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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Apr 19. 2021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47

적대는 왜 성 안으로 반(半)쯤 들어왔을까?

봉돈도 성 안으로 16척이나 들어왔다. 내탁부의 통로를 침범하면서 왜 들어왔을까?


적대(敵臺)는 왜 성 안으로 들어왔을까?

북문인 장안문(長安門)은 화성의 정문으로 우리나라 성문 중 가장 큰 규모이다. 규모뿐 아니라 가장 완성도 높은 문루와 옹성이다. 문, 수문, 암문은 성에서 가장 취약한 곳으로 수비를 위한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


암문은 위급 시 돌과 흙으로 문을 메워버리는(塡土塞門) 구조로 계획하였고, 북수문은 철전문(鐵箭門)을 설치하고 두터운 벽첩(甓堞)을 덧대었고, 남수문은 장포(長舖)를 설치해 수백 명의 병사가 머물 수 있게(以容衆數百) 하였다.


문(門)의 경우는 문루(門樓), 옹성(甕城), 적대(敵臺)를 설치해 시스템 방어를 구축하였다. 문루는 상부에서, 옹성은 앞쪽에서, 적대는 좌우 측면에서 입체적으로 방어하고 있는 것이다.

적대는 반출반입(半出半入)이라고 반이 성안으로 들어왔다.

이 중 적대는 의궤에 "높은 대 양쪽 가장자리에서 적을 좌우로 살피면, 적이 곧바로 성 아래로 다가오지 못할 뿐 아니라 굽은 살이나 비껴 쏘는 탄환이라도 대 위에 있는 아군에게 미치지 못한다"라고 했다. 높게 만들어 달려드는 적에게 위압감을 주는 전략적 설계이다. 치성 중 가장 높은 이유다.


그리고 구조에 대해 의궤는 "대(臺)의 반쯤은 밖으로 나갔고(半出城外), 반쯤은 성안으로 벋게 했다(半入城內)"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주 독특한 구조이다. 장안문 양옆에 있는 적대를 가 보니 확실히 대의 일부가 성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내탁부 위 통로를 잡아먹으면서 왜 적대의 반(半)이 성 안으로 들어왔을까? 화성 미스터리 중 하나다. 탐험을 떠나보자.

북서적대의 성 안으로 들어온 부분이다. 성 안으로 튀어 들어왔다.

적대(敵臺)는 성에서 가장 취약한 문을 방어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2가지 목표를 세웠다. 높은 대 "고대(高臺) 전략"과 넓은 대 "광대(廣臺) 전략"이다. "높은 대(高臺)"는 오늘의 주제가 아니다. 이미 발표한 "적대 위에 왜 대포가 있을까?" 편에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왜 "넓은 대(廣臺)"를 선택했을까?

하나는, 적대의 방어 범위가 의외로 넓기 때문이다. 앞쪽으로 옹성에서 뒤쪽으로 문루까지가 범위이다. 다른 하나는, 방어 범위가 넓은 만큼 많은 양의 무기와 병력을 운용해야 할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길이가 모든 돌출 시설물 중 가장 긴 47척이다. 어마어마하다.


모두 성 밖으로 돌출시키지 왜 성 안으로 반(半)을 끌어드렸을까?    

성 안으로 들어온 동북노대(東北弩臺)이다. 들어온 길이는 11척이다.

치(雉), 포루(舖樓), 적대(敵臺)와 같은 치성(雉城)은 성 밖으로 돌출시켜 성으로 접근하는 적의 옆구리를 양쪽에서 공격하여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성 밖으로 길게 돌출시킨다고 효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100척 길이로 길게 돌출시킨 치성을 생각해보자. 너무 길게 돌출되면 치성의 기능을 잃고, 오히려 적의 공격에 가장 취약한 부분이 된다. 원성에는 8m가 넘는 내탁 공간이 있으나, 돌출된 치성에는 고작 2m 내외의 공간만 있기 때문이다. 여장 뒤 내탁 공간은 무기와 병력의 비축과 이동 공간으로, 넓이 자체가 방어력을 의미한다. 


반대로 10척 길이로 아주 짧게 돌출시키면 치성의 역할을 못하고 원성에는 방해만 된다. 짧은 길이는 병사 한두 명만 배치할 수 있어 적의 측면을 공격하는 기능이 약화된다. 양 옆 원성에서 보면 오히려 시각적으로 장애물이 될 뿐이다. 


