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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산업의 보이지 않는 허리

창작과 기술의 교차점, 그곳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있다.

by 나무를심는사람
위기 속에서 피어나는 창의의 씨앗, 다시 피어오르는 혁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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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산업의 생태계를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허리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다. 플랫폼과 대형 IP 기업이 산업의 전면에 서 있다면, 이들은 그 밑에서 창작의 토대를 만들고 기술적 혁신과 실험을 주도하는 실질적인 엔진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그들의 존재는 여전히 ‘보조적 역할’로 인식되며, 정책적 지원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산업의 정체기일수록, 성장의 뿌리를 지탱하는 이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웹툰 산업에서 중소기업·스타트업의 가치는 다양성과 혁신성에 있다. 플랫폼 중심의 구조 속에서도 새로운 장르, 포맷, 유통 방식, 기술 솔루션을 시도하는 곳은 대부분 중소 규모의 제작사와 스타트업이다. 이들은 실험적 시도를 통해 시장의 한계를 확장하고, 대기업이 감수하기 어려운 리스크를 대신 떠안으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한다. 최초의 전문 웹툰 플랫폼이나 현존하는 장르형 웹툰 플랫폼들이 그렇고, 중소 제작사는 수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며 작가들과 다양한 장르의 협업을 꾸준히 도모한다. AI 작화 지원 툴이나 자동 채색 솔루션, 번역 및 현지화 플랫폼, 데이터 기반 스토리 분석 툴 등 웹툰 생태계의 효율을 높이는 핵심 기술들은 대부분 스타트업에서 출발했다. 결국 산업의 ‘혁신 인프라’는 이들의 손에서 태어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웹툰 산업이 성장의 고점을 지나 정체 단계에 들어서면서, 시장 내 자본과 트래픽이 상위 플랫폼으로 집중되고 있다.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인력과 자금, IP 경쟁에서 이중의 압박을 받는다. 특히 플랫폼 수수료와 광고 단가의 불균형, 외주 구조의 불안정성, 유통 과정의 정보 비대칭은 이들이 독자적인 비즈니스를 지속하기 어렵게 만든다. 공공 지원 제도 역시 창작자나 대기업 중심으로 설계되어, 중소 제작사나 기술 스타트업에는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부 과제에 참여하더라도 행정 부담이 크고, 단기 실적 중심 평가로 인해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이어가기 어렵다.


이러한 어려움의 근본 원인은 '파인애플 현상'에서 설명하듯이 ‘산업 중간층의 부재’에 있다. 플랫폼과 작가 사이를 연결하고, 콘텐츠를 기술과 시장으로 확장하는 중간 조직들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생태계는 ‘대기업‑창작자’의 양극 구조로 재편되었고, 그 사이에서 중소기업들은 투자와 인력 유출에 시달리며 생존을 위해 하청형 구조로 밀려나고 있다. 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산업 전체의 혁신 속도도 둔화될 수밖에 없다.


해결의 방향은 명확하다. 첫째, 중소기업·스타트업을 위한 전용 펀드와 보증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IP를 담보로 한 자금 조달이 가능하도록 ‘웹툰 IP 가치평가 모델’을 표준화하고,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투자하는 매칭펀드 형태의 ‘웹툰 혁신 펀드’를 조성해야 한다. 둘째, R&D와 기술개발 지원을 창작자 중심에서 산업 인프라 중심으로 확장해야 한다. AI·번역·데이터 분석·저작권 관리 등 생태계 기반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에 대한 세제 감면과 장기 지원이 필요하다. 셋째, 중소기업 간 협업 네트워크를 구축해 공동제작·공동마케팅을 촉진해야 한다.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해외 진출, 현지화, 마케팅 비용을 공동으로 분담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나아가 정부는 단순 보조금보다 ‘성과 공유형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지원금이 일회성 사업으로 끝나지 않도록, 매출·고용·수출 등의 성과에 따라 추가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이를 다시 산업 내로 재투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동시에 중소기업을 위한 법률·회계·저작권 컨설팅을 상시 제공하는 ‘웹툰 산업 지원센터’를 권역별로 설치해 행정과 경영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


앞으로의 웹툰 산업에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단순한 하청업체가 아니라 ‘창작과 기술의 교차점’을 담당할 핵심 축이 되어야 한다. 이들의 성장은 곧 산업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다. 대기업의 독주가 아닌, 다양한 기업이 참여해 상호보완적 구조를 이루는 생태계야말로 진정한 산업 경쟁력의 기반이다.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플랫폼은 이제 이들의 잠재력을 ‘보조’가 아닌 ‘투자’의 대상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웹툰 산업은 정체의 벽을 넘어,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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