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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시모프 Jan 23. 2024

<외계+인 2부> 의외로 세심한 캐릭터의 액션

<외계+인 2부>는 전작의 흥행부진으로 인해 많은 우려가 있었다. 가장 큰 우려는 전작처럼 시간 순서나 설정이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자칫 유치해질 수 있는 도술과 SF의 조합이다. 하지만 흥행부진의 정도와는 별개로, 재미만으로 따졌을 때 이게 이 정도로밖에 흥행을 못한 것이 내심 안타까웠던 전작이었다. 그래서 2부를 더 기대했다.


뚜껑을 연 <외계+인 2부>는 전작에서 풀어놓은 설정과 이야기들을 풀어주고, 더욱 커진 액션 스케일, 현대에 벌어지는 도술액션으로 더 재미를 줬다. 이 영화의 전체적인 설정이나 교훈에 대한 이야기는 저번 리뷰인 '<외계+인>1부: 무심한 파괴자의 무서움'에서 다루었으므로 따로 언급하진 않겠다. 하지만 내가 의외로 재미를 느낀 부분은 캐릭터 별 액션이다. 의외로 액션 설정이 굉장히 세심하게 짜여있어, 최동훈 감독이나 무술감독이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가드(김우빈)의 액션

가드는 AI 로봇으로, 인간의 몸에서 탈옥하려 하는 외계인 죄수를 잡는 임무를 띠고 있다. 영화 중 거의 최고의 전투력을 가졌지만, 딱히 무술이라고 할만한 전투기술은 보이지 않는다. 처음엔 이 부분이 조금 액션에서 허술한 것이 아닌가 했지만, 이게 AI라면 가능하다. 알파고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알파고는 처음엔 인간이 둔 바둑의 기보를 보고 배워 이세돌을 이겼지만, 그 후에 나온 알파고 제로는 아예 인간의 기보 없이 룰만 가지고 스스로 학습했다. 그러자 인간이 두었던 기보에서는 나올 수 없는, 오로지 이기기 위한 최적화된 수'를 쓴다. 가드의 액션도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무술은 인간의 몸이 역학적으로 어떻게 움직이는 가에 맞춰져서 만들어진 기술이다. 인간이 아닌 상대와 싸울 때는 소용없는 기술도 많다. 따라서 가드는 원시적이지만 가장 최적화된 움직임으로 상대를 제압하는데 주력한다.



두 신선 흑설(염정아), 청운(조우진)의 액션

이 두 신선은 도술을 쓰긴 하지만, 이들은 도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을 쓰는 것이 아니라 도술로 신비한 도구를 만들어 사고파는 것이 주 일인 신선들이다. 이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을 서양에선 연금술사라고 한다지'라고 했지만, 사실 연금술사보단 북유럽신화의 드워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드워프는 거기서 토르의 묠니르나 오딘의 창 궁니르 등 온갖 신비한 물건들을 만들어내는 존재니까. 영화 중 나오는 신비한 무기, 부적 등은 대부분 이 두 신선이 만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전투력 자체는 평범한 인간과 다를 바 없고, 신선이라는 이름답게 마음이 선해서인지, 사람을 맨손으로 때리는 것을 잘하지 못하고 반드시 무기를 들어야 한다. 현대에 도착해서 물건을 부술 때도 기어코 몽둥이를 둘고, 부적으로 만든 환영들도 하찮은 농기구라도 들어야 싸우는 흉내라도 낸다.



이안(김태리)의 액션

이안의 다른 무술은 꽤 괜찮은 무술과 도력(내공)을 지녔지만, 정작 싸우는 모습은 무술이라기보다는 '영화에 나오는 무술'처럼 보인다. 특히 이안의 총액션이 그러한데, 이안은 1부에서 가드가 경찰들에게서 빼앗은 총을 가방에 넣고 어린 나이에 급하게 고려시대로 가게 된다. 즉 이안은 체계적인 사격을 배울만한 시간이 없었다. 총을 어떻게 쏴야 제대로 쏘는지 잘 모른다. 두 손으로 총을 잡는 정확한 총 파지법은 몇 번 나오지만, 대부분 영화에서 멋있게 보이려고 만든 총액션에 고려시대에서 익힌 무공을 접목시켜 활용한다. 아마도 바닥을 미끄러지듯 누우며 쏘는 장면, 쌍권총 장면은 이안이 매트릭스에서 봤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매트릭스의 그 권총액션은, 오우삼 감독의 홍콩영화 <영웅본색> 등에서 오마주한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설계자의 인간몸인 문도석(소지섭)이 제대로 된 파지법으로 총 쏘는 것을 보면, 김태리의 화려한 쌍권총은 일부러 그랬을 것이다. 물론, 실제로 쌍권총은 명중률이 아주 낮고 쌍권총으로 쏠 때 영화 속에서도 잘 맞지 않는다.



우왕(신정근), 좌왕(이시훈)의 액션

우왕 좌왕은 고양이가 변신한 인간이다. 따라서 이들의 무술은 특이하게도 고양이의 동작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데, 사실 고양이를 기본으로 한 정식 무술은 없다. 이것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성룡이 <사형도수>에서 뱀의 동작을 흉내 낸 사형권을 익혔다가 거기에 고양이 발톱을 접목한 묘권을 만들어내는 장면이다. 아마도 고양이발톱공격을 하는 우왕좌왕의 묘권은 사형도수의 오마주로 보인다.



능파(진선규)의 액션

능파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간 중 최고의 전투력을 자랑한다. 원래도 밀본에서 무력이 높은 도사였으나, 눈이 멀게 된 후 더욱더 내공수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굉장히 타당한 것으로, 눈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살아남으려면 심안으로 싸우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눈이 보이지 않아서 밀본에서 쫓겨났어도, 내공을 키워 모든 상처를 치료해 준다는 '신검'을 찾아 나선 것이다. 능파의 무공은 비단 무술뿐 아니라 주먹 하나에도 기를 뿜어내는 경지에 달했는데, 그것을 이용해 비검-어검술을 쓴다. 비검술은 검을