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강웅 Jun 07. 2021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54

화성행궁 안 구경하기-정조의 노후 계획 1

화성행궁 건축 공간을 통해 정조의 노후 계획을 찾아본다.


정조의 노후계획-휴식과 수양 


"화성행궁 바깥구경" 편에는 행궁에 들어가기 전에 보아야 할 것을 소개했다. 이번에는 행궁 안 모습을  두 번에 나누어 소개할 것이다. 모든 궁궐 건축이 밖에서는 지나치기 쉽고, 안에서는 복잡한 게 특징이다. 


한양에는 여러 궁궐에, 여러 공간이 있다. 하지만 한양 천도 이후 수백 년 동안 여러 임금에 의해 바뀌거나 확장된 것이다. 이에 비해 화성행궁은 한 명의 임금에 의해 완성된 궁이다. 오롯이 정조(正祖)의 생각이 담긴 공간이다. 


그만큼 정조의 뜻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공간 구성에서 정조의 노후(老後) 계획을 가늠해 보았다. "수양(修養), 휴식(休息), 추억(追憶), 기억(記憶)"의 네 단어가 키워드다.

휴식공간의 중심에 노래당(老來堂)이 있다. 앞으로 후원(後苑)이, 뒤로 미로한정(未老閒亭)이 있다.

쉼을 위한 아름다운 공간- 노래당, 후원, 미로한정

젊을 때 열심히 일하고 은퇴 후 충분히 쉬겠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모양이다. 정조도 쉼(休)을 위한 공간을 준비했다. 노래당(老來堂)을 중심으로, 뒤편에 정자를, 앞쪽에 연못을 두었다. 정자는 미로한정(未老閒亭)이고, 연못은 득중정지(得中亭池)이다.


노래당(老來堂)은 낙남헌 뒤편에 위치해 동향을 한 건물이다. 북쪽으로 낙남헌, 남쪽으로 정전(正殿)인 봉수당, 서쪽으로 득중정과 미로한정, 동쪽에 득중정지(池)와 후원(後苑)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야말로 행궁 북쪽 존(Zone)의 중심이다.


"노래당"의 유래는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늙는 것은 운명에 맡기고(老來又委命), 편안히 거처하면 그곳이 고향이다(安處卽爲鄕)"라는 시에서 "노래(老來)"를 따온 것이라 한다. 편액은 성역의 총책임자인 좌의정 채제공(蔡濟恭)이 썼다.


노래당의 특징은 봉수당, 후원, 낙남헌, 미로한정, 득중정의 중심에 위치한 점, 행궁에서 유일하게 홍예문을 설치한 점, 정전인 봉수당이나 어머니 침전인 장락당도 단청을 하지 않았는데 단청을 한 점이라 하겠다.


동쪽 작은 문의 이름은 난로문(難老門)이고, 북쪽 단선(單扇, 한쪽 문)은 가풍문(歌風門)이다. "난로(難老)"는 "행궁에서 늙지 않고 오랫동안 즐거운 생활을 지속하고 싶다"는 의미이고, "가풍(歌風)"은 "노래와 풍류를 즐긴다"란 의미이다.

소박하지만 품격 있는 후원도 마련했다.

노래당을 둘러싼 문에 득한문(得閒門)과 삼수문(三壽門)이 있다. "득한(得閒)"은 "한가함을 얻는다"는 뜻이고, "삼수(三壽)"는 "상수(上壽) 100세, 중수(中壽) 80세, 하수(下壽) 60세"를 말한다. 모두 늙지 않고 한가한 쉼을 희망하는 정조의 마음이 깃들여 있다.


두 번째 휴식공간으로 연못 득중정지(得中亭池)가 있는 후원(後苑)이다. 소박한 규모이나 품격 있게 조성해 놓았다. 행궁 뒤에서 시작한 명당수(明堂水)를 중간에 연결해 취병(翠屛) 안을 지나 연못을 거쳐 나간다. 지형의 고저차를 이용한 자연 급수로 친환경 설계다.


