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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작은 전시회

'나'와 달랐던 '나'

by 새긴이 Jan 10. 2025

나만의 작은 전시회에 오늘도 그림을 놓고 있다. 캔버스에 바로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넣고 있다.’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그림을 그릴 때에는 나의 고요한 시간 속에 무자비하게 펼쳐지는 시끄러운 바람 소리에 앞만 보고 달려간다. 배고픈지도, 어딘가에 베여서 아픈지도 몰랐다. 그저 앞만 쳐다보았다.

그림을 만들고 전시회에 넣는 것은 며칠 되지 않았다. 또한 내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실력도 되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저 그리고 싶었다. 아니, 그려야만 될 것 같았다.

엉망진창인 선과 거친 색을 입히는 것을 누가 볼까 생각한다. 하지만 걱정과 별개로 일 같이 보는 사람이 있다.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모호한 표정으로 내 작품을 흩어본다. 그 사람의 눈에는 안광이 없었고, 입에도 생기가 없었으며 굳게 닫혀있었다. 하지만 곁에서 그의 얼굴을 보았을 때, 그 사람의 옅은 미소가 느껴졌다. 그 미소는 내 그림에 원동력이 되어있었다. 그가 내 그림을 봐서 언제 다시 웃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그림의 주제는 대부분 2가지로 그리고 있다.

크게 사람의 형태와 풍경의 형태를 그리고 있다.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운 것은 아니고 내가 보고 느낀 대로 선을 따라 그리고 있다.

사람의 형태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눈앞에 있다. 지금은 내 살점이 뜯겨 나가는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노려본다.

‘너의 이야기를 쓰고 있어서 나를 그렇게 보는 걸까? 너의 모습을 그릴 때에는, 너를 볼 때에는 입과 눈이 찢어지며 기괴하게 웃고 있었는데...’

잠시 너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 날 보고 있어서 생각을 접고 너를 그렸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니 다시 기괴하게 웃고 있다. 비이상적으로 찢어진 입으로 나를 맞이해 주었다.

‘너’가 ‘나’를 맞이해 주면 너를 구석구석 그림으로 옮긴다.

너도 좋은지 찢어진 입가 위로 미세하기 떨림이 느껴진다.

그 떨림 위에 펜으로 한 선씩 정성스럽게 너를 잇는다.

너를 그리면 그릴수록 점점 희미해지며, 사라지기 전에 너를 기억하려 선이 빨라진다. 그림을 보며 다 그렸다 싶어질 시기에 너는 내 앞에서 사라져 있었고, 너는 나의 작품에 갇혀있었다.


풍경은 매일 같은 꿈을 꾸지는 않지만, 내용은 다 비슷하다. 나의 전시회에 전시된 너에게 쫓기며 도망가는 꿈을 꾼다. 너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지만,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꿈 속에서는 너를 무서워할 뿐이다.

내 다리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너를 피하며 보이지 않을 때까지 뛸 뿐이다.

나는 너를 피해 도망 다닐 뿐이었고, 그 길에는 나를 도와주지 않는지 험난하고 더러운 길 밖에 없었다. 매일 그 험난한 길에서 도망치고 나면 그 꿈의 종착역은 철로가 끊어진 막다른 길이였다. 그 벽 앞에서 절망을 느끼고 있는 사이에 너에게 잡아먹히며 그 꿈에서 깨어난다.

그 악몽에서 깨어나면 매일 아침 숨을 헐떡인다. 실제 뛴 것처럼.

가끔은 가위가 눌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눈만 뜨고 있으면 내가 걱정되는지 입꼬리를 올린 채 웃으며 다가온다. 다가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 눈을 바라본다.

다시 눈을 감으며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너의 모습을 그리는 어느 날에 좁은 틈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어온다. 그 빛은 조그마하지만 나에게 들러붙어 싫다고 표현해도 뗄 수 없었다. 그 빛은 따스한 느낌이 들었지만, 나의 존재가 그것을 부정하고 있었다.

내가 이곳에 있어도 되나 정도로 따뜻해서 그걸 부정하기 위해 커튼을 내리러 창문에 다가갔다. 그 순간 따스한 빛 뒤에 숨어있던 내 모습이 드러났다.

그 모습은 내가 그리고 있던,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너’가 나의 눈에 비추어졌다.

떨리는 발걸음으로 천천히 창문으로 다가갔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빛이 나오고 있는 벽에 손을 가져다 댔다.

나의 생각을 읽는 듯 너도 나에게 손을 뻗는다.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따스한 빛 위에 차가운 벽은 우리를 만나게 해주지 않았다. 진실을 일깨워주는 차가운 벽은 나를 더욱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내 심장은 미친 듯이 쿵쾅거렸고, 잔잔하게 내뱉고 있던 호흡은 가빠지고 있었다.

두 손으로 내 머리를 부여잡다가 딱딱한 바닥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곧이어 귀에서는 죽은 사람들처럼 삐 소리가 났다.

그 이후로 기억이 없다.


눈을 떴을 때에는 나는 누워있었고, 시계소리만 날카롭게 소리를 내며 나를 재촉하고 있었다. 아까의 일을 믿을 수 없어 화장실로 가서 거울을 보았다.

하얗게 질리고 초췌해진 얼굴과 헝클어진 긴 머리, 거울에 비추어지는 내 못생긴 손가락이 ‘너’처럼 기괴하게 웃고 있지는 않았지만, 내 얼굴에 ‘너’가 보였다.

‘너’가 ‘나’라는 사실은 안 그날 밤에도 악몽을 꾸었다. 기괴하게 웃은 채로 나를 쫓아온다. 그날따라 숨이 찼다. 어쩔 수 없이 달려오는 너에게 잡히는 것을 기다릴 뿐이었다. 매일 꾸었던 꿈의 엔딩처럼 너는 나를 잡는다. 하지만 오늘은 ‘잡는다’라는 표현보단 ‘감싼다’라는 표현이 알맞을 것이다.

너의 안은 솜이불처럼 날 포근하게 감쌌다. 그러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눈물이 나왔다. 이 느낌을 처음 겪어본다. 편안한 우주에 온 것만 같았다.

눈을 뜨자 내 눈에는 눈물이 나오는 중이었고, 아무리 눈물을 닦아보아도 멈추지 않았다. 잠에서 깰 때에도, 눈물을 닦는 중일 때에도 생각이 났다.


"다시 그 꿈을 꾸고 싶다."

그 꿈을 다시 꾸어서 미안해라고 사과하고 싶었다. 너에게. 아니 ‘너’였던 ‘나’에게

나는 너를 받아들이려고 한다.


어느덧 그 전시회는 ‘나’만 볼 수 있는 그림일기장으로 변해있었다.

부정적인 따스함이 그 공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나의 일순간 이었지만 이것도 나의 소중한 과거라고 생각한다. 나의 무의식은 슬픔의 끝자락에서 온전한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을까?

단지 모습이 다른 채로 나를 기다려주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표현하는 방법이 달랐지만 응원해주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조심스럽게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기다려주어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너’였던 ‘나’에게


 


오늘도 나만의 작은 전시회에 그림을 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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