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먼저 다녀오는 곳

by 나무를심는사람

“어디에 있든, 마음은 늘 그곳으로 먼저 돌아간다.”


자취를 시작하고
아빠와 함께 살던 집을 떠난 지

1년이 넘었을 무렵,
문득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창밖을 보다가,

늦은 밤 혼자 컵라면을 먹다가,
며칠을 건조대에 걸려있던 빨래를 개다가,
심지어는 알람을 끄고 눈을 감을 때에도
자꾸 마음은 나의 기억 속 어느 골목 끝,
작은 마당이 딸린 집으로 향했다.


그 집엔 언제나 조용한 오후와
습기 머금은 나무 냄새,
그리고 아빠가 있었다.


사람에겐 누구나 마음이 먼저

다녀오는 곳이 있다.
재촉하는 발이 닿기도 전에
이미 마음이 먼저 가 있는 장소.

나에겐 그게 아빠가 있는 집이었다.


연락도 자주 못 하고,
찾아가지도 못하면서
이상하리만큼 마음은 늘

그곳으로 먼저 달려가곤 했다.


무언가 버거운 하루를 보냈을 때,
조금은 이유 없이 외로울 때,

마음속 균형이 살짝 기울어져

흐느적 비틀댄다고 느껴질 때마다
나는 늘 그 집의 부엌 불빛을 떠올렸다.


어릴 땐 몰랐다.
왜 아빠가 항상 집에 먼저 와 있는지,
왜 식탁 위엔 늘 따뜻한 국이 있었는지.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건 언제든 마음을 풀 수 있는 곳을,

돌아올 수 있는 곳을 만들어 주기 위해
아빠가 정성껏 마련한 둥지라는 것을.


내가 도착하기 전에 아빠가 머문 집엔 항상
내 마음을 받아줄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던 거다.

지금은 그 집에 더 이상 아빠가 머물지 않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그곳으로 닿아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을 때,
‘집에 가야지’라는 말보다 먼저
‘그곳에 다녀와야지’하고 떠오르는 곳.

마음이 먼저 향하는 그 장소는

언제나 온기가 머물고 있었다.


그저 편안하고,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언제든 다녀가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아직도
지금 사는 곳보다 그곳이 더 익숙하다.

그곳엔 아빠가 남긴 무언가가 있다.

온기, 기다림, 그리고 내 마음보다 먼저
나를 알아보던 눈빛.


아빠,
지금은 거기 없지만
제 마음은 여전히 그곳을 향해요.

낯선 도시에서 지친 날엔
당신이 식탁을 정리하던 소리를,
밤늦게 창문을 여는 순간엔
당신이 켜두던 부엌 불빛을 떠올려요.

당신이 있었던 그 집은
이제 제 마음의 귀향이에요.


어디에 있어도
제 마음이 먼저 다녀오는 그곳.
그건 언제까지나 아빠일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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