효율적인 치성의 역할을 하려면, 어느 정도의 돌출 길이가 가장 효율적인가 판단해야 한다. 돌출 길이가 길면(細長) 적의 집중 공격을 받는 곳으로 바뀌고, 짧으면(短厚) 치의 기능은 못하고 아군의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전략적으로 최적의 돌출 길이는 얼마까지 일까?      

북서적대가 성 안으로 들어온 부분이 의궤보다 짧다. 성과 적대가 만나는 지점을 잘못 복원하였다.

화성에서 치성(雉城)은 치(雉) 8곳, 적대(敵臺) 4곳, 남공심돈, 서북공심돈, 동북노대, 봉돈으로 모두 21곳이다. 이들의 최대 길이를 살펴보자. 치에서는 동1치가 23척 8촌으로 가장 길다. 포루에서는 동1포루로 23척, 적대는 47척, 동북노대는 31척 5촌, 봉돈은 34척이다.


이 중에서 전체가 성 밖으로 모두 돌출된 치성 중에서는 동1치가 가장 길다. 돌출 길이가 23척 8촌이다.이 이상은 없다. 따라서 이 수치가 바로 돌출 상한선(上限線)이 된다. 즉 치성의 최대 돌출 길이는 24척 전후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치성일 경우 돌출 길이가 24척이 넘으면 안 되는 것이다. 만일 24척이 넘는다면 일정 부분을 성 안으로 들여 넣어야 하는 것이다.


화성에서 24척이 넘는 치성은 적대, 동북노대, 봉돈이다. 돌출 상한선을 지키기 위해 봉돈은 성 안으로 16척을 들여놓아 18척만 돌출시켰고, 동북노대는 11척이 들어오고 밖으로 20척 5촌만 돌출시킨 것이다.


북동적대는 현재 성 안으로 18척을 들여놓아 29척이 성 밖으로 나갔다. 왜 돌출 상한선 24척을 넘었을까? 그 이유는 현재 적대를 잘못 복원했기 때문이다. 성역 당시 원형에는 이 상한선을 지켰으나, 복원할 때 성을 4척 정도 성 안쪽으로 잘못 붙인 것이다.   

성 안으로 들어온 공간은 보조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봉돈에서는 파수하는 군졸의 거처, 땔감 저장소, 기계 창고로 쓰인다.

그러면 치성(雉城)이 아닌 다른 시설물에서 돌출 상한선은 얼마일까? 


돌출된 시설물로는 치성 외에 포병 진지인 포루(砲樓) 5곳이 있다. 포루의 돌출 길이는 29척이다. 따라서 포루의 최대 돌출 길이는 29척이다. 치성에 비하여 상한선이 더 길다. 


왜 더 길게 했을까? 

포루의 전면 벽 두께만큼 더 긴 것이다. 포루는 벽돌 구조로 횡력(橫力)에 약하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벽을 엄청 두껍게 했다. 벽두께가 무려 1.8m이다.  


정리하면, 화성에서 시설물의 돌출 한계는 치성의 경우 24척이고, 포루(砲樓)는 29척임이 밝혀졌다. 


적대를 복원할 때, 왜 적대의 반쯤을 성 안으로 들여야 했는지, 즉 "반출반입(半出半入)"에 대한 개념과 돌출 상한 기준을 알았다면 잘못 복원되지 않았을 것이다.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화성에서 성 안으로 들어온 시설물은 사진의 동북노대와 봉돈, 적대뿐이다.

성 안으로 들어온 부분은 무엇으로 쓰였을까?


주로 보조 공간으로 쓰였다. 적대에서는 활, 화살, 화창(弓箭火槍俱置), 동북노대에는 깃발, 북, 화살, 쇠뇌, 뇌목, 화기 비(常置旗鼓弓弩檑火鞴)의 저장 공간으로 쓰였고, 봉돈은 군졸의 거처(守卒所處)와 기계창고(器械所貯)로 사용되었다.  


적대, 동북노대, 봉돈이 왜 성 안으로 들어왔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내탁부 통로를 잡아먹으면서 돌출 상한선(突出 上限線)을 지킨 치성(雉城)과 포루(砲樓)에서 정조(正祖)의 엄격한 전략적 기준을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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