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캐리의 이야기 Jan 09. 2020

명백한 퇴보 속, 밝게 빛난 희망

주관으로 무장한 2019 Cary awards 국내 영화 부문


영화 <버닝>, <공작>, <완벽한 타인>, <죄 많은 소녀>, <소공녀>, <암수 살인>.

제가 2018년 한국영화 떠올을 때 얼른 생각나는 제목들입니다.

2018년과 2019년은 한국영화 완성도의 평균치에 있어 퇴보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망작이나 졸작, 좋지 않은 영화들이 넘쳐나는 와중에 잘 만든 몇 작품들이 빛을 발했다 하겠습니다.

2019년에는 <기생충> 단연 빛났고 <벌새>도 국내 영화계의 큰 희망을 봤다 여길 만큼 훌륭했지만,  외에는 몇몇 작품을 빼면 크게 칭찬할만한 영화를 찾기 힘들었다는 게 저의 개인적인 평가입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캐리 인사드립니다.

2019년이 지나갔습니다.

저에게 작년 한 해는 유난히 길고 지루했습니다.

작은 변화의 시기였던 만큼 다사다난하게 보냈죠.

여러분 2019년은 어떠셨는지요?

이번 포스팅은, 개봉일을 기준으로 2019 년에 발자취를 남겼던 우리나라 영화 중 개인적으로 좋았다 생각하는 작품을 10위부터 1위까지 꼽고 가장 훌륭한 연기를 선보인 배우까지 선정하려 합니다.

저의 주관에 입각한 여러 가지 요소를 완성도로 기준 삼아 선정하는 것이며, 당연하게도 각 작품의 소개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될 것이니 원치 않는다면 여기서 읽기를 멈춰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제가 뽑은 2019년 한국영화 결산, 시작해보죠.



10 위는 <배심원들>입니다.

[ 홍승완 감독. 박형식, 문소리 주연 ]

영화의 장점은 소재의 시의성과 신선함, 배우들의 균형 잡힌 연기라 하겠습니다.

'국민 참여 재판'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저절로 관심을 끌만큼 우리나라에서 다루기 좋은 소재였고, 이를 통해 법률 용어 사용에 따라 자칫 어려워질 수 있는 법정 영화의 딜레마를 영리하게 극복한 점이 좋았습니다.

단점은 간단합니다.

이제는 하다 하다 판사마저 순간적인 감정에 동요해 즉석에서 판결을 뒤집는 한국영화의 지긋지긋한 억지 감동 만들기.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가느라 언급했어야 할 사회적인 메시지를 대부분 짚고 넘어가지 못한 입니다.


9위는 <블랙 머니> 입니다.

[ 정지영 감독. 조진웅, 이하늬 주연 ]

이제는 우리의 머릿속에서 희미해져 버린 '론스타 외환은행 게이트'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그려낸 영화입니다.

금융계와 사법기관의 이야기를 다룬 만큼 다소 복잡하고 어렵게 진행 수 있었던 전개를 쉽고 명료하게 풀어냈죠.

가장 큰 장점은 메시지의 전달에 있습니다.

투자 및 금융계의 수뇌와 자본을 쥔 사람들이 국민의 돈과 마음을 어느 정도로 여기는지, 그리고 검찰이라는 조직이 직면한 상황과 이권에 따라 얼마나 아무렇지 않게 태세를 바꿀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영화라 생각합니다.

다른 때와 달리 이하늬의 연기가 유난히 좋았고, 조진웅도 잘했지만 너무 대놓고 결의에 찬 모습이 잦아서인지 저는 조금 오그라들더라고요.

반면 너무나 순수하고 단순한 대사들로 다소 유치하게 흘러간다거나, 정의감에 가득 찬 주인공 양민혁의 태도 탓에 인물 내면의 갈등을 섬세히 그리지 못 것, 극의 전개에 치밀한 긴장감을 더하는 것에 실패 부분은 단점이라 하겠습니다.


8위는 정말 오랜만에 재미있게 본 국내 로맨틱 코미디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입니다.

