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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Jun 27. 2021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57

연못(지,池)은 왜2개씩 붙어있을까?

화성에서 지(池)는 남지와 상동지가 2개씩 붙어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지(池)는 왜 2개씩 붙어있을까?


특이한 화성의 시설물로 연못(池)이 있는데 북지 1개, 남지 2개, 동지 2개로 모두 5개의 연못(池)이 있다. 남지 2개는 상남지, 하남지, 동지 2개는 상동지, 하동지라 부른다.


붙어있는 두 개의 연못(池)에서 상(上), 하(下)는 어떻게 구분할까?


성역의궤 은구도(南隱溝圖)를 보면 은구와 함께 남지(南池)가 그려져 있다. 자세히 보면 "상남지" "하남지"라고 글도 표기되어 있다. 이를 보면 섬이 한 개 있는 곳이 상남지이고, 두 개 있는 곳이 하남지이다.


의궤의 설명(說)에는 남지(南池)를 "상지(上池)는 가운데에 작은 섬(中有小島)이 있으며, 홍련과 백련을 심었다. 하지(下池)는 가운데에 섬 둘(中有二島)이 있는데 두 못 사이에 정자 터가 있다"라 한다. 섬이 한 개가 있는 곳이 상남지이고, 두 개 있는 곳이 하남지이다. 그림과 설명이 일치한다.


물과 관련된 경우 물의 흐름에 따라 이름이 지어진다. 물이 들어오는 유입부 쪽이 상류로 상남지이고, 나가는 유출부 쪽을 하남지로 구분하면 된다. 또한 수원천을 기준으로 상류에 위치한 경우에 "상(上)"으로 보면 된다.  

성역의궤 은구도(隱溝圖)이다. 2개의 지(池)에 섬이 1개인 곳에 상남지, 2개인 곳에 하남지라 기록되어 있다.

성에 왜 연못(池)를 만들었을까?에 대하여는 지난 편에 말씀드렸다. 요약하면, 요즘 용어로 저류지(貯留池, 深井)의 역할로 만든 것이다. 은구(隱溝)를 설치하기 위해 인근의 성 밖 저지대 물과 성터를 통과하는 시냇물을 잡아두는 역할을 목적으로 만든 것이다.


오늘의 주제로 들어가 보자. 북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池)가 1 개다. 그런데 남지와 상동지는 나중에 1개씩을 추가하여 2개가 연속하여 붙어있다. 왜 북지는 1개이고, 남지와 상동지는 2개씩일까?   


결론은 각각 쓰임새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북지는 성 밖 저지대의 물을 북은구를 통해 성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만이 목적이었다. 즉, 물의 유입(流入)만 있고, 배출(排出)은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연못이 최종 목적지일 경우에는 2개일 필요가 없다. 유입되는 물의 용량(容量)만 잘 감안하면 된다.  


반면에 남지와 상동지는 유입된 물을 수원천으로 배출하고 있다. 이런 경우에 물에 토사가 포함되어 함께 흘러나가게 된다. 배출된 토사가 쌓이면 수원천 바닥이 높아지게 되고, 수원천 범람의 원인이 된다.  


이렇게 물을 배출하는 연못은 토사가 물과 함께 배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경우 연못은 2개를 붙여 설치한다. 그 이유는 좀 더 설명이 필요하다. 

화성에는 물과 관련된 시설로 지(池), 연(淵), 거(渠), 제(堤), 은구(隱溝) 등이 있다. 이 중 지(池)를 만든 목적은 무엇일까?

이런 형태의 연못(池)은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이 필요하다. 하나는 흐르는 물의 속도와 양을 조절해야 한다. 장마 때 급속히 늘어난 시냇물을 그대로 흘려보내면 남은구와 성은 붕괴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조절하기 위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물과 함께 배출되는 토사량을 대폭 줄여주어야 한다. 연못(池)에 물속의 토사가 가라앉고 물만 수원천으로 배출되는 것이다. 이처럼 토사 배출을 방지하기 위한 역할을 한다.  


해마다 장마 때면 범람하는 수원천 때문에 백성의 피해가 컸다. 정조(正祖)는 이를 방지하려고 남지와 동지를 설치한 것이다. 연못 크기는 강우(降雨), 지형(地形), 토양 조건, 유입원(流入源) 면적, 배출 지점 들을 고려하여 설계한다. 요즘 용어로는 침사지(沈沙池)이다.

