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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Jul 18. 2021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60

포루(砲樓)는 왜 벽돌로만 지었을까?

포병 진지인 포루(砲樓)는 모두 벽돌로 만들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포루(砲樓)는 왜 벽돌로만 지었을까?


포루(砲樓)는 화성에 동, 서, 남, 북동, 북서포루, 5곳의 포루가 있다. 산상성에 3개, 평지성에 2개를 세웠다. 평지북성에만 2개를 세운 것은 북성이 길고, 밖은 너른 평지를 이루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구조는 "성의 몸체에 철(凸) 자 모양으로 붙여 치성과 비슷하게 하고, 집을 지었는데(架屋) 높이는 포(舖)와 같다. 3층으로 하여 그 속 내부를 비운 점(而空其心)이 마치 공심돈의 구조와 비슷하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정도라면 치(雉), 포루(舖樓), 공심돈(空心墩)의 3가지 구조적 특색과 장점을 모두 갖춘 시설물이다. 가장 큰 특징은 3층 내부 모두를 비워놓고 수많은 포혈(砲穴)을 낸 것이라 하겠다. 대포를  쏠 수 있는 최강의 중무장 요새이다.

 포루는 속을 비워 3층을 만들고 실내를 사용한다.

 

성에 벽돌을 사용한 것은 한국에서 화성이 유일하다. 암문, 수문, 봉돈, 노대 등은 벽돌과 돌을 함께 사용했으나, 포루(砲樓)는 100% 벽돌로 지었다. 의궤에도 "개용벽전(皆用甓甎)" 즉 "모두 벽돌을 사용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에는 벽돌이 고급 재료이었다. 어제성화주략(御製城華籌略)에 "우리나라 사람은 벽돌 굽는데 익숙지 못하고 또 벽돌 굽는 땔나무도 구하기 어렵다"란 내용이 있다. 성역 당시 벽돌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는 기록이다.


손쉽게 획득할 자재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루는 왜 벽돌만 사용했을까? 이 또한 화성 미스터리다.

포루는 지상에서부터 사용하고, 내부가 비어있고, 포혈 등 구멍이 많은 구조가 특징이다.


먼저, 포루(砲樓)만이 갖고 있는 특징을 찾아보자. 

첫째, 지상(地上)부터 성 높이까지 사용하는 유일한 시설물이다. 

화성 시설물 대부분 치성(雉) 위에 짓는데, 포루는 지상에 짓는다. 즉 다른 시설물은 치상축(雉上築)이고, 포루는 지상축(地上築)인 셈이다. 


둘째, 3면 벽체에 많은 구멍(穴)이 뚫려있다.

지상에서 성 높이까지 돌출 벽체 3면에 총혈(銃穴), 포혈(砲穴)이 가장 많이 뚫려있다. 1개 포루에 최대 38개까지 뚫었다. 


셋째, 비어있는 실내(空心)를 사용하는 유일한 시설물이다.

다른 모든 시설물은 지상에서 성 높이까지 흙으로 채워져 있다. 포루만 유일하게 속을 비워(空心) 놓고 실내 공간처럼 사용한다. 


이상과 같은 포루만의 건축적 특성을 통해, 포루는 왜 벽돌만으로 지었을까? 알아보자.

기둥을 세우고, 마우를 깔고, 나무 사다리를 설치해야 하고, 대포를 쏘아야 하므로 내부 벽면은 매끈하게 수직으로 마감되어야 한다. 


조심태(趙心泰)의 입장을 알아보자.

조심태는 감동당상(監董堂上)으로 화성성역의 현장 총책임자이다. 설계와 시공 모두를 담당하였으므로 시공자의 입장에서 시공성(施工性)에 관심을 두었을 것이다.


첫째, 벽 안팎 모두 마감처리를 해야 한다.

포루는 내부 공간 활용이 중요한 시설물이다. 내부에 기둥을 세우고, 마루 깔고, 사다리를 놓아야 한다. 그리고 군사가 머물며 적을 정탐하고 대포를 쏘는 공간이다.


이 말은 벽체 안쪽이 모두 수직으로 매끈하게 마감되어야 3층으로 실내 공간을 꾸밀 수 있고, 군사가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울퉁불퉁한 돌 마감으로는 기둥조차 세우지 못한다.