[ 김한결 감독. 김래원, 공효진 주연 ]

김래원도, 공효진도 배우로서 개성이나 색이 선명한 편에 속한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전 출연작들 <희생 부활자>,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 <도어락>, <뺑반> 등 하나같이 안 좋은 영화들이었다는 점도 기대치를 낮추는 데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둘 다 힘을 많이 뺐어요.

그냥 일상적인, 제목 그대로 보통의 사람들이 겪는 보통의 연애를 잘 연기했습니다.

이야기의 거의 모든 진행을 술에 의존해 풀어간다는 것에는 고개를 저었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도 그런 풍경에 살고 있지 않나 싶어 웃음이 나는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두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이 순수하게 즐거웠던 작품입니다.

식상하기 그지없던 우리나라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오랜만에 미소를 머금은 채 감상하게 해 준 영화.

가볍게 감상해봐도 좋을 것 같네요.


7위도 마찬가지로, 국내에선 기대가 없던 장르에서 만난 의외의 웰메이드 재난영화 <엑시트>입니다.

[ 이상근 감독. 조정석, 윤아 주연 ]

'너무나 뻔해 보였던 영화, 역시 유치 찬란하겠구나 싶었던 영화, 캐스팅만으로 고개를 갸웃했던 영화.'

이것이 <엑시트>의 예고편을 보고, 제가 느꼈던 소감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 꽤 잘 만들었어요.

재미있고, 연기도 좋고, 보다 영화가 주제에 충실합니다.

재난 영화의 주인공들이 구조와 생존이라는 것에 성실하고 진정성 있게 매진하는 부분이 그렇습니다.

가장 좋았던 국내 재난영화가 가진 전형성에서 벗어났다는 점입니다.

막대한 제작비를 들이고도 어색하고 부적절하게 남발되는 CG, 지긋지긋한 억지웃음과 신파, 감초처럼 등장하는 정계나 재계의 무능과 비리, 재난 현장에 항상 숨어있는 평면적인 악당 등의 요소를 탈피했습니다.

영화가 깔끔해요.

재난의 원인인 유독가스의 위험성에 대한 묘사가 너무 부족하다는 점은 단점이라 하겠습니다.

가스의 피해를 보여주는 건 기껏 기침을 하며 도망치는 사람들과 병원에 실려가는 주인공의 누나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재난을 대피하고 극복해 나가는 장면들에 있어 긴장감이 떨어지죠.

영화 막바지의 분위기도 이상합니다.

이게, 억지 신파나 눈물을 피하려는 건 알겠는데 국가적인 재난상황을 겪은 후의 분위기가 너무 밝아요.

뉴스 앵커의 목소리에서는 즐거움마저 느껴지는데, 이건 심하죠.

이러다 보니 재난 자체가 별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피해도 꽤 있었을 테고, 순간적으로는 사회 시스템이 마비될 만큼 큰 재난 아니었나요?

이런 부분들을 보완했더라면 잘 빠진 국산 재난영화가 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칭찬할 부분이 많은 영화였던 것은 확실합니다.

이 정도면 2009년에 160억의 제작비를 들인 <해운대>, 2015년에 155억을 쓴<판도라>, 2012년 160억의 제작비를 쓴 <타워> 등 한국형 재난영화의 졸작 행렬에 경종을 울렸다 해도 무방할 완성도입니다.  제작비 260억의 <백두산>을 보니 아직 멀었습니다.

아, <엑시트>는 2019년에 고작 130억 써서 만들었어요.


6위는 한국형 오컬트 영화 <사바하>입니다.

[ 장재현 감독. 이정재, 박정민, 이재인, 유지태 주연 ]

해마다 개봉하는 호러 영화를 모두 관람하는 건, 어떤 면에서는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무섭거나 찜찜해서가 아니죠.

그만큼 짜임새를 갖춘 작품들이 나오기 힘든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단순 공포물이라면 그래도 플롯의 개연성과 서스펜스의 배치, 공포 요소의 연출 등으로 재미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컬티즘을 깔고 가면서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어설프게 따라 했다간 금세 베낀 티가 나거나 허술하기 그지없는 영화가 나올 게 뻔하고, 복선이 하나라도 틀어지면 맺기에 급급한 모습들이 빤히 드러나기 때문이죠.

