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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May 17. 2021

覘正祖之圖: 정조를 엿보다-51

북암문(北暗門)은 왜 둥근 여장일까?

동암문과 북암문의 여장은 원여장(圓女墻)이다. 왜 이렇게 높고, 큰 둥근 모양의 여장을 했을까?


북암문 여장은 왜 둥근 모양일까? 


화성의 핫 플레이스 용연(龍淵)에서 방화수류정으로 올라가려면 북암문(北暗門)을 지나게 된다. 문 위의 모습이 아주 특이하다. 둥근 모양을 하였다. 이것을 원여장(圓女墻)이라 한다. 암문 중 동암문도 원여장이다.


여장(女墻)이란 성 위에 쌓아 올린 작은(女) 담(墻)을 말한다. 병사가 화살이나 총탄으로부터 피할(타, 躱) 수 있는 시설이다. 높이는 5척(尺)을, 1타(垜)의 길이는 20척을 기준으로 하였다.


원여장의 특징을 살펴보자. 높이는 북암문 원여장이 2.4m, 동암문이 2.2m이다. 의궤 기준보다 북암문이 90cm, 동암문이 70cm 더 높다. 길이는 암문 규모에 맞춰 3.2m 전후이다.


왜 암문 중 이 두 곳만 둥근 여장을 설치했을까? 왜 높게 했을까? 이 또한 화성 미스터리의 하나다.

먼저, 높게 한 이유를 북암문과 동암문만의 특성에서 찾아보자.

북암문도 원여장을 하였다. 방화수류정에서 용연(龍淵)으로 가는 출입문이다.

첫 번째 특성은, 암문은 협축(夾築) 형식의 성이라는 것이다.


화성은 모두 내탁(內托) 형식의 성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문, 수문, 암문은 협축 형식이다. 화성 전체의 3%에 해당한다. 협축이라서 암문 위의 통로를 넓게 만드는데 한계가 있다. 넓게 하면 위급 시 문을 폐쇄(塡土塞門) 하기 위해 흙과 돌을 내리 쏟아 붓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화성에서 성 위의 통로는 8m로 엄청 넓은데, 북암문 위 통로는 1.5m, 동암문은 1.8m로 매우 좁다. 취약한 방어를 보여주고 있다. 여장 뒤 공간의 크기는 방어력의 크기로 직결된다. 많은 병사와 무기를 비축하고 이동도 원활하기 때문이다.


통로가 좁아서 생긴 방어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암문에서 여장 높이를 늘리게 된 것이다. 북암문은 5척에서 3척을 늘려 8척으로 만들었고, 동암문은 5척에서 2척 3촌(寸)을 늘려 7척 3촌으로 높였다. 북암문은 90cm를, 동암문은 70cm를 더 높인 것이다.

성의 통로 폭은 8미터인데, 동암문은 1.8미터, 북암문은 1.5미터에서 그친다. 취약한 방어력을 보완하려 여장의 높이를 늘렸다.

두 번째 특성은, 암문은 화성 시설물 중 가장 작은 시설물이라는 것이다.


암문은 1보(步) 정도 규모로 시설물 중 가장 작다. 바로 위 단계 크기인 치(雉)도 모두 14보가 넘는다. 아무리 작아도 필요한 기본 구조는 있어야 한다. 암문은 바닥, 문, 벽체, 그리고 그 위로 나무판(蓋板)을 깔고, 흙으로 메운 후 벽돌을 덮는 단순한 구조이다. 이것이 최소 구조이고, 여기서 최소 높이가 정해지는 것이다.


암문이 세워지는 지면(地面)에서 최소 높이를 더하면 암문 위 통로 바닥면이 된다. 더 이상 낮출 수 없는 통로 바닥면 레벨(Level)이다. 그런데 이 북암문 위 통로 바닥면이 좌우 성 바닥면보다 높다. 치수로는 북암문이 60cm, 동암문이 40cm가 높다. 그래서 복원된 북암문에는 계단을 두었고, 동암문은 오르막 경사를 주어 병사가 다니는데 지장이 없도록 하였다.


바닥 레벨 차이 문제보다 여장에 더 큰 문제가 생겼다. 암문 위 통로에 병사가 선다면 상체(上體) 부분 전체가 적에게 노출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병사를 은폐해야 하는 여장의 기능이 상실된 것이다.

아무리 작은 암문이라도 최소 기본 구조를 갖추다 보니 통로 위 바닥면이 좌우 바닥면보다 높아졌다.

