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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Aug 08. 2021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63

용도(甬道) 길이가 왜 차이가 날까?

용도(甬道)에 대한 내용에 화성성역의궤에서 유일한 오류가 있다. 무슨 오류일까?


용도(甬道) 길이가 왜 차이가 날까? 


팔달산은 남북으로 뻗친 화성의 진산(鎭山)이다. 능선 남쪽 서남암문을 나서면 용도(甬道)가 나온다. 형태는 "3면을 돌로 여장을 쌓았고, 두께가 4척, 안 높이 5척이다. 여장 안 너비(幅)는 6보(步)다"라고 하였다.


그 남쪽 끝에 서남각루(西南角樓)가 있다. 그 터에 대해 "용도 남쪽 끝에서 15보 떨어진 곳에서 두 번 구부러져 넓혔다. 위의 구부러진 곳의 너비 9보(上屈廣九步), 아래의 구부러진 곳의 너비 11보(下屈廣十一步)이다"라고 설명한다. 


용도는 가장 늦게 착수하고 가장 늦게 완성한 시설물이다. 성(體城)이 8월 18일에 모두 끝났고, 19일에 대호궤(大犒饋)를 한다. 오직 용도만 대호궤를 치르고도 한참이 지난 9월 7일에 완성된다. "호궤"란 공사에 수고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잔치다.


지금까지 용도와 서남각루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보며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이 생겼다. 서남각루 터가 왜 "그림(圖)"과 "설명(說)"이 서로 다를까?이다.

용도의 남쪽 끝에 화양루가 있다. 화양루는 서남각루의 별칭이다.

먼저, 도설(圖說) 중 그림(圖)을 보자. 서남각루를 둘러싼 여장의 모습을 보면, 1차 확장부가 2차 확장부보다 짧다. 총안(銃眼) 개수를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1차 확장부에는 1개이고, 2차 확장부에는 2개이다.(아래 의궤 그림)


다음, 도설(圖說) 중 설명(說)을 보자. "두 번 구부러져 넓혔다. 위의 구부러진 곳의 너비 9보, 아래의 구부러진 곳의 너비 11보이다"라는 기록이다. 이 말은 1차 확장부는 용도 폭 6보에서 9보로 3보가 넓어졌고, 2차 확장부는 9보에서 11보로 2보가 넓어졌다는 의미다.


도(圖)와 설(說)을 비교해보면, 그림(圖)에서는 1차 확장부가 2차 확장부보다 좁은데, 설명(說)에서는 1차 확장부가 2차 확장부 보다 넓게 되어 있다. 즉, 같은 도설(圖說)에서 도(圖)와 설(說)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1차 앞의 확장부가 2차 뒤의 확장부보다 짧다. 총안도 1개 적다.

도(圖)와 설(說) 중 어떤 것이 맞는 것일까?


일단 서남각루 터를 실측해 보았다. 1차 확장 길이는 3.58m이고, 2차 확장 길이는 6.10m가 나온다. 1차 확장부보다 2차 확장부가 더 넓다. 실제 화양루 터는 그림(圖)과 일치하고, 설명(說)과는 일치하지 않는 결과가 나왔다.  


이런 경우 실물과 그림(圖)이 원형일 기능성이 크다. 다만, 실물이 원형에서 변형되지 않았다는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필자는 도(圖)와 설(說) 중 그림(圖)이 맞는다고 판단한다.


우선, 전제 조건인 복원된 현재의 서남각루 터는 변형되지 않았다고 보았다. 여장은 훼손되어 거의 모두 복원된 것이다. 그러나 여장 기반석은 변형되지 않은 원형으로 판단했다.