너무 깊게 들어가면 금세 전문적인 분야들과 상충해 현학적인 인상까지 줄 수 있는 것이 오컬트라는 요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잘 만들어졌다 할 수 있는 근래의 국내 영화는 <곡성>과 <검은 사제들> 정도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바하>를 그 반열에 넣기에 부족하지 않은 작품으로 평가했습니다.

<곡성>의 치밀함과 무게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검은 사제들>보다는 선이 굵고 단단한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사바하>는 '실존'과 '믿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본질을 이야기하기 위해 계속해서 물음을 던집니다.

'그것'의 실체, 김제석의 진위, 정나한의 믿음 등을 통해 끊임없이 묻고, 사유하게 하는 것이죠.

'생각하던 것과, 보이는 것이 과연 사실에 일치하는 것인지. 그리고 사실에 일치한다 해서 그것이 진실인지'에 대한 질문이 그것입니다.

영화의 치명적인 단점은 기괴 만큼 웃기지 않고 어울리지도 않는 억지 코미디 대사입니다.

이 부분만 없었어도 훨씬 더 좋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지금의 필름에서 그 부분을 생으로 들어내도 무난히 더 나은 완성도를 지닐 수 있을 거라 봅니다.

생각보다 공포 요소는 적고, 진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종교를 가진 분들이 꼭 한번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작품이에요.


5위는 독립영화 <우리집>입니다.

[ 윤가은 감독. 김나은, 김시아, 주예림 주연 ]

엄마와 아빠가 예전처럼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꿈인 하나, 그리고 일을 하러 멀리 떠나는 부모님 때문에 방치된 친구 유미와 동생 유진이.

세 아이들이 사는 세상을 아이들의 눈높이 그대로 그려낸, 따뜻한 작품입니다.

윤가은 감독은 전작 <우리들>에서 아이들의 관계와 갈등을 담백하고 섬세하게 영화에 담아 좋은 인상을 받았었는데, <우리집>에서는 제목 그대로 아이들이 사는 집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는 것에는 대단히 훌륭한 실력을 갖춘 것 같습니다.

어른들의 시선으로 아이들을 단정하거나 불행을 전시하는, 그런 영화는 절대로 아니에요.

독립영화 특유의 예산 부족이 드러났다는 점과 후반의 마무리가 다소 조악한 점이 아쉬운 부분입니다.

평일 퇴근 후, 한적한 시간에 보기에 참 좋은 영화입니다.


4위는 김윤석의 연출 데뷔작이죠.

영화 <미성년>입니다.

[ 김윤석 감독. 염정아, 김소진, 김혜준, 박세진, 김윤석 주연 ]

열 개의 작품 중 기대치가 가장 적었던 작품입니다.

그만큼 영화계에 몸 담은 배우가 연출에 욕심을 내는 경우는 많고, 그렇게 기대했던 작품이 실망을 안겨주는 경우가 잦기 때문입니다.

이는 비단 한국 영화계뿐이 아니죠.

누구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될 순 없는 법니다.

배우로서의 김윤석은 늘 절제의 미가 돋보였던 사람입니다.

그만큼 특유의 딕션(diction: 어투, 어법)이나 태도가 호불호를 갈리게 했지만, 캐릭터 자체가 가진 강렬함이나 넘치는 개성, 차분함 등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잘 표현했던 배우이고, 특정한 성향의 배역에 있어서는 믿고 맡기는, 혹은 믿고 보는 배우라는 신뢰를 쌓기도 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그가 처음 연출한 영화가, 시각적인 강렬함이나 자극적 표현에 중점을 둘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과도한 연출이나 불편한 요소들을 전시하는, 소위 '배우 출신 감독'이 흔히 빠지는 함정에 그도 빠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죠.

하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미성년>은 차분한 태도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한 작품이었습니다.

보기에 불편하거나 무리한 전개는 절재했습니다.

두 미성년 학생과 바람을 피운 두 명의 어른들, 그 배우자들과 불륜으로 생기게 된 미숙아까지.

제목 자체가 그들 모두를 가리키는 중의를 담고 있습니다.

연기도 좋았습니다.

