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세상과 마주설 수 있었던 이유, 그건 한 손을 꼭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란다는 건
세상과 혼자 마주 서는
연습을 한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처음은
두려움으로 시작된다.
그 처음의 두려움 앞에서
내 손을 잡아주던 사람이 있었다.
아빠였다.
기억난다.
유치원에 처음 가던 날.
나는 그날 유난히 말을 아꼈다.
새 가방, 새 신발, 새 옷.
모든 게 반짝이지만 낯설기만 했고
두근거리는 마음보다
겁이 더 컸던 것 같다.
현관 앞에서
나는 문지방을 넘지 못하고 서성였다.
“다녀올게.”
라는 말을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아빠가 내 손을 잡았다.
“괜찮아. 처음은 다 무서워.
근데 하윤이는 무서운 걸 느끼는 만큼
그만큼 잘해낼 거야.”
그 말과 함께
아빠는 내 손을 가볍게 쥐어줬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앞으로 걸어 나갔다.
작은 내 발걸음 옆에
한 걸음 뒤를 따라오던 아빠의 그림자.
나는 그 그림자를 따라 걸었다.
그 이후로도
세상엔 수많은 ‘처음’이 있었고
나는 그때마다
아빠 손을 먼저 찾았다.
피아노 발표회 날,
생애 첫 체육대회 날,
교실에서 손을 흔들며
처음 혼자 버스를 타던 날.
그 모든 순간들에는
언제나 내 손을
조용히 감싸주는 손이 있었다.
말없이 뒤에서 밀어주던 그 손이
그땐 그렇게 당연했지만
지금은 얼마나 그립고 따뜻한지.
언젠가부터
나는 스스로 손을 뻗는 일이
점점 어려워졌다.
어릴 적엔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 손을 잡을 수 있었을까.
지금은 손을 내밀기도 전에
이해와 설명이 필요해졌다.
‘이 손을 왜 잡는지’
‘내가 지금 약하다는 걸 보이지는 않을지’
‘혹시 거절당하진 않을지’
그런 생각들이
어른이 된 나의 손끝을 주저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지금도
어디선가 위태로운 마음이 들 때면
무의식중에 손을 들어
무언가를 붙잡고 있다.
지하철의 손잡이,
가방 끈,
내 옷자락,
때론 아무것도 아닌 공기마저도.
그건 아마
아빠의 손이
아직도 내 기억 속 어디에선가
나를 감싸주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아빠는 내게
‘혼자서도 괜찮아’라는 말을
결코 혼자 있게 두고 하지 않았다.
늘 손을 잡아준 다음에
그 말을 건넸다.
그래서 난 믿을 수 있었다.
나는 언젠가
진짜 혼자서도 괜찮아질 수 있다는 걸.
이제 내 손은 자랐고,
누군가의 손을
붙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 안엔
어릴 적 내 손을 꼭 잡아주던
그 손의 기억이 살아 있다.
아빠,
당신이 잡아줬던 그 손이
지금도 저를 걸어가게 해요.
그 처음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작고 따뜻한 당신의 손 때문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