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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seinate Jul 30. 2017

사람들은 욕망을 따라 서울역으로 달려갔다

[리뷰] '집'에 얽힌 사람들... 연상호 감독 <서울역> 속 주거문제

*스포일러 있음


대한민국에서 사람들의 욕망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은 바로 '집'이다. 집은 성공의 수단이자 성공의 결과다. 많은 사람은 부동산에 투자하고, 자신도 부동산을 통해 성공하겠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성공한 이들은 지가가 비싼 지역에서 사는 것만으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내보일 수 있다. 정부에 대한 여론을 바꾸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는 부동산 가격 관리다. 한국 사회에서 집과 욕망은 뗄 수 없는 관계다.

한편, 집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무시당하거나 소외당하기도 한다. 집이 없는 사람은 언젠가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란다. 고시원과 같은 열악한 주거 환경에 사는 세입자들은 자신이 사는 곳을 극복의 대상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세 들 집도 아예 없는 노숙자들은 동정이나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런 집과 욕망, 노숙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좀비 영화가 바로 연상호 감독의 <서울역>이다. 

집 그리고 욕망에 관하여


<서울역>은 서울역에 사는 노숙자들과 서울의 다양한 인간군상을 재료로 찍어낸 좀비 애니메이션 영화다. 같은 감독의 한국 좀비 영화이지만 감독의 다른 작품인 <부산행>과는 내용상 연관성은 없는 작품이다.

<서울역>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일정한 거주구역, '집'과 관련이 있다. 주인공인 혜선과 기웅 커플은 여인숙에서 사는 상황인데 오랫동안 여인숙 세를 밀린 상태다. 여인숙 세를 내기 위해 기웅이 일을 하는 대신 혜선의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며 원조교제를 제안하자 혜선은 집을 나오게 된다.

여인숙에서 사는 기웅과 혜선보다도 더 열악한 신세에 있는 이들은 바로 서울역 노숙자들이다. 이들은 집은 물론이고 아무런 법적인 거주 지역이 없다. 서울역 내에서 자다가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고, 노숙자 쉼터에 의지하기도 한다. 이 노숙자 중 한 명이 좀비가 되면서 재난이 시작된다.

혜선의 '아빠'는 기웅의 원조교제 광고를 보고 기웅에게 연락을 시도한다. 만나서 기웅을 다그쳐보지만, 여인숙에 혜선은 없었기에 혜선을 찾으러 가게 된다. 혜선은 좀비가 돌아다니는 서울역 인근을 헤매고 있는 상황.

다행히, 혜선은 우연히 만나게 된 노숙자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영화 내내 위기를 모면한다. 돈도 못 내는 여인숙을 떠난 혜선과 갈 집이 아예 없는 노숙자는 좀비를 피해서 도망친다. 원래부터 이들은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기웅과 '아빠'를 만나기 위해서 도망치는 혜선은 일말의 기대라도 있지만, 노숙자는 갈 집조차 없다. 혜선이 집에 가고 싶다고 눈물을 흘리자 노숙자는 자기는 갈 곳조차 없다며 눈물을 흘린다.

간신히 지하철 선로를 지나 다른 지역으로 나온 혜선과 노숙자. 차 벽으로 막힌 공간에서 노숙자는 차 벽을 넘어가려다 살해당한다. 혜선은 좀비에게 상처를 입지만 가까스로 도망쳐서 인근 지역의 모델하우스로 이동한다.

돌아갈 곳이 없는 자들, 모델하우스에 모이다


모델하우스는 욕망의 장소다. 앞으로 분양될 집을 미리 살펴보는 동시에 자신의 구매력을 외부에 보일 수 있는 곳이다. 혜선이 도착한 모델하우스는 넓고 쾌적하다. 가구에는 가구의 가격이 앞에 적혀 있다. 이곳에서 잠들었다가 드디어 기웅과 '아빠'를 만나는 혜선. 

하지만 '아빠'는 정말로 혜선의 아빠가 아니었다. 진짜 혜선의 아빠는 혜선의 빚을 받기 위해 포주가 찾아오자 집을 버리고 도망친 후였다. 혜선이 만나고 싶어 했던 아빠도, 가고 싶어 했던 집도 애당초 존재하지 않은 것이었다. 기웅이 만나서 데려온 '아빠'는 다름 아닌 혜선의 포주다. 혜선이 자신의 돈을 떼먹고 다녀서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아느냐며 주먹을 휘두르는 포주. 기웅은 포주를 막다가 살해당하고 혜선은 도망친다.

자신을 피해 도망친 혜선을 찾으며 모델하우스의 모습에 감탄하는 포주. 자신의 욕망을 유감없이 드러내며 마침내 혜선을 잡아끌고 가는 데 성공한다. 그 순간, 혜선은 전에 입은 상처가 악화하여 좀비가 되고 포주는 좀비에게 물어 뜯긴다. 각자가 모두 욕망을 향해 달려가고, 집이 없는 이들은 내몰리는 와중에, 쑥대밭이 되어 망해가는 서울의 모습이 영화는 끝난다.

<부산행>을 제작한 연상호 감독의 좀비 영화지만, 부산행과의 관련성은 별로 없다. 대신 <부산행>에서 깊게 짚고 가지 못했던 인간의 추악함과 욕망을 <서울역>에서 더 자세하게 보여준다.

혜선과 기웅이 살던 여인숙은 둘의 보금자리라고 하기엔 너무나 불안한 곳이다. 서울역 노숙자들은 일정한 거처가 없고, 그들이 방문하는 노숙자 쉼터에는 쉼터에서 살고 싶은 노숙자들의 욕망이 있다. 이야기의 정점을 담당하는 모델하우스는 욕망이 분출되는 곳이다.

쉼터의 자리를 내주지 않으려는 노숙자들. 혜선을 다그치는 기웅,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는 포주의 집착은 좀비가 아닌 인간을 향하고 있다. 각자가 모두 욕망을 향해 달려가고, 집이 없는 이들은 내몰리는 와중에, 쑥대밭이 되어 망해가는 서울의 모습이 영화는 끝난다. 인간의 폭력과 욕망을 잘 다룬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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