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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Jul 04. 2021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58

남포루, 남치, 남은구는 서성일까, 남성일까?

화성에 4성체계가 있다. 무엇을 기준으로, 어떤 개념으로 만들었을까?


남포루, 남치, 남은구, 서성일까, 남성일까? 


팔달문에서 관광안내소를 지나 팔달산으로 오르는 길에 남은구(南隱溝), 남치(南雉), 남포루(南砲樓)를 차례로 만나게 된다. 다만 남은구는 안내소 옆 원성 지하인데 현재 미복원 상태다. 


남은구, 남치, 남포루 등 시설물 명칭에 모두 "남(南) 자"가 붙어있다. 이는 의궤 권수(卷首) 도설(圖說)에 나오는 명칭이다. "도설(圖說)"에는 시설물에 대한 설명만 있고, 어느 성에 속하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시설물 이름에 모두 방위명 "남(南)"이 붙어있다.  

과연 남은구, 남치, 남포루는 남성(南城)에 속할까?


안타깝게도 화성에는 "남성(南城)"은 없다. 뿐만 아니라 "동성, 서성, 북성"도 없다. 어느 성에 속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대신에 화성에는 "4성체계(四城體系)"가 있다. 


의궤 권 5(卷五) 실입(實入)에 화성을 4개의 성으로 구분한 기록이 있다. 바로 평지북성, 산상서성, 펑지남성, 산상동성으로 구분하였다. "실입(實入)"이란 공사에 실제로(實) 들어간(入) 자재, 인력, 장비를 기록한 것을 말한다.   

화성 4성체계는 단순히 동성, 서성, 남성, 북성처럼 방위로 구분한 개념이 아니다.

이 4성체계는 기록이 있음으로 4성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나눌 수 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평지북성과 산상서성의 경계선은 "화서문 남쪽(華西門之南)"이다.

산상서성과 평지남성은 "남은구 서쪽(南隱溝之西)"이 경계선이다.


평지남성과 산상동성은 "남수문 동쪽에서(自水門之東) 동남각루 아래 30보까지(至角樓之下三十步) 지점"이 된다.

산상동성과 평지북성의 경계선은 "화홍문 동쪽(華虹門之東)"이 된다. 

4성체계 경계 기준은 매우 중요한 정의다.


이상의 경계 기준으로 남은구, 남치, 남포루가 어느 성에 속하는지 따져보자. 남은구 서쪽(南隱溝之西)이 산상서성과 평지남성의 경계선이므로 남포루와 남치는 산상서성에 속하고, 남은구는 평지남성에 속하게 된다.


유의할 점은 4성체계의 명칭은 "동성", "서성", "남성", "북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바른 용어는  "평지북성(平地北城)", "산상서성(山上西城)", "펑지남성(平地南城)", "산상동성(山上東城)"이다.      

의궤 기록에는 없으나 방위에 의한 구분 기준을 찾아보자.

성의 구분은 대부분 방위를 기준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의궤 어디에도 이런 구분은 없다. 한마디로 화성에서는 방위를 기준으로 구분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러면 화성도 방위를 기준으로 "동성, 서성, 남성, 북성"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그래서 필자는 방위명으로 동, 서, 남, 북으로 구분한 기준을 찾아보았다. 이 기준을 알게 된다면 자연스레 동성, 서성, 남성, 북성의 기준을 확립할 수 있다.


결론으로, "화성의 방위 구분은 각루(角樓)를 기준으로 하였다"란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각루는 서북각루, 서남각루, 동남각루, 동북각루를 말한다. 이 4곳의 각루가 화성의 방위 기준점이라는 의미다.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예를 들어 정서(正西)를 중심으로 좌우로 45도가 서남(西南)과 서북(西北)이다. 이 서북각루와 서남각루 사이가 "서성(西城)"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서남각루와 동남각루 사이는 "남성(南城)", 동남각루와 동북각루 사이는 "동성(東城)", 동북각루와 서북각루 사이는 "북성(北城)"이 된다. 