여장의 기능을 되살리기 위한 대책으로 여장의 높이를 키워야 했다. 북암문에서 90cm를 늘려 전체 2.4m 높이를, 동암문은 70cm를 늘려 전체 2.2m 높이를 만든 것이다. 


앞에서 바닥 레벨 차이가 60cm, 40cm라 했는데, 실제로 여장은 90cm와 70cm를 늘렸다. 왜 30cm를 추가로 늘렸을까?


추가 이유는 북암문과 동암문에 설치한 오성지(五星池) 때문이다. 오성지의 높이 1척, 즉 30cm만큼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협축 구조이기 때문에 여장 뒤 공간이 협소하게 되고, 좁아진 만큼 취약해진 방어력을 보완하기 위해 여장 높이를 늘린 것이다. 또한 암문 최소 높이로 바닥 위 레벨이 높아지게 되고, 높아진 만큼 병사의 상페가 완전히 적에게 노출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여장 높이를 키운 것이다. 


그렇다면 높이만 늘린 채 사각형으로 두지 왜 둥근 모양으로 바꾸었을까? 무슨 이유일까?

암문 위 통로에 병사가 서면 상체 모두가 적에게 노출된다. 여장을 높인 이유다.

첫째, 감시 범위를 더 넓게 하기 위해서다.


필자는 늘린 높이를 기준으로 사각형과 원형인 경우로 나누어 가시각(可視角)을 계산해 보았다(아래 그림). 가시(可視)각은 곧 감시(監視) 범위이다. 은폐와 함께 여장의 중요한 2대 기능이다. 


여장 두께 85cm, 인접한 여장과의 간격은 사각형일 경우 30cm, 원형일 경우 70cm로 하였다. 이 간격은 병사의 눈높이에서 잰 치수이다. 수치가 다른 이유는 원형이므로 위로 올라갈수록 간격이 넓어지기 떼문이다.


결과는 사각형 여장일 경우 40도이고, 원형 여장일 경우 80도의 가시각(可視覺)이 산출됐다. 같은 높이인데도 사각형을 원형으로 바꾸니 가시각이 2배가 된 것이다. 둥근 형태가 사각에 비해 감시범위가 2배로 확장된 효과를 보인 것이다. 

사각형일 경우 가시각이 40도이고, 원형일 경우 가시각이 80도가 된다. 둥근 여장으로 하면 가시각과 감시 범위가 2배로 확장된다.

위로 올라갈수록 열린 틈이 넓어지는 원형 곡선의 특성을 이용한 전략적 설계이다. 비좁은 통로 때문에 병사를 많이 배치하지 못해도 감시 범위를 넓혀주므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대안이 된 것이다.


왜 이렇게 넓게 가시범위를 확보해 줘야 했을까? 


정역용(丁若鏞)은 누조도설(漏槽圖說)에 "문이 있으면 오성지를 설치하라"라고 지침을 박았다. 오성지를 설치하니 여장에 근총안(近銃眼)과 원총안(遠銃眼)을 설치할 공간이 없어졌다. 아예 감시할 수 있는 장치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감시 구멍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사각형 여장을 가시각이 넓은 원형 여장으로 바꾼 것이다. 남암문과 서암문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이 두 암문에는 오성지가 없기 때문에 사각형 여장(平女墻)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둥근 여장인 경우 병사의 눈높이를 기준으로 가시각(可視角), 즉 감시 범위가 넓어진다.

둘째, "찾기 쉽고", "보기 좋게" 만들기 위해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암문은 과연 비밀통로일까?"라는 제목으로 이미 발표한 글을 참고하시면 된다.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화성의 암문은 평시에 백성이 쉽게 사용하라고 만든 문이다. 주로 공업과 상업에 종사하는 백성이 사용하였다. 상공업을 중시한 정조는 하층 상공인의 자부심을 높여 주려고 고급 자재인 벽돌을 사용하고, 크고 둥근 원여장을 설치한 것이다.


정리하면, 약화된 방어력을 보완하기 위해 사각형에서 원형으로 바꿔 감시 범위를 2배로 늘린 것이다.

상공업 하층민에게 자부심을 높여 주려고 고급 자재인 검은색 벽돌을 사용하고 크고 둥근 여장으로 설계했다.

북암문과 동암문에서 왜 높이를 늘렸으며, 왜 원형으로 바꾸었는지 살펴보았다. "형(形, Form)은 기능(Function)을 지배한다"는 격언(格言)의 실체를 정조(正祖)의 둥근 여장 설계에서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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