누구 하나 어색함 없이 캐릭터를 잘 표현했고, 김윤석과 염정아도 복잡한 내면을 훌륭하게 연기해냈습니다.

저는 특히 김소진의 연기가 돋보이더군요.

추천할만한 작품입니다.

뜬금없이 소름 끼쳤던 후반의 우유 씬과 흐지부지했던 결말이 다듬어졌다면, 감독 데뷔작이라 믿을 수 없을만수작이 탄생할 수도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3위는 최근 개봉작, <천문: 하늘에 묻는다>입니다.

[ 허진호 감독. 한석규, 최민식 주연 ]

사실, 3위에 올릴만영화는 아닙니다.

2019년에 그만큼 손에 꼽을만한 수작이 없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영화를 제외하고 2018년과 2019년에 개봉사극이 모조리 형편없었다는 것이 또 하나의 이유죠.

영화의 장점은 세종의 캐릭터와 당시의 고증, 사건의 설득력, 두 남자의 가슴 절절한 우정입니다.

영화 내에서의 세종은 더 이상 인자하고 유쾌한 임금이 아닙니다.

늙고 지쳤으며, 대단히 날카롭습니다.

태종이 피로 닦아놓은 세종의 왕권은 그야말로 막강했습니다.

안여가 부서진 후 아버지 이방원의 검은 곤룡포를 입고 정남손 일파를 처단하려는 세종의 모습은, 초나라의 항우를 떠올리게 할 만큼 패왕의 기질마저 풍깁니다.

최민식의 장영실 연기는 그만큼 힘을 빼고 수동적인 느낌을 강조했습니다.

영화에서는 세종이 정남손 일가 처단의 빌미를 잡기위해 일부러 안여를 부서지게 했고, 장영실은 이를 알고 있으면서도 안여의 책임을 자신의 탓이라 자수하는 것으로 그립니다.

여기서 저는 강한 의문을 느꼈습니다.

'어째서인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평소 인재를 소중히 여겨 신하들의 크고 작은 허물을 곧잘 덮어주던 세종이, 그토록 총애하던 장영실에게 과격한 처벌을 내렸으며, 이후 장영실의 행적은 영영 묘연해진 것인가?'

실록을 보죠.

세종의 안여가 부서진 것은 1442년, 한글 창제는 1443년입니다.

고작 안여가 부서졌다 하여 장영실에게 곤장 80대를 맞으라는 것은 누가 봐도 과도한 처사였습니다.

게다가 같은 책임이 있던 조순생에게는 처벌을 내리지도 않았죠.

영화는 이를 장영실과 엮어 한글이라는 세종의 대업을 위해 장영실이 자신을 희생했다는 이야기로 각색 겁니다.

영의정이 장영실을 볼모 삼아 세종을 압박하는 장면도 설득력을 더했죠.

극중 세종과 장영실은 함께 별을 보며 기뻐합니다.

세종에게 별은 곧 백성이었을 것이며, 장영실에게 별은 세종이었을 것입니다.

아름답고도 장엄한 동상이몽이죠.

영화의 단점은 과도한 감정표현에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의 마음 한구석에는 '이게 세종과 장영실이 연정으로 발전하는 이야기가 되면 어떡하나'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영화에서 표현된 둘의 우정에는 과함이 있어요.

제가 예민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관객이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정도입니다.

몇몇 조연들의 캐릭터와 비중도 너무 소모적이 존재감미약합니다.

조말생 역의 허준호와 영의정 역할의 신구는 훌륭했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좋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잘 만든 사극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 작품입니다.

이런 사극 영화가 한 해에 하나 정도는 나와줘야죠.


2위는 <벌새>입니다.

[ 김보라 감독. 박지후, 김새벽 주연 ]

1994년,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사는 중학교 2학년 은희의 세상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입니다.

그녀가 처한 현실은 우리의 그 시절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연히 그때를 돌아보게 되고, 은희와 그 시절의 아이들이 겪을 성장의 아픔과 그 시대의 상흔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죠.

은희가 사는 세상은 8학군에 진학하면 서울대나 연대, 고대를 가야 하고 8학군도 못 가면 내놓은 자식 취급을 받습니다.