수원 화성은 방위에 의한 구분을 4곳의 각루를 기준으로 하였음을 밝혀냈다.

실제 화성에서 적용 사실을 확인해보자. 서북각루와 서남각루 사이에 있는 모든 시설물 이름에는 방위명 서(西)가 붙어있다. 그리고 서남각루(서남암문)부터 동남각루까지 사이는 모두 방위명 남(南)이 붙었다.   


또한 동남각루와 동북각루 사이는 동성이기 때문에 이 사이에 있는 시설물에는 방위명 동(東)이 붙어있다. 끝으로 동북각루와 서북각루 사이는 북성으로, 이 사이 시설물에는 방위명 북(北)이 붙어있는 것이다. 


3곳의 예외가 있다. 동성(東城)에  "봉돈"과 "북(北)암문"이 속해 있고, 북성(北城)에 "서(西)문"이 포함된 것이다. 예외가 왜 생겼는지 필자도 알 수 없다. 후학(後學)들의 연구를 기대한다.  


이렇게 판단한 근거는 의궤 "개기(開基)" 편에 나오는 "서남암문에서 동쪽으로 꺾어서, 바로 남성 터(仍開南城之址)를 만들었다"라는 내용 중 "남성 터(南城之址)"에서 착안하였다. 


실제로 서남암문 아래로 남포루, 남치, 남은구, 남서적대, 남문, 남동적대, 남암문, 남공심돈, 남수문으로 모두에 방위명 "남(南)"이 붙어있다. 서남암문(서남각루)에서 방향이 꺾이며 방위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성 밖 용도(甬道) 끝에 위치하여 서남각루 대신 원성에 붙은 서남암문을 기준으로 하였다.

시설물 이름 외에 각루(角樓)가 기준이라는 몇 가지 근거도 있다.


첫째, 각루의 입지에 대해 의궤 성지전국(城之全局)에 특별히 언급하고 있다. 

4각8문(四角八門), 즉 각루와 문에 대해서만 언급한다. "4각이 모두 높다(四角俱高)"라고 말하고 있다. 4곳 각루 모두가 높은 곳, 그리고 모퉁이에 위치하고 있다는 의미다.


둘째, 방위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서북, 서남, 동남, 동북의 방위가 4곳의 각루와 일치하고 있다. 각루 말고 전체 시설물에서 방위 기준이 될 어떤 시설물도 찾을 수 없다. 4대 문조차도 4개 방위와 일치하지 않는다. 


셋째, "각루(角樓)"라는 명칭 자체가 말해주고 있다. 

"각(角)"이란 코너, 모퉁이를 의미한다. 즉 방위가 꺾이고, 바뀌는 지점을 말한다.


정리하면, 의궤에 동성, 서성, 남성, 북성의 구분 체계는 없다. 편의상 굳이 구분한다면, 4곳의 각루(角樓)를 중심으로 4개 방위로 구분할 수 있다. 화성에선 방위 기준이 각루(角樓)였음이 밝혀졌다.  

방위에 의한 구분은 4곳의 각루가 기준이고, 4성체계는 지형이 기준이다.

방위(方位)를 기준으로 동성, 서성, 남성, 북성으로 구분한 것은 시설물 위치를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방위 기준으로는 남은구, 남치, 남포루 모두 "남성(南城)"에 속한다.


4성체계를 기준으로 산상서성, 평지남성, 산상동성, 평지북성으로 구분한 것은 공사비, 인력, 자재 등의 투입 계획, 회계 등 건설경영을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위함이다. 4성체계 기준으로는 남은구는 "평지남성"에, 남치와 남포루는 "산상서성"에 속한다.


공사 난이도에 따라 먼저 산상과 평지로 구분한 후 백성과 일하는 사람들이 알기 쉽도록 방위 명도 덧붙인 것이다. 방위보다도 지형에 따라 구분한 4성체계에서 정조(正祖)의 실용정신을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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