취병(翠屛)이란 관목(灌木)이나 넝쿨식물로 만든 자연 울타리(Hedge Wall)를 말한다. 두께는 50cm 정도이고, 높이는 사람 키를 약간 넘는 정도라 외부에서 보이지 않게 하였다. 상당히 세련된 조경공간이나, 현재 미 복원되어 볼 수는 없어 참 아쉽다. 


세 번째 휴식공간은 행궁 뒷산의 정자인 미로한정(未老閒亭)이다. 위치가 행궁에서 제일 높은 곳이라 먼 곳에서도 정자가 보인다. 마찬가지로 정자에 올라서면 눈 아래 행궁의 수많은 지붕이 장관을 이룬다. 미로한정에 꼭 올라 보시길 바란다. 이름 "미로한(未老閒)"은 "장차 늙어서 한가하게 쉰다"란 의미라 한다. 

늙지 않고 한가로움을 즐기겠다는 의미의 정자 미로한정이다.

성역 후 화성 16경을 봄과 가을로 나누어 김홍도가 그림으로 남겼다. "화성 추8경도(華城 秋八景圖)"의 7번째 그림이 "한정품국도(閒亭品菊圖)"이다. 미로한정을 중심으로 노송(老松)과 만발한 국화꽃(菊花)을 그린 그림이다. 


지금까지 노래당(老來堂), 미로한정(未老閒亭), 그리고 후원(後苑) 공간에서 안락한 휴식을 위한 정조의 노후 계획을 엿볼 수 있었다.


몸과 정신을 수양하기 위한 공간- 득중정

정조는 행궁 안에 득중정(得中亭)이라는 활터를 마련하였다. 화성에 활터는 행궁 북쪽 강무당(講武堂), 행궁 안 득중정, 용연 위 방화수류정, 창룡문 맞은편 동장대 등 네 곳에 있다. 수원이 활터를 가장 많이 보유한 도시일 것이다.


득중정은 노래당의 서쪽에 위치해 북향을 하고 있다. 행궁 대부분이 동향인데 득중정과 낙남헌만 북향을 하고 있다. 이유는 과녁까지의 공간이 필요했고, 많은 백성이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정조가 화살 4발을 맞추고 친필로 쓴 "득중정" 현판이다. 

득중정에는 활을 쏘는 어사대(御射臺)가 있고, 정조 친필의 편액 "得中亭(득중정)"이 걸려있다. 정조가 화살 4발 모두를 적중하여 "득중정"이라 이름 지었다. "득중(得中)"은 "활을 쏘아 맞추면 제후가 될 수 있고(射中則得爲諸侯), 못 맞추면 될 수 없다(射不中則不得爲諸侯)"라는 예기(禮記)에서 "중(中)"과 "득(得)"을 따왔다 한다.


득중(得中)은 공자(孔子)에도 있는데 "군자는 다투는 것이 있어서 안 되나, 활쏘기만큼은 반드시 경쟁을 한다"라 하였다. 그 이유로 "정중앙에 맞추(得中)지 못하면, 덕이 부족한 것이다"하였다. 이 말은 "정중앙에 맞춘 사람은 이미 마음속에 덕이 함양되어 있어서, 그의 모든 행동이 도리에 맞는 것"으로 여겼다는 뜻이다. 


화성능행도(陵行圖) 8곡 병풍도(屛圖) 중 "득중정 어사도(御射圖)"가 바로 득중정 행사를 그린 것이다. 정조가 활을 쏜 후 저녁에 어머니 혜경궁을 모시고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모습이다. 물론 수많은 백성들도 함께 구경하고 있다. 

화성능행도 중 득중정어사도의 하단 부분이다. 많은 백성이 불꽃놀이를 보고 있다.

학문을 놓지 않으려 한 공간- 외정리소, 봉수당 누상고

화성행궁은 다른 행궁과 달리 왕의 거처뿐만 아니라 수원부 관청과 한양 외청이 함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면 장용외영, 외정리소가 이에 해당된다. 정리소(整理所)는 왕의 원행을 위한 계획부터 시설, 인력, 의례, 교통, 물자, 회계, 기록보존까지를 전담하는 통합기구이다.   