공부보다는 그림 그리기에 관심이 있는 은희는 자연히 가족의 관심으로부터 도태되죠.

나름대로 놀기도 잘 놀고, 담배도 피우고, 동생들에게 인기도 있는 은희.

이런저런 일로 남자 친구와도 친한 친구와도 틀어지게 된 은희는 마음이 통하는 한자 선생님 영지를 만나게 됩니다.

영지는 은희를 공감하고 은희는 그런 영지를 동경합니다.

모든 것을 털어놓고 의지해요.

은희는 목에 혹이 생겨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에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얘길 들은 아버지가 갑작스레 흘리는 눈물과, 영지가 불러준 민중가요 '잘린 손가락'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은희는 세상과 맞서야 한다는 영지의 충고에, 말없이 당하기만 했던 학원에서 처음 맞서고, 자신을 때리던 오빠에게도 처음으로 맞섭니다.

영지를 통해 조금은 변한 것이죠.

그래도 은희는 여전히 많은 것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힘들어하는 오빠, 치고받는 부부싸움 후 금세 서로 웃으며 TV를 보는 부모님, 김일성의 죽음에 시끄러워진 세상.

전부 은희가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던 것들입니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영지의 죽음을 알게 된 은희는 비로소 상실과 아픔을 통해 성장합니다.

이야기의 전개와 마무리에 있어 영지의 죽음에 다소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점, 그리고 영화가 남성을 바라보는 다소 편협한 시선들이 단점이라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늦게라도 꼭 한 번은 보시길 추천할 만큼 좋은 영화입니다.

은희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세상과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은희, 그 시절에 겪는 기쁨과 아픔, 성장의 계기가 너무나 잘 표현된 작품입니다.

그러한 요소들이 대사와 행동, 시선 하나하나에 모두 담겨있어요.


1위는 예상대로 <기생충>입니다.

[ 봉준호 감독.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이정은, 장혜진 주연 ]

감독이 만들어낸 왜곡된 세계.

그 수직적인 구조의 세상에서 부딪히는 부자와 가난한 자들의 우화입니다.

가난한 자들은 가진 자들의 집에 기생하며 그들을 흉내 내고, 마치 하루아침에 가진 자가 되기라도 한 듯 착각에 빠지지만 금세 아무것도 변한 게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들이 투쟁해야 할 대상은 가진 자들이 아닌, 비슷하게 더 못한 처지의 '기생충'들이었죠.

투쟁은 끝났고 가난한 자들 몇이 죽고 가진 자도 한 명이 죽었지만,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시 그 지긋지긋한 반지하 집.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이 일궈낸 걸작입니다.

물질 만능주의의 지금을 사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비틀린 현실에 담아 응시하게 하는 이야기죠.

그리고 바로 이틀 전, <기생충>이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는 기쁜 소식이 있었습니다.

리뷰로 다뤘던 작품이니 여러 가지 해석이나 평가는 제가 이전에 작성한 리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10개의 작품 중 가장 돋보이는 연기를 보였던 배우를 뽑을 차례입니다.

개인적으로 2019년에 가장 빛났던 남자 배우는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 세종을 연기한 한석규를, 여자 배우로는 <미성년>의 희를 연기한 김소진 꼽았습니다.

한석규, TV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때보다 확실히 한층 더 깊은 내면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표정과 움직임 각각에 세종대왕에 대한 이해와 표현의 의지가 모두 담겨있다 보일만큼,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뿜더군요.

김소진은 전개상 다각적인 대사 행동들을 보여줘야 했던 역할이었는데 무리 없이 전부 잘 연기했습니다.

다른 역할들이 감정은 숨기고 심리상태를 드러내야 하는 역할이었다면, 미희는 그걸 다시 한번 숨기고 아닌 척해야 하는, 어찌 보면 가장 어리고 여린 여인을 표현했어야 하는 역할인, 행동과 대사 하나 하나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정도로 깊은 이해도의 연기를 선보였어요.


자, 이상으로 2019년 영화 결산, 국내 영화 편을 마치겠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해외 영화 결산을 들고 다시 찾아 뵙도록 하죠.
평안한 날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전 02화 뤽 베송 감독의 행보와 부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