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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Aug 01. 2021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62

용도(甬道)에는 왜 원총안만 있을까?

 용도는 최초 설계에 없었을까?, 용도에는 왜 원총안 만 있을까?, 용도 길이는 왜 차이가 있을까? 용도 3대 미스터리를 풀어보자.


용도는 최초 설계에 없었을까?

용도에는 왜 원총안만 있을까?


팔달산은 북에서 남으로 뻗친 화성의 진산(鎭山)이다. 능선 남쪽 서남암문을 나가면 용도(甬道)가 나온다. 용도 남쪽 끝에 화양루(華陽樓)가 위치한다. 화양루는 서남각루(西南角樓)의 별칭으로 "화성(華)의 남쪽(陽)"이란 뜻이라 한다.


용도(甬道)란 원래 군량 운반과 매복을 서기 위한 길을 말한다. 그런데 화성에서는 매복(埋伏)을 위해 만들었다. 의궤에 "비록 양식을 운반하는 길은 아니다(雖非糧道)"라는 기록은 군량을 운반하는 목적이 아니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용도(甬道)에서 용(甬)은 "솟을 용(甬)"이고, 도(道)는 "길 도(道)"이다. 말 그대로 주변보다 약간 높게 만든 길이다. 따라서 용도는 성(城)이 아니고, 성도 없다.


구조는 "3면을 돌로 여장을 쌓았고, 두께가 4척이고, 안 높이 5척이다. 여장 안 너비(幅)는 6보다"라 하였다. 그리고 여장에는 모두 원총안(遠銃眼)을 뚫어 놓았다. 

용도 여장에는 의궤에 원총안만 설치하도록 되었다. 왜 근총안을 뺐을까?

용도에 대해 살펴보며 3가지 의문이 생겼다.

하나는, 서남각루와 용도는 최초의 축성 계획에 없었을까?이고, 다른 하나는, 용도에 왜 원총안만 있을까?

그리고, 용도 길이는 왜 차이가 있을까?이다. "용도(甬道) 3대 미스터리"이다. 두 편에 나누어 확인해 보자.


먼저, 서남각루와 용도는 최초 축성계획에 없었을까?


안내문에 "화성 축성 초기에는 서남각루를 만들 계획이 없었던 듯하다"라는 설명이 있다.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으나, 아마 화성에서 가장 늦게 착수하고 가장 늦게 완성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잘못된 내용이다. 서남각루와 용도는 최초부터 축성계획에 있었다. 몇 가지 근거를 살펴보자.


첫째, 용도나 서남각루와 관련된 변경이나 추가에 대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변경이나 추가 공사가 아니라는 것은 최초부터 축성계획에 있었다는 증거이다.


변경과 추가 공사는 의궤에 기록을 남긴다. 그 예가 봉돈, 영화역, 성신사이다. 용도와 서남각루는 이들보다 위계가 높고 중요한 시설물이다. 이런 시설물을 기록도 남기지 않고 공사 중 변경했다거나 추가로 공사를 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화성 시설물 배치의 기준점은 4곳의 각루(角樓)이다.

둘째, 서남각루는 화성 배치설계에서 가장 먼저 배치해야 할 시설물이기 때문이다. 각루(角樓)라는 명칭 그대로 화성 내 시설물 배치의 기준점이었기 때문이다. 기준점이 먼저 확정되어야 후속 배치가 가능하게 된다.


기준점은 4곳의 각루(角樓)로 동북각루, 서북각루, 서남각루, 동남각루를 말한다. 화성에서는 4각8문(四角八門), 즉 4곳의 각루와 대문, 수문, 암문을 가장 먼저 배치 설계를 하였다.


셋째, 서남각루와 용도가 화성 전체에 미치는 전략적 영향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영향이 크면 클수록 최우선으로 배치하는 것이 원칙이다. 사소한 것을 먼저 배치한다는 것은 전략면이나 설계 기법에서 있을 수 없다. 


서남각루와 용도 위치는 적이 점거하면 화성 전체가 위험이 빠질 수 있는 요해처(要害處)이다. 만일 최초 계획에 없었다면, 화성은 지금과 같은 모양이 될 수 없다. 원성을 엄청나게 확대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정리하면, 용도와 서남각루는 최초부터 축성계획에 있었다. 공사만 늦게 착수한 것이다. 이유는 성(城)처럼 높지 않고, 공사량도 적고, 평탄한 터이고, 돌도 바로 캐어 사용할 수 있는 쉬운 공사였기 때문이다.    

용도를 최초에 계획하지 않았다면 이를 대체할 원성을 어마어마하게 늘렸을 것이다.

다음, 용도에는 왜 원총안(遠銃眼)만 있을까?


현재 복원된 용도에는 타(垜)마다 원총안 2개, 근총안 1개를 설치했다. 이 배치는 원성(元城) 여장과 똑같은 배치이다. 그런데 의궤에는 복원 상태와 다르게 원총안만 있다.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


당연히 복원이 잘못되었다. 이유는 용도에는 근총안(近銃眼)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근총안이 유효하지 않을까?


성(城)이 있고 없고의 차이 때문이다. 원성(元城)은 여장 밑에 높이 16척의 성이 있으나, 용도(甬道)는 여장 밑에 성이 없다. 성이 없을 경우에는 근총안은 아무 쓸모가 없다. 그래서 근총안을 설치하지 않은 것이다.


근총안을 사용할 정도로 가까이 접근했다는 것은, 이미 적이 용도를 넘은 것이나 다름없다. 원성은 높이가 높아 사다리를 설치해야 성을 넘으나, 용도는 성이 없기 때문에 여장에 도달하면 누구나 쉽게 넘을 수 있다..


정리하면, 용도는 높은 성 위에 위치한 시설이 아니라서 근총안은 효과가 없다. 원총안만 유효하기 때문에 용도에는 원총안만 설치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용도 여장에는 모두 원총안을 설치하는 것이 원형이다. 복원을 잘못하여 근총안도 설치하였다.

마찬가지로 용도에는 치(雉)도 거의 유효하지 않다. 용도 치에서 적의 측면을 볼 정도의 상황은 적이 여장을 넘은 것과 같은 형국이기 때문이다. 구조를 보아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


용도 치의 돌출 길이는 10척 미만이다. 반면에 화성 치의 돌출 길이는 모두 20척이 넘는다. 용도 치는 치의 기능을 할 수 없다. 그저 적에게 보여주는 위장(僞裝) 효과만 있을 뿐이다.  


정리하면, 용도에서 치(雉)와 근총안(近銃眼)은 유효하지 않은 방어 수단임을 알았다. 용도에서는 오직 원총안만 유효한 방어 수단이다. 이래서 용도에 모두 원총안만 설치한 것이다.  

용도에서 근총안의 가시범위는 3미터이고, 원성(元城)에서는 20미터이다.

현재 용도에 복원된 근총안은 잘못된 복원이다. 용도와 총안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해 생긴 결과이다. 여장이라도 원성, 옹성, 용도, 암문, 포루(砲樓)마다 모양, 두께, 높이가 다르다. 마찬가지로 총안의 종류와 배치도 다르게 계획해야 한다. 아쉬운 부분이다.


용도(甬道)의 입지 선택과 배치, 그리고 총안(銃眼)의 설계를 보면서 정조(正祖)의 전략적 마인드를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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