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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Dec 31. 2021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80

[화성 문답] 시설물 간 호칭 

시설물 사이에 어떻게 위치를 표현했을까?


화성에는 19개 유형에 60개 시설물이 있다. 의궤에 시설물을 기록하며 위치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궁금하다. 어찌 보면 이를 통해 당시 조상들의 생각이나 기록의 제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의궤에 전체 시설물 간 위치를 표현한 기록이 한 곳 있다. 시설물 터(址)와 시설물 간 거리를 소개하는 의궤 권수(卷首) "개기(開基)" 부분이다. 전체는 분량이 너무 많아 3 곳만 소개한다. 


"북동포루의 서쪽으로 128보 되는 곳에 북동치 성터가 있다", 

"치성으로부터 남쪽으로 점점 가파르게 된 데를 따라 121보 4척쯤 되는 거리에 서포루가 있다", 

"남옹성에서 동으로 41보 1척쯤 되는 거리에 남동적대가 있다"라는 기록이다.


60개 시설물 전체를 살펴보니, 시설물 간 위치 관계는 "서쪽으로", "남쪽으로", "동으로", "북쪽으로"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왼쪽, 오른쪽, 앞쪽, 뒤쪽, 위쪽, 아래쪽이 아니다. 즉 상오 위치 관계를 방위(方位)를 이용해 표현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표현에 규칙(Rule)은 없을까? 

의궤에는 화홍문에서 시작하여 시계 반대방향으로 시설물 간 위치를 말하고 있다.

"개기(開基)"에 언급된 모든 시설물을 분석해 보면 아래와 같은 일정한 룰(Rule)이 보인다.


첫째, 화홍문(華虹門), 즉 북수문에서 시작하여 시계 반대방향으로 기록하였다. 매우 중요한 기준이다. 이 방향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성역 의궤를 화성 연구의 기준으로 보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여러 부분에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기게 된다.


둘째, 앞에 있는 시설물을 기준으로 뒤에 있는 시설물의 위치 관계를 표현하였다.


셋째, 시설물끼리 방향을 표현할 때 전후, 좌우, 상하가 아닌 방위(方位)를 사용하여 표현하였고, 표현된 방위명(方位名)에도 일정한 규칙을 보여주고 있다. 즉,


동북공심돈에서 서1치까지는 모두 "서쪽"을 적용했고, 

서1치에서 서남암문까지는 모두 "남쪽"을, 

서남암문에서 동남각루까지는 모두 "동쪽"을, 

그리고 동남각루에서 동북공심돈까지는 모두 "북쪽"을 사용했다. 

따라서 동북공심돈, 서1치 서남암문, 동남각루 4 지점에서 방위가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남각루에서 본 남공심돈 모습이다. 남공심돈에서 남수문은 90도 직각으로 성이 꺾이었다.

예외가 두 곳 있다.  

하나는, 남공심돈에서 남수문을 표현할 때 "북쪽으로"를 사용했다.  

다른 하나는, 서북공심돈에서 화서문을 "남쪽으로"로 적용했다.  

이 두 곳 모두 90도 직각으로 꺾이는 특별한 곳이다. 이런 배치를 한 이유는 화서문과 남수문 때문이다. 두 문의 앞으로 전진 배치시키다 보니 직각이 된 것이다. 


일부 화성 연구가들은 의궤 체계와 전혀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 시작점을 장안문으로 하고, 방향을 의궤와 반대로 시계방향으로 돌고 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살펴보자.  


"서북공심돈 터를 돌아 꺾이어 남쪽으로 향하여 15보 4척쯤 가면 화서문 터가 시작된다. 화서문 넓이가 14보 4척이다. 여기서부터는 평지가 끊어지고, 산을 타고 오르게 된다. 146보쯤 올라가면 서북각루에 이른다. 또 서쪽으로 70보쯤 되는 곳에 서1치 터가 있다" 이상은 서북공심돈에서 서일치까지를 설명한 의궤 내용이다. 


만일 시계 방향을 적용한다면, 위 의궤 내용에서 시설물 순서, 지형, 방향, 거리 표현 모두를 바꾸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설혹 바꾼다 할지라도 연구자마다 표현이 천차만별이 될 것이고, 연구에 혼란이 초래된다. 


"서쪽으로"는 "남쪽으로"로 주장할 것이고, 서1치에서 서북각루에 이르는 거리는 70 보보다 짧아지는데 거리를 그 누구도 결정할 수 없고, "터를 돌아 꺾이어"도 각자의 표현으로 바꿀 것이다.    


이래서 옛 것을 연구하는 데는 기준과 원칙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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