포루 내부를 비워(空心) 실내 공간처럼 사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돌보다 벽돌이 최상의 재료이고 탁월한 선택이다.

포루는 포혈이 많이 뚫려있다. 구멍 수보다 구멍 각도가 다양하고 벽체가 두꺼워 돌로 만든 벽체에는 불가능하다.


둘째, 다양한 각도로 많은 구멍을 설치해야 한다.

포루는 기능상 많은 구멍을 벽에 내도록 설계되어 있다. 정탐하고, 대포를 쏘기 위한 구멍이다. 다른 시설물은 그저 현안만 설치하면 된다. 현안은 구멍을 내는 방식도 아니다.


몇 개를 뚫어야 하는 것보다 상하좌우 다양한 각도로 뚫어야 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더구나 포루는 벽 두께가 4척(1,2m)에서 6척(1.8m)에 달한다. 이렇게 두꺼운 돌 벽체에 필요한 각도로 필요한 수량의 구멍을 뚫는 것은 불가능했다.


벽체에 여러 각도로 많은 구멍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벽돌이 최상의 재료이고 탁월한 선택이다.


정리하면, 시공 총책임자 조심태는 포루(砲樓) 벽체를 돌로 시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포루에 최적의 솔루션으로 벽돌을 선택한 것이다. 

구멍이 있고 안쪽을 사용하는 시설물은 벽돌을 사용하였다. 포루 외에도 수문, 공심돈, 동북포루 등이다.


정조(正祖)의 입장을 알아보자.

발주자(Client)인 정조의 입장에서는 사용자(User) 입장과 건설경영(建設經營)에 관심을 두었을 것이다. 설계자나 시공자 입장과는 다른 차원의 전략이 숨겨져 있다. 


첫째, 사용자에게 좋은 디자인을 제공하려 했다.

성(城)이라는 특성 때문에 돌이 대부분 사용된다. 따라서 시각적으로 성 전체가 동일한 색상, 텍스쳐, 형상을 보여준다. 벽돌은 이런 동일함으로부터 큰 변화를 주었다. 변화와 미관을 군사와 백성에게 제공한 것이다.


둘째, 벽돌 제작기술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원했다.

성역 당시 벽돌 제작과 쌓는 숙련공(甓匠, 벽장)은 드물었다. 정조(正祖)는 포루에 벽돌을 사용하게 하야 제작기술의 발전을 기대했을 것이다. 굽는 가마와 굽는 방식을 새로이 고안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화성은 벽돌의 대량 생산과 기술 발전의 시발점이다. 

벽돌 굽는 가마와 굽는 방식도 새로이 고안하였다. 화성에 벽돌을 사용하기 시작하여 기술발전에 도움이 되었다.


셋째, 건설 리스크 관리의 하나였다.

포루는 화성에 5곳이 있고, 돌출 길이(29척)도, 높이(27척 5촌)도, 두께(6척)도 가장 크다. 당연히 공사량도 크기 때문에 자재와 인력도 많이 필요하게 된다.


성(城)과 시설물 모두 돌(石) 1종류로만 설계한다면 화성 성역은 돌에 영향을 받게 된다. 자재인 돌(石)과 인력인 석공(石工)의 수요가 일정 기간에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수급을 못하게 되면 바로 공기의 지연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점을 알고 있는 정조(正祖)는 화성성역 주재료(主材料)를 돌 한 종류에서 돌과 벽돌 두 종류로 전환한 것이다. 주 인력(主 人力)도 석공 한(1) 직종에서 석공과 벽돌공 두(2) 직종으로 분산시킨 것이다.


분산 전략을 채용하여 자재와 인력의 공급 부하를 낮춘 것이다. 이는 공기 지연 리스크를 없애고, 오히려 공기 단축의 효과를 얻게 된다.

성역 전체를 돌로만 설계한다면 자재와 석공의 공급에 부하가 많이 걸릴 것이고, 그 기간도 길어질 것이다. 공기 지연의 원인이다.


벽돌은 시공이 용이하고, 공사기간을 줄여주고, 미관이 수려한 점 등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한 포루(砲樓)의 토털 솔루션이다.


기능성, 시공성, 미관성을 넘어 공사 기간에 예상되는 리스크 관리까지 고려한 것임을 알았다. 포루(砲樓) 자재로 벽돌을 선택한 정조(正祖)의 경영 전략을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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