정조는 은퇴 후 국내외 서적을 늘 읽거나, 때로는 저술하는 계획을 갖고 있었음을 행궁 내 외정리소를 통해 알 수 있다. 다음 두 가지 공간이 이를 뒷받침한다. 


첫째, 성역이 완료된 후에도 외정리소를 화성행궁에 그대로 둔 점이다. "기록 보존"은 정리소(整理所) 임무 중 하나다. 실제 "원행을묘정리의궤"를 외정리소에서 담당하여 만들었다. 이때 30만 자의 새 활자 "정리자(整理字)"를 주조하였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정조의 저술 작업에 필수적인 기관이다. 

화성행궁 내 외정리소이다. 많은 누상고(樓上庫)가 보인다.

둘째, 봉수당 동북쪽 행각 대부분을 누상고로 만든 점이다. 누상고(樓上庫)란 행각에 2층을 만들어 아래층은 비우고 2층을 쓰는 경우 지상에서 떠있는 2층 창고 부분을 말한다. 따라서 누상고는 종이류나 습기를 피해야 하는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창고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대체로 서고(書庫)가 된다. 


이렇게 보면 외정리소 안 행각 전체를 누상고로 설치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봉수당(奉壽堂) 동북쪽 행각에 모두 누상고를 설치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정전(正殿) 바로 앞이기 때문이다. 


이는 정조(正祖)가 자신의 저술을 위해 외정리소를 화성행궁에 남겼고, 많은 서적을 접하기 위해 서고(書庫)로 활용하고자 정전(定殿) 가까이 많은 누상고를 설치한 것이다.


정조는 노후에도 학문(學問)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외정리소(外整理所)의 화성행궁 존치와 봉수당(奉壽堂) 행각의 누상고(樓上庫) 설치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화성행궁의 정전인 봉수당 우측 북동행각도 모두 누상고로 되어있다. 정전 가까이 이런 많은 누상고를 둔 이유가 있다.

정조는 있을 수 없는 왕의 은퇴(?)를 계획하고 화성행궁에 노후를 준비하였다. 오늘은 화성행궁 안의 전각 공간을 통하여 휴식과 마음(文)과 몸(武)의 수양을 위한 정조의 노후계획을 엿보았다. 


다음에는 후속 편으로 "어머니와의 기억 공간"과 "백성과의 추억 공간"을 찾아볼 예정이다.

아래는 참고로 김홍도의 화성 16경과 해당 장소를 첨부했다. 최초의 수원 8경이기도 하다.


화성 16경 중 춘8경(春八景) 

화산서애(花山西靄) 사도세자의 능이 있는 화산(花山)

유천청연(柳川晴煙) 수원과 안녕리 사이의 큰 내(柳川)

오교심화(午橋尋花) 매향동으로 건너가는 다리(橋)

길야관상(吉野觀桑) 장안문 밖 영화동 동북쪽 관길야(觀吉野)

신풍사주(新豊社酒) 행궁 정문인 신풍루(新豊樓) 

대유농가(大有農歌) 북문 밖 둔전(屯田)인 대유평(大有坪)

화우산구(華郵散驅) 장안문 밖 영화역(迎華驛)

하정범일(荷汀汎일) 만석거 영화정(迎華亭) 연못


화성 16경 중 추8경(秋八景)

홍저소련(虹渚素練) 북수문인 화홍문(華虹門)

석거황운(石渠黃雲) 저수지 만석거(萬石渠)

용연제월(龍淵霽月) 방화수류정 어래 용연(龍淵)

구암반조(龜巖返照) 남수문 곁 구암(龜巖)

서성우렵(西城羽獵) 서성(西城) 밖

동대화곡(東臺畵鵠) 동장대(東將臺)

한정품국(閒亭品菊) 행궁 뒷산 미로한정(未老閒亭)

양루상설(陽樓相雪) 팔달산 능선 용도(甬道) 끝 화양루(華陽樓)


작가의 이전글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5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