소위 광교 "웃방죽"이다. 이 기능이 2개의 지(池) 중에서 상남지의 기능과 개념에서 일치한다.

지금부터 왜 2개의 연못(池)을 연속하여 만들었을까? 살펴보자.

첫째, 침사지는 1개보다 2개가, 2개보다 3개가 조절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수량과 유속은 기상에 따라 불규칙하다. 연못을 많이 거칠수록 유량과 유속에 더욱 안정적으로 조정된다. 연못 안에 섬을 만들어 놓은 것도 완충 역할 때문이다. 


둘째, 이런 기능을 유지하려면 적어도 2개의 연속된 연못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침사지는 청소, 준설, 점검, 보수를 꾸준히 하여야 그 기능이 유지된다. 준설 작업을 하면서도 계속 사용해야 하므로 최소 2개를 만들어 놓는 것이 원칙이다.


그렇다면 하동지(下東池)는 왜 1개냐고 물으실 것이다. 하동지는 유입원(流入源) 구역이 작기 때문이다. 상동지는 동북성 지역(Area)을 담당하고, 하동지는 동성의 극히 일부 지역을 담당한다. 상동지가 담당하는 동북성 구역이 확연히 넓다. 하동지는 1개로 충분하다고 계산되었을 것이다. 


설치 위치가 물이 빠져나가기 직전에 만들어 놓은 점, 상하로 2지(二池) 시스템인 점은 남지와 상동지가 침사지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용연(龍淵)은 처음부터 연못으로 조성하였다. 용두(鏞頭) 위에 있는 방화수류정과 조화를 이룬다.

이제 화성에 설치된 연못(池)의 정체성에 대해 정리해 보자. 공사 및 사용 시기 별로 역할과 목적이 달라지고 있다. 매우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첫 번째 정체는 "성역 초기에는 저류지(貯留池)"로 사용했다.

은구(隱溝) 공사와 성(城) 쌓기 공사를 착수하기 위해 물을 제거하는 역할을 하였다. 모든 공사에 앞서 상남지, 북지, 하동지를 판 이유다.


두 번째, "공사 중에는 저수지(貯水池)"로 사용했다.

공사에 필요한 막대한 공사용수(工事用水)를 보관하는 용도로 쓰였다. 요즘 공사장의 대형 물탱크 역할을 한 것이다.


세 번째, "성역 완공 후 장마철에는 침사지(沈沙池)"로 사용했다.

장마철에 유량과 유속을 조절해 성의 붕괴를 막고, 토사 배출을 방지해 수원천 범람을 예방하였다. 성역 막바지에 연못을 추가로 판 이유도 밝혀진 것이다. 성역 후 장마철에 침사지 역할을 한 것이다.


네 번째, "성역 완공 후 평시에는 휴식공간 연못(蓮池)"으로 활용된다.

성역이 완료된 후에는 많은 백성을 위해 연못으로 치장했다. 주변에 나무를 심고, 작은 섬을 만들고, 마름과 연꽃(芰荷, 기하)을 심고, 정자 터도 준비해 휴식공간 역할을 한 것이다.


"처음부터 휴식공간으로 연못을 만들었다"는 주장이 잘못이라는 근거를 제시해 본다. 첫째, 모양이 사각형인 점, 둘째, 크기가 큰 점, 셋째, 배출 지점이 성(城) 또는 수원천 바로 앞인 점, 넷째, 구조가 정원석이 아니고 나무 말뚝인 점, 다섯째, 2지(二池) 시스템인 점이다.    

화성의 지(池)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용도를 달리하여 활용하였다. 

이렇듯 화성 연못(池)은 공사 일정에 따라 그때그때 필요한 용도로 변신을 거듭하였다. 저류지에서 저수지로, 저수지에서 침사지와 연못으로 정체성이 바뀌어 간 것이다. 하나로 넷을 얻은 세계 유일의 연못이다.


현재 수원시에서 남지와 북지를 복원 중에 있다. 아름다우나 성역 전체 기간 동안 끊임없이 궂은일만 해왔던 화성 연못(池)의 재탄생이 기다려진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4번이나 변신한 화성의 지(池)는 다목적 역할을 수행한 세계 유일의 연못이다. 그때그때 필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가장 작고, 가장 관심 없었던 연못(池)에서 정조(正祖)의 토목기술과 실용주의를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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