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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Jul 11. 2021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59

잃어버린 용도 치(甬道 雉)

팔달산 능선 남쪽 용도(甬道)에서 오랜동안 잃어버렸던 용도 치(雉)를 찾아냈다.


잃어버린 용도(甬道) 치(雉)


팔달산 능선 남쪽에 서남암문이 있다. 이 암문을 지나면 양쪽에 여장이 있는 길이 있는데 이를 용도(甬道)라 한다. 오르내림이  없이 평평하고 양쪽에는 노송이 도열한 아주 편안한 길이다.


용도를 성(城)으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으나 이름 그대로 길(道)이다. 여장(女墻)만 있고, 주변 지형보다 바닥을 약간 높인 길(道)이다. 그래서 "솟아오를 용(甬)", "길 도(道)"로 이름 지은 것이다. 여장 밑의 돌은 여장의 기초이다.


용도란 옛 제도에 "군량을 운반하고 매복을 서기 위하여 낸 길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화성에서는 실제로 적군이 팔달산 남쪽 능선을 오르지 못하도록 매복을 위한 장소로만 사용했다.

용도는 서남각루 밖 팔달산 남쪽을 오르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매복을 서는 곳이다

안내판을 보면 "이 문에서 84보(步) 되는 동쪽에 하나의 치(雉)를 설치하였고, 또 10보쯤 서쪽에 하나의 치성을 설치하였다. 화성에 치가 10개가 있다"라는 설명이 있다.


의궤에도 "암문에서 84보 되는 동쪽에 하나의 치성을 설치(自暗門 至八十四步 東設一雉) 하였고, 또 10보쯤 서쪽에 하나의 치성을 설치(又至十步 西設一雉)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치의 설치에 대해서는 의궤와 안내판이 일치한다. 


그래도 용도 치에 대하여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하나는, 용도 안에 있는 치(雉)도 화성의 치(雉)에 포함될까?이다. 왜냐하면 안내판에 화성에 있는 8개 치와 용도에 있는 2개 치를 합하여 "화성에 10개 치가 있다"라 하였기 때문이다. 과연 같은 치(雉)로 취급하였을까? 하는 의문이다.


다른 하나는, 한쪽에 한 개 치(雉)로 기능을 할 수 있을까?이다. 원래 치의 주기능은 양쪽에 있는 치와 함께 적의 측면을 양쪽에서 공격하는 것이다. 이를 수행하려면 최소 3개 치가 연속하여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용도 치는 한쪽에 1개만 있기 때문이다.

용도에는 동쪽에 1개, 서쪽에 1개의 치(雉)를 설치했다. 

용도 치(雉)도 화성 치(雉)에 포함될까? 


의궤에 치를 설명하며 "치는 8곳이다"라 하였다. 여기서 8곳은 서1치, 서2치, 서3치, 동1치, 동2치, 동3치, 남치, 북동치로 순수한 치를 말한다. 이처럼 용도 치(雉)는 화성 치에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이는 용도 치와 화성 치를 동일하게 취급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왜 용도 치를 화성 치에 포함하지 않았을까? 치의 기능과 구조를 살펴보며 판단해보자. 먼저, 기능이다. 성에 접근하는 적들을 돌출된 양쪽 치에서 적의 측면을 공격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다음, 구조이다. 의궤에 "치의 제도는 철(凸) 모양으로 성면에 붙였고, 높이는 성과 같고, 바깥쪽으로 현안 구멍이 1개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요약하면 "철부성면(凸附城面), 고여성제(高與城齊), 외면유현안(外面有懸眼)"이다. 


용도 치는 이 3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성면에 붙인 것도 아니고, 성은 존재하지 않고, 현안도 없다. 따라서 기능은 같아도 구조가 달라 용도 치를 화성 치와 동일하게 볼 수 없는 것이다. 

치의 조건은 철(凸) 모양으로 성면에 붙였고, 높이는 성과 같고, 바깥쪽으로 현안이 있어야 한다.

구조 외에도 동일하게 보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것도 있다.  

