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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Dec 04. 2021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77

[화성 문답] "총수(銃手)의 사대(射臺)"는 어디 있을까?

동장대 "총수(銃手)의 사대(射臺)"는 어디 있을까?


동장대는 3개의 대(臺)로 이루어졌다. 아래로부터 하대(下臺), 중대(中臺), 상대(上臺)이다. 대(臺)란 경사지에 건축물이 들어설 평평한 땅을 조성한 것을 말한다. 


의궤에 중대(中臺)를 설명하며 "총수(銃手)가 숨어서 쏘기 편하게 하였다(以便銃手藏放)"라는 설명이 있다. 이는 중대(中臺)에 총 쏘는 사대(射臺)를 만들었는데, 적에게 보이지 않고(藏), 총을 쏘기(放)에 편한 곳이라는 의미다.


중대의 어느 부분이 "총수의 사대"일까? 

눈앞에 두고도 알지 못하는 특이한 장소다.

하대와 중대 사이에 경사로 양옆으로 돌이 깔려있는 턱이 진 부분이 있다.

답(答)은 "하대와 중대 사이에 턱이 진 부분"이다.

지금은 잔디가 깔려 있다. 폭은 4척(1.2m)이다.


그런데 이곳에 앉아 몸을 숨길 경우 총부리는 동장대 건물을 향하게 된다. 즉 우리 병사가 우리 장수를 향해 총을 겨눈 형국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 때문에 사대를 눈앞에 두고도 "설마 이곳이"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 장수를 향하는 것이 아니고, 전투 시 성을 넘어 동장대에 침입한 적들을 향하는 것이다. 고정관념이 무섭긴 무섭다.  


과연 총 쏘기 위해 만든 것일까?

잔디가 깔린 부분이 "총수의 사대"이다. 당시에는 돌이 깔려 있었다.

답(答)은 "아니오"이다.

이유를 살펴보자.


사대를 만든 이유는 구조적 안정성 문제 때문이다. 하대(下臺)와 중대(中臺)의 높이 차이는 7척 5촌이다. 이런 높이 차이에 생기는 토압(土壓)을 장대석(長臺石)에 분담시키는 것은 위험하다. 장대석은 두께나 높이보다 길이가 긴 돌이다.  


성 돌(城石)처럼 내탁(內托) 쪽으로 깊숙이 박은 것도 아니고, 겉에 쌓아 올린 장대석으로는 장기적으로 균열과 붕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면서 의장(意匠)도 함께 해결하는 방안으로 1단을 2단 구조로 바꿔 토압(土壓)을 분산시킨 것이다. 그리고 바닥에 돌을 깔아 2단 장대석을 버텨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결과로 하대와 중대 사이에 너비 4척 1개 층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생긴 4척 부분을 의궤에 "총수(銃手)의 사대(射臺)"로 포장해 기록한 것이다. "포장해 기록했다"는 근거로 두 가지를 제시해 본다. 


하나는, 이렇게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성역의 총책임자인 감동당상(監董堂上) 조심태(趙心泰)가 성역 후에도 의궤를 작성하는 총책임자인 당상(堂上)을 맡았기 때문이다. 기록은 힘 있는 자의 자기 미화(美化)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사대에서 동장대에 침입한 적을 향해 총을 쏠 일이 생긴다는 자체가 화성 전체가 함락된 것을 의미한다. 있을 수 없는 상황을 가정한 "사대(射臺)"이다. 마치 함락될 것을 가정해 적장에게 항복하는 의식을 행하는 공간을 미리 만든 것과 같은 논리이다.


성역의궤  도설(圖說)에 보면 설(說)에는 4척 너비 1층으로 설명하고 있고, 도(圖)에는 2척 너비 2층으로 그려져 있다. 설명과 그림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확인은 후학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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