이유는 서남각루 터가 민가에서 멀리 떨어진 산꼭대기라는 점, 터가 능선을 따라 형성되어 매우 비좁은 점, 서남각루 주변의 여장 기반석이 큰 편인 점이다. 이런 환경이 기반석을 떼어내 집에 가져가 쓸 수도 없고, 좁은 터에서 확장하였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서남각루 주변의 여장 기반석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다음으로, 설명(說)에 나온 2차 확장부 2보(步) 길이로는 총안을 1개도 설치할 수 없기 때문에 맞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용도를 확장한 목적은 서남각루와 여장 사이에 이동 통로를 확보하고, 양쪽으로 돌출시켜 "치(雉)"를 설치하기 위한 것이다. 의궤에서 "남쪽 끝에 이르러서 또 동서 쪽 좌우로 치성을 설치하였다"란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2차 확장부 길이는 한쪽이 1보이다. 1보(1.18m)는 여장 두께 4척(1.2m)과 같다. 한마디로 여장 두께 빼면 총안을 설치할 여장 면(面)이 0(제로)이란 말이다. 치(雉)를 설치할 목적으로 늘렸는데 치를 설치할 공간이 없게 늘렸다는 것은 목적에 맞지 않는다. 설명(說)이 맞지 않는다는 근거이다.


종합하면, 그림(圖)과 실물이 일치하며 맞는 내용이고, 설명(說)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총안 2개를 설치할 수 있으려면, 11보가 아니라, 15보가 되어야 한다. 틀린 부분은 "아래의 구부러진 곳의 너비 11보(下屈廣十一步)" 부분이다. 바르게 잡으려면 "아래의 구부러진 곳의 너비 15보"로 수정해야 한다. 

복원된 서북각루 터는 두 번째 확장 길이가 첫 번째 확장 길이보다 길다. 의궤 그림(圖)과 일치한다.

이 오류는 의궤 여러 곳으로 연결된다. "설(說)"에서 "용도 길이 367보(步)", "개기(開基)" 편에서 "용도 터 367보"와 "화성 터 합계 5,130보", 그리고 "여장(女墻)" 편에서 "용도 여장 68첩(堞)" 부분 모두가 수정되어야 한다.


필자는 번역본에서 오류를 여럿 보았지만, 원본에서 이런 중대한 오류는 처음이다. 왜 이런 오류가 생겼을까? 참 궁금하다. 추정을 해보자. 


용도의 공사일정을 보자. 성역 마지막 해 8월 18일 모든 성(體城)이 완료되고, 21일 후 9월 7일에 용도 공사가 끝난다. 모든 성역 중 가장 늦게 끝난 것이다.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다음 세 가지다. 변경에 대한 보고를 누락했을 경우, 변경 내용을 보고할 조직이 없어졌을 경우, 그리고 기록 과정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다.


이 중 보고 누락과 조직이 없었다는 가능성은 배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도(圖)와 설(說) 중 그림(圖)에는 정상적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설명(說)을 기록한 쪽이 문제다. 

서남각루 터의 길이 오류는 성역의궤 기록 중 중대한 오류이다.

필자의 추정은 이렇다. 감동(監董)이나 상급 장인이 모두 떠나고 하급 장인이 마지막으로 용도 공사를 맡았다. 현장에서 통로 확장과 치(雉)의 설치가 필요하다 판단하여 설계를 변경하여 공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변경이 발생하면 보고를 하여 준공도서, 즉 의궤에 반영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에 따라 장인은 보고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림(圖)에는 반영되었고, 설명(說)에는 반영되지 못하였다. 아마 설명을 작성하는 조직에 문제가 있었다고 추정한다.


이유는 관련 조직이 한양으로 복귀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시점에는 사실상 각자의 원래 부서로 흩어진 상황이어서 반영을 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너무 아쉽다.  

용도가 완성될 시점에는 여러 관리 조직이 한양으로 복귀하고, 원래의 각자 부서로 흩어졌을 것이다. 

요즘에는 준공도면은 설계사에서, 준공 건설지(誌)는 전문 용역업체에 맡겨 완성된다. 전문업체는 착공식부터 기록을 시작한다. 그러나, 227년이 지난 지금도 누락, 오류는 꼭 발생한다.  


비록 변경은 그림(圖)에만 반영되었지만 꼭 필요한 것을 변경하여 시공한 하급 기술자의 장인정신(匠人精神), 그리고 소신(所信)을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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