않았는지 분명하지 않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규(圭)와 홀(笏)은 같은 모양의 물건이다. 


"화성성역의궤 건축용어집"은 사실상 화성 연구의 기초 자료이다. 그래서 화성의 어떤 사실에 대해 일반화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하여간 "화성에 홀 형 성제를 계획은 하였으나, 실제로 거의 실시하지 않았다"가 정설이 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적대의 형상을 보고 홀(笏) 형이라 말하고 있다. 적대의 치성은 아래 넓이(下闊), 위의 줄어든 너비(上收)라고 주어진 규격이다.

과연 화성에 홀 형은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다산이 제시한 홀 형 성(城)을 만든 후 현재의 화성과 비교하면 된다. 다산의 홀 형 성을 만들어 드리겠다. 홀 형 성제는 성 쌓는 매 층마다 일정 치수를 물리고 빼내는 기법이다. 따라서 화성의 특별한 2가지 점을 고려해 3분의 2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 키포인트다.


하나는, 화성은 성 높이가 산상성과 평지성이 다르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성을 쌓는 돌인 성석(城石)도 3종류의 크기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 점을 계산에 감안하여야 한다.


자료, 계산 과정을 기록하면 보시기에 복잡할 것 같아 생략하기로 했다. 곧바로 다산의 성제에 의한 홀 형 화성의 단면도(斷面圖)를 보자. 높은 것은 평지성(平地城)이고, 우측은 산상성(山上城)이다. 점선은 곧바로 쌓을 경우의 수직선이다. 평지성은 대성석 3층, 중성석 3층, 소성석 5층으로 모두 11개 층으로 계산된다.

평지성과 산상성으로 나누어 다산이 제안한 화성을 만들어 보았다. 높이의 3분의 2 지점이 중요한 부분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중요한 2곳은 아래에서 3분의 2 지점과 성이 끝나는 지점이다. 평지성을 보면, 아래에서 3분의 2 지점은 성 안쪽으로 22cm가 들어가는 것으로 계산되었다. 이 지점은 돌 쌓은 층으로 7층 윗면이 된다.


그리고 성이 끝나는 지점은, 성 안쪽으로 들어간 치수가 2cm로 계산된다. 들어간 길이에 비해 나온 길이가 작은 것은 아래는 7개 층이고 위는 4개 층인 이유도 있지만, 아래 부분은 1개 층에 1치(3cm)씩 밀어 넣고, 위 부분은 1개 층에 3푼(0.9cm)씩 빼내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산의 홀 형 성 모습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화성에 나가 현재의 화성과 비교해 보자. 높이 파악에 편리하도록 사람의 모습도 축척(縮尺, 스케일)대로 그려 넣었다.

원성의 성 밖으로 둥글게 돌출된 성(먼 곳과 바로 앞)의 단면 경사를 보면 수직선이 아닌 홀 형의 형상을 알 수 있다.


일단 현재 화성 전체에서 수직선 성벽은 보이지 않는다. 화성 이전의 모든 성에서는 수직선 단면을 보이고 있다. 전라병영성, 고창읍성, 낙안읍성 등등. 현재 화성은 모든 곳에서 성 안쪽으로 조금씩 욱여 들어 오르다 위 부분에서 경사도가 둔화되거나, 수직이거나, 바깥쪽으로 나오는 형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형상은 현재의 화성이 홀 형 성제에 따라 축성한 성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원성과 곡성이 만나는 경계선을 보면 홀 형 형상이 잘 나타난다. 또한 돌출된 원성에서도 잘 구분된다.  


계측은 할 수 없으나, 자세히 관찰하면 현재 화성의 아래 3분의 2까지는 체감률(遞減率)이 다산의 제안보다 더 크게 보인다. 안으로 들어간 최대 길이가 홀 형의 계산치인 22cm을 넘는 것 같다.


다산의 "성설" 제안은 사실 중국의 체감률이다. 한국의 젊은 후학들이 실측과 연구를 더 하면, 독창적인 "화성 성벽 체감률"을 찾아내는 학문적 성과도 기대할 수 있다. 체감률이란 줄어드는 비율로 탑신(塔身), 기둥(柱身) 등의 미적 분석에 쓰인다. 

전라병영성, 고창읍성, 낙안읍성 등 화성 이전의 성은 단면이 수직형 성이다. 사진은 고창읍성이다.


그러면 왜 지금까지 아니라고 알고 왔을까? 

성역의 기본지침 "어제성화주략"이 범인이다. 주략 중 홀 형에 "아래의 차(差)는 돌층계처럼(若磴) 안으로 좁아들어 무너질 리 없고, 위의 차는 처마 같아(若檐) 뛰어넘을 수 없게"란 기록이 있다. 


3cm(1치(寸))를 들이밀며 "돌계단(磴)"에 비유하고, 9mm(3푼(分))를 내밀며 "지붕 처마(檐)"에 비유한 과장법 표현이 우리를 착각의 함정에 빠뜨린 것이다. 특히 3분의 2 지점 위 부분에 붙인 "지붕 처마"란 표현은, 수직선 밖까지 튀어나온 모양을 누구에게나 상상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높이 2미터짜리 모형(Mock-Up) 하나 만들면 쉽게 해결될 문제였다. 안이한 대처가 너무 아쉽다. 주범이 "성화주략(城華籌略)"이라면, 공범은 "수원시"라 할 수 있다. 

곡성과 원성이 만나는 코너 부분을 보면 홀 형 성의 형상을 보기 쉽다.


왜 이런 형상으로 계획했을까?


의궤에 "아래 부분은 안으로 좁아들어 무너질 리가 없고(無以潰圮), 위 부분은 처마 같아 뛰어넘을 수 없게(無以踰越) 된다"라고 설명하였다. 무너지고 안 무너지고는 성석의 뒷 길이에 달렸지 성의 형상과는 무관한 것이다. 의궤 설명은 "개념은 중국에 남겨두고 제도만 가져온" 결과의 산물이다. 


역학(力學)의 문제가 아니라, 의장(意匠)의 문제다. 홀 형상은 3분의 2 지점까지를 민흘림기둥 형상으로, 위 3분의 1은 기둥머리(주두, 柱頭) 형상으로 보아야 한다. 이것은 높고 긴 성벽 면에 대한 심리적, 시각적 착각을 예상하여 사전에 교정한 것이다. 또한 단조로움을 탈피하기 위한 디자인 요소로 보아야 한다.  

화성은 성 돌의 자연스러운 다듬기와 홀 형 쌓기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


화성의 성은 성 돌 하나하나의 자연스러운 다듬기, 녹슨 색상, 그리고 홀(笏) 형 쌓기의 조화로 이루어진 성이다. 화성 성벽의 아름다움은 세계 어느 성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아름다운 성이라는 독일 노이슈반슈타인 성도 획일적 입면, 단순한 단면, 일정한 색상과 텍스쳐만 보여주고 있다. 오사카 성을 포함한 일본 성은 자연스러움이나 인간미보다 인공(人工)의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화성에 홀 형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없다고 스스로 지금까지 믿어온 것이다. 

오늘은 화성의 "잃어버린 홀(笏) 형 성벽"을 찾아보았다. 자기를 디딤돌로 내어준 화성의 10만 6천 개 성 돌(城石)에 존경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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