첫째, 규모를 별도로 구분하지 않았다. 용도 치의 길이를 용도 치가 아니고 용도 길이로 본 것이다. 반면에 화성 치는 각 치(雉)마다 규모를 별도로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다.  


둘째, 고유의 이름을 부여하지 않았다. "동쪽에 1개의 치(雉)를 설치(東設一雉)하고, 또 서쪽에 1개의 치를 설치(又西設一雉)"라고 보통명사화하였다. 반면에 화성의 치는 북동치, 서1치, 남치, 동2치 등 고유의 이름을 부여했다.  


일부 학자는 기록에 없는 "용도동치(甬道東雉)", "용도1치(甬道一雉)"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모두 근거 없는 용어다.


정리하면, 의궤에는 용도 치(雉)와 화성 치(雉)를 다르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기능은 같으나, 구조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도 치도 치는 분명하다. 다만, 분류는 "화성 치"와 "용도 치"로 구분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다. 

서남암문 좌우의 지형은 용도 치와 함께 협공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지형이다. 일명 "자성치(自成雉)"이다. 

한쪽에 한 개 치(雉)로 기능을 할 수 있을까?


치는 최소 3개가 연속으로 있어야 기능을 할 수 있는 방어 시설물이다. 그런데 용도 치는 한쪽에 1개만 설치되어 있다. 이것은 치의 기능이나 목적으로 보면 있을 수 없는 경우다. 


필자가 의궤 기록에 없는 좌우(左右)의 치(雉)를 찾아드리겠다. 좌우는 용도 치의 남쪽과 북쪽이 된다.


북쪽은 서남암문 양옆의 원성이 치의 역할을 하고 있다. 첫째, 용도보다 더 바깥으로 돌출되어 있고, 둘째, 성 높이만큼 더 높기 때문이다. 용도 치의 북쪽 파트너로는 최고이다. 이런 치를 "지형 때문에 스스로 이루어진 치(雉)", 즉 "자성치(自成雉)"라 한다.


남쪽은 화양루 양옆으로 돌출된 부분이 치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의궤에 "2번 구부러져 넓혔다(再屈而引廣也). 첫 번째 확장된 곳의 너비 9보(步), 두 번째 확장된 곳의 너비 11보로, 이것이 화양루 터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아래 화양루도(圖)를 보면, 용도가 화양루 앞에 와서 두 번 넓어지고 있다. 넓어진 부분에 총안(銃眼)도 보인다. 모양도, 총안도, 방향도 치와 똑같다. 용도 치의 남쪽 파트너이다.

용도가 화양루 터에 오면 두 번 확장된다. 확장된 부분은 매우 훌륭한 치(雉)가 될 수 있다.

이처럼 화양루 양옆으로 돌출된 부분은 치(雉)로 보아도 문제가 없다. 다만 의궤에 기록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기록도 찾아냈다.


한글본 뎡니의궤(정리의궤) "화성성역 제9" 9월 초 7일 편이다. 용도에 대해 "남쪽 끝에 이르러서는 또 동서 쪽으로 각각 20척씩 빼내어 좌우로 치성을 설치하였다"란 기록이다. 분명히 "치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분명한 "용도 치"다. 


아쉬운 점은 복원 상태가 원형과 다르게 되어 있는 것이다. 두 번째 확장된 돌출 부분에 총안(銃眼)을 설치하지 않은 점이다. 2개가 있어야 한다. 복원 기술자는 치(雉)가 아니라 순수한 담장(墻)으로만 본 것이다. 기능, 목적 등 본질을 도외시한 것이다. 

두 번째 확장된 부분은 총안이 2개 있어야 하는데 아예 없다. 아쉬운 복원 모습이다.

잃어버렸던 용도 치(甬道 雉) 2개를 이번에 찾아냈다. 치의 역할을 하면서도 고유의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용도 치"이다. 


비좁은 땅 화양루(華陽樓)에 덧붙이면서까지 연속 3개 치(雉)를 만들어 기능을 살린 "용도 치(甬道 雉)"에서 정조(正祖)의 전략을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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