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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Aug 22. 2021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65

포루(砲樓) 3층은 벽체일까? 여장일까?

포루의 3층 부분은 모양이 여장으로 보인다. 과연 여장일까?


포루(砲樓) 3층은 여장일까? 벽체일까?


포루(砲樓)는 포를 쏘는 중무장 요새로 5곳이 있다. 의궤에 "성(城)의 몸체에 철(凸) 자 모양을 붙여 치성과 비슷하게 하고 집을 지었다. 3층으로 하여 그 가운데 속을 비운(空心) 점이 마치 공심돈의 구조와 비슷하다"라고 설명한다. 


1층과 2층은 포를 쏘는 곳이고, 3층은 적의 상황을 정탐하거나 총을 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 모두 벽돌로 만들었는데 1, 2층은 벽체이고, 3층은 여장으로 되어 있다.


의궤 실입(實入)에 여장 길이도 기록되어 있다. 북동포루와 북서포루는 11파(把) 4척(尺)으로 같고, 서포루 9파 1척, 남포루 10파 4척, 동포루 12파이다.


이처럼 포루 3층이 여장임을 말해주고 있다. 위치가 원성(元城) 여장과 같고, 외형도 여장의 모양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의궤에 각 포루 별로 여장 길이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북동포루의 1915년 전후 예 촬영한 모습인데 벽체가 처마와 바싹 붙어있다. 그리고 미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의궤 도설(圖) 편에 "3면 벽(三面甓)의 두께 6척, 높이는 들보와 이어져 있고, 두께는 처마 두께와 비슷하다"라고 포루의 구조를 설명한다. 참 특이한 구조이다.


왜냐하면, "벽돌이 들보에 붙어있고, 그 두께가 처마 두께와 같다"는 내용은, 들보까지 올라온 3층 부분도 1층, 2층과 연속된 벽체(壁體) 임을 시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같은 3층 부분을 놓고 권 5(卷五) 실입(實入)에는 여장으로, 권수(卷首) 도설(圖說)에는 벽체로 표현하고 있다. 한마디로 동일한 부위를 서로 다른 구조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포루 3층은 벽(壁)일까? 여장(女墻)일까? 이 또한 화성 미스터리의 하나다. 확인을 향해 떠나보자.


그림, 설명, 실물로는 확인이 불가능했다. 그림(圖)에는 외형만 보이고, 설명(說)은 명확하지 않고, 복원된 실물 포루도 훼손된 것을 복원했기 때문에 원형이라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포루 3층은 원성의 여장과 높이도 같다. 그림을 보아도 3층은 1층, 2층과 구분된다. 

마지막으로, 숫자로 확인하는 방법을 찾았다. 숫자란 실입(實入)에 기록된 "여장 길이"와 도설(圖)에 기록된 "포루 크기"를 말한다. 이 두 숫자는 똑같은 3층에 관한 수치인데, 하나는 여장, 다른 하나는 벽체를 표현하고 있다. 여장과 벽체를 구분해 낼 수 있는 좋은 자료다. 


먼저, 포루 크기를 살펴보자.

의궤에 보면 5곳 중 4곳은 공통 크기로 기록하고 있고, 서포루 1곳만 개별로 크기가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신뢰할 수 있는 서포루(西砲樓)를 분석 자료로 쓸 예정이다. 


서포루 규격은 "바깥쪽 아래 너비 21척, 위의 줄어든 너비 17척, 좌우의 아래 너비 각각 24척, 위의 줄어든 너비 22척"이다. 그리고 성 안쪽 내면에는 출입문과 문 양쪽에 벽돌 구조물이 있다.


"바깥쪽"이란 돌출된 3면 중 가장 바깥쪽인 "외면(外面)"을 말한다. "좌우"는 돌출한 "좌측면과 우측면"을 말한다. 또한 "아래 너비"는 1층 땅과 만나는 부분의 너비를 말하고, "위 너비"는 3층 부분의 너비를 발한다.


의궤 용어로 "아래 너비"를 "하활(下闊)", "위의 줄어든 너비"를 "상수(上收)"라 한다. 화성에 관심 있으신 분은 꼭 알아두어야 할 용어다. 벽체 두께가 아래와 위가 다르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포루 3층 평면이다. 외면, 좌측면, 우측면, 내면이 어디를 말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다음, 여장 길이를 살펴보자.

서포루(西砲樓)의 여장 길이는 9파 2척이다. 환산하면 47척이 된다. 여장 단위 첩(堞)과 파(把)는 영조척(營造尺)으로 따져 5척(尺)이 1파(把)이고, 4파가 1첩(堞)이다. 


분석 방법은, 서포루 여장 길이 47척이 3층 부분 4면에서 어디 어디에 해당하는가를 계산으로 밝혀내면 되는 것이다. 아주 쉽다.


필요한 수치는 외면 17척, 좌측면 18척, 우측면 18척, 내면 벽돌면 길이 11척이다. 내면 벽돌면 길이는 내면 길이 17척에서 출입문 폭 6척을 뺀 길이이고, 좌우면 길이는 좌우면 길이 22척에서 외면 두께 4척을 뺀 길이이다.


