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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May 10. 2021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50

화성행궁 바깥 구경

화성행궁은 들어가기 전부터 스토리가 있다. 홍살문, 하마비, 금천교, 3 정승목이다.


화성행궁 바깥 구경 


화성을 방문하시는 분은 화성행궁도 방문하신다. 성(城)이 먼저일까? 궁(宮)이 먼저일까? 궁이 없다면 성은 존재할 수가 없다. 절과 부처의 관계와 같다. 부처(佛)가 본질이고 절(寺)은 껍데기다. 


지나쳐버리기 쉬운 행궁 밖의 이야기를 만나 보자.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新豊樓)"가 안과 밖의 경계가 된다. 신풍루 밖의 홍살문(紅箭門), 하마비(下馬碑), 신풍교(新豊橋), 3 정승목(三政丞木)에 대한 이야기다.  

2층 누각이 화성행궁 정문인 신풍루(新豊樓)이다. 그 앞에 3그루의 고목과 붉은색의 홍살문이 보인다. 

홍살문(紅箭門)에 대하여

홍살문은 붉은 칠(紅)을 한 두 개의 둥근기둥을 세우고, 기둥을 연결한 보에 붉은 살(箭)을 여럿 박아놓은 모양이다. 궁(宮)과 관아(官衙)의 입구에 세워 경의를, 능(陵), 묘(廟), 단(壇)에서는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상징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궁, 행궁에 홍살문이 남아 있는 것은 보기 드물다. 화성행궁은 의궤 중 화성전도(華城全圖)에 홍살문이 명확히 보인다. 기록이 중요한 이유다. 

화성행궁의 정문인 2층 누각 신풍루 앞에 서 있는 홍살문(紅箭門)이다.

수원에는 몇 곳이 더 있다. 문선왕묘(文宣王廟) 입구에 홍살문이 있다. 문선왕은 공자(孔子)를 말하고 묘(廟)는 사당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향교(鄕校)를 말한다.   


땅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하는 곳인 사직단(社稷壇)에도 있다. 단(壇)을 에워싼 담(墻)에 모두 4개의 홍살문을 세웠다. 현재 모두 유실된 상태이고, 위치는 원호원 뒷산으로 밝혀졌다. 

사직단에는 홍살문이 사방에 1개씩 모두 4개(Quad)이다. 

사도세자와 정조의 능인 융릉(隆陵)과 건릉(健陵)에도 있다. 왕릉에는 정자각(丁字閣)으로 가는 향어로(香路, 御路)가 시작되는 곳에 홍살문이 세워져 있다.  


융릉의 원찰(願刹)로 세워진 용주사(龍珠寺)의 산문(山門) 앞에도 있다. 사찰 앞 홍살문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용주사를 창건하고 위패를 모셨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얼마 전 위패를 모신 호성전(護聖殿)이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다. 사진은 화재 전 찍은 것으로 위패 자체가 예술이다.

용주사에 모셔졌던 사도세자 부부와 정조 부부의 위패(位牌)이다. 올해 화재로 호성전(護聖殿) 전체가 소실됐다.  

정조의 어진(御眞)을 모신 화령전(華寧殿) 입구에도 홍살문이 있다. 화령전은 201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조 한 임금만을 위해, 지방에 세운 영전(影殿)으로 매우 이례적인 경우이다. 행궁을 거쳐 들어가기 때문에 행궁의 일부로 착각되지만 3문제(三門制)의 출입문을 따로 갖고 있는 행궁 밖 완전한 별도 공간이다. 


화령전의 모든 건물은 단청을 하지 않았다. 제향(祭享)을 올리는 유교건축이기 때문이다. 단묘(壇廟), 향교, 서원은 유교사상의 한 축인 검소(儉素)함을 유교건축의 기본으로 하고 있다. 포작(包作)과 단청(丹靑)에 잘 나타난다.   

정조대왕 어진(御眞)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화령전(華寧殿) 내 운한각(雲漢閣)이다. 이안청(移安廳)과 함께 201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렇게 화성행궁, 화령전, 문선왕묘, 사직단, 융릉, 건릉, 그리고 사찰인 용주사에 홍살문이 있다. 수원이 홍살문이 가장 많은 도시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홍살문, 홍살문 오른쪽에 하마비, 홍살문 바로 뒤에 금천(禁川)과 금천교인 "신풍교(新豊橋)"가 함께 모여 있다.

하마비(下馬碑)에 대하여

하마비는 궁궐, 향교, 사당 입구에 세워, 말(馬)에서 내려(下), 걸어 들어오라는 표석이다.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 즉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말에서 내리십시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하마비와 약간 성격이 다르지만 용주사에도 비슷한 비석이 있다. "도차문래 막존지해(到此門來 莫存知解), 이 산문에 다다르면, 세속의 모든 지식을 내려놓으라"라는 경구가 새겨져 있다.   


하마비는 수원에 화성행궁, 문선왕묘, 화령전, 지지대에 있다. 행궁은 왕이 거처하는 궁(宮)이고, 문선왕묘는 공자가 거처하는 사당(祀堂)이고, 화령전은 정조의 진영이 거처하는 영전(影殿)이다. 수원이 하마비가 가장 많은 도시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참 수상한 도시다.

홍살문 바로 옆에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여기에서는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야 한다.

지지대(遲遲臺)는 1번 국도 의왕시와 수원시 경계에 있는 고개를 말한다. 아버지 능을 참배 후 한양으로 돌아갈 때 이 고개를 지나면 더 이상 능 쪽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정조가 일부러 머뭇(遲) 머뭇(遲)했다 한다. 그래서 발을 떼지 못한 이곳을 "머뭇머뭇한 곳", "지지대(遲遲臺)"라 이름 지었다.  


비슷한 용어 하마석(下馬石)은 말에서 내릴 때 밟는 돌로 화성에는 동장대(東將臺)에 1개가 있다. 행궁 안 정전(正殿)인 봉수당(奉壽堂) 앞에도 있었다 하나 현재는 없다. 정리의궤 봉수당도(圖)에 보이는데, 하마비가 행궁 밖에 있는데 하마석이 행궁 안에 있다는 게 이상하다. 


어머니 혜경궁이 무언가 타거나 내릴 때 사용하는 디딤돌로 추측되기도 한다. 하마석과 달리 2단으로 되어 있어 여성용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치우지 않은 상태에서 그림으로 기록됐을 가능성이다. 하마비 세우기 전 관아(官衙) 시절에는 말이 출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금이 말을 타고 봉수당 앞에 내릴 때 사용한 하마석이다. 그러니까 하마비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에는 당연히 임금은 해당되지 않는다. 성역을 완료한 다음해 1월 원행 시 말에서 내린 기록이 있다. "중양문(中陽門)을 지나 말에서 내리시고, 유여택(維與宅)에 납시었다"     

왼쪽부터 문선왕묘, 즉 수원 향교 입구, 화령전 입구, 지지대비 아래에 있는 하마비이다.

"신풍교(新豊橋)"에 대하여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新豊樓) 앞에 놓은 돌다리(石橋)이다. 행궁 뒷산 북쪽에서 시작한 명당수가 행궁 앞을 지난다. 정문 앞에 설치한 다리인데 길이에 비해 폭이 넓다. 이미 홍살문부터 행궁 밖 어로(御路)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궁궐 앞에 맑은 명당수(明堂水)를 흐르게 하여 궁궐로 출근하는 관리(官吏)들이 그 맑은 물을 보고 마음을 깨끗이 하고, 공정하고, 공평하고, 정의롭게 업무를 보라는 의미가 있다 한다.


"명당수가 악귀를 막아(禁)준다"는 의미에서 내를 금천(禁川), 다리는 금천교(禁川橋)라 부른다. 화성에서는 정문인 신풍루의 이름을 따서 정조가 신풍교(新豊橋)로 바꾸었다. 


정조의 부모가 잠든 융릉(隆陵)에도 금천(禁川)과 금천교(禁川橋)가 있다. 왕릉에서 금천은 속세와 성역(聖域)을 구분 짓는 경계 역할을 한다.  

명당수가 행궁의 왼쪽에서 와서 행궁의 앞을 흐르고 있다. 원래 금천교(禁川橋)이었으나 정문 이름과 같이 신풍교(新豊橋)로 바꾸었다.

끝으로, 3 정승 나무(三政丞木)에 대하여

홍살문을 지나 신풍교 다리를 건너면 행궁 정문인 신풍루 앞에 작은 광장이 있다. 이곳에 380년 된 느티나무 3 그루가 있다. 기품 있고 멋진 나무이다. 이 세 나무를 "3 정승 나무"라 부른다.


안내문에는 380년 된 나무라 되어 있다. 계산해 보니 성역 당시 나무 나이가 160세가 된다. 고목이라서 옮겨 심고 살리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이 세 나무의 배치를 품 자(品 字) 배치라고 한다. 영의정(領議政), 좌의정(左議政), 우의정(右議政) 세 정승이 이 나무 아래에 각각 서서 어진 사람을 맞이하여 올바른 정치를 베푼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한다. 예나 지금이나 인사(人事)가 만사(萬事)이기도 하고, 참사(慘事)이기도 하다.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세 분이 3 정승목처럼, 3 정승목 아래에서 올바른 정치를 할 인재를 맞기 위해 서 있다.


"3 정승 나무"의 기품(氣品)과 심은 뜻을 보며, 사람을 제대로 볼(見) 줄 알고, 키울(育) 줄 알고, 쓸(使) 줄 아는 정조(正祖)의 "견육사(見育使) 정신"을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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