3층은 외면, 좌측면, 우측면, 내면으로 4 개면이다. 계산해야 할 경우는, 전체 4면 모두인 경우, 외면과 좌우면인 경우, 좌우면과 내면인 경우, 좌우면인 경우이다. 계산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4면 전체 길이의 합은 64척, 

두 번째, 외면, 좌측면, 우측면 길이의 합은 53척,

세 번째, 좌측면, 우측면, 내면 길이의 합은 47척,

끝으로 좌측면, 우측면 길이의 합은 36척이다. 

서포루(西砲樓) 단면도이다. 스케일로 그렸으므로 포루 구조를 이해하기 쉽다. 한마디로 벽체 두께가 어마어마하다.

이제 산출된 길이를 여장 길이 47척과 비교해보자. 여장 길이 47척과 일치하는 경우는 세 번째 경우이다. 즉 좌우 측면과 내면의 합이다. 


이 결과는 "포루(砲樓)에서 좌측면, 우측면, 내면만이 여장이다"라는 것을 확인해 주고 있다. 이런 사실이 최초로 확인되는 순간이다. 참으로 의외의 결과이다. 


사실 필자도 무척 놀랐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4면 모두가 여장으로 알려져 왔기 때문이다. 아울러 "포루에서 바깥쪽 외면(外面)이 여장이 아니고, 벽체(壁體)"란 것도 새로이 밝혀진 것이다.


그러면 포루는 왜 외면(外面)만 벽체로 했을까?

여장과 차별을 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차별은 두께일 것이라는 게 필자의 견해다. 근거도 있다.


첫째, 적의 포 공격을 받을 확률의 차이를 고려한 것이다. 적(敵)은 좌우 면보다 외면을 더 공략할 것이다. 많은 공격을 받을 외면(外面)을 더 두껍게 하기 위해 여장이 아닌 벽체로 설계한 것이다.

의궤에 포루에 대한 규격은 서포루(西砲樓)만 단독으로 규격을 기록하고 있다. 나머지 4곳은 공통으로 같은 규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샂니은 북서포루 모습.

둘째, 포루 구조와 벽돌 구조의 취약점을 고려한 것이다. 포루 구조는 내부가 흙으로 채워지지 않고 비어 있는 구조다. 벽돌 구조는 횡력(橫力)에 약한 구조이다. 이런 조적조(組積造) 구조를 보완하기 위해 두꺼운 벽체로 설계한 것이다. 


셋째, 이런 점들을 확인해 줄 단서도 있다. 한국 전쟁 당시 미군이 촬영한 벽돌 구조만 남은 서포루(西砲樓)의 모습(아래 사진)을 확대하였다. 3층 두께를 유심히 보면, 외면(外面) 벽체가 좌우면 여장보다 더 두꺼운 것이 확연하다. 여장과 벽체의 차이는 두께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얼마만큼 조정하였을까?


필자는 0.5척(尺)이라 본다. 여장은 3척 5촌으로 줄이고, 벽체는 4척 5촌으로 늘린 것이다. 필요에 의해 줄였다 해도 최소 기준 두께는 지켰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최소한 원성(元城) 여장 기준 두께인 3척 5촌을 유지시킨 것이다.


의궤에 여장 기준 두께는 원성(元城)이 3척 5촌, 옹성(甕城)은 2척 6촌, 용도(甬道)는 4척, 포루(砲樓)는 4척으로 되어 있다. 

서포루(西砲樓)의 한국 전쟁 당시 사진이다. 외면이 좌우 면보다 더 두껍게 보인다.

오늘의 주제는 끝내고, 참고로 포루 3층과 관련된 잘못된 복원을 살펴보자.


하나는, 현재 복원된 벽체 높이가 의궤와 일치하지 않고 있다. 처마와 벽체 사이가 원형보다 더 많이 떨어져 있다. 의궤대로 들보와 벽체를 붙여야 한다. 적에게 물 샐 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 폐쇄성이 강한 느낌이 들게 해야 한다. 이것이 디자인이다.


복원할 때 무엇을 잘못했을까? 건물 높이, 추녀 곡률, 벽체 높이를 종합적으로 따져보면 잘못된 부분이 나타날 것이다. 맨 앞에 게재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1915년경 유리 원판 사진을 보면 벽체와 처마가 붙어있다. 


다른 하나는, 현재 복원된 2층과 3층 사이에 원형과 달리 미석(眉石)을 설치했다. 위에 실은 두 장의 옛 사진 모두에 미석은 없다. 포루와 성(城)은 재료도, 위치도, 구조도, 성격도 다르다는 개념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미석을 설치한 것이다. 덧셈도 오류다.   

하나의 시설물로 돌출된 3면이라도 적의 공격 빈도를 감안하여 외면을 벽체로, 좌우면과 내면을 여장으로 하고 두께를 달리하였다.

포루(砲樓) 3층 전체를 하나로 통일시키지 않고, 적의 공격에 더 많이 노출되는 외면(外面)을 벽체로 하여 더 두꺼운 벽체로 설계한 포루(砲樓) 구조를 통해 정조(正祖)의 전략적이며 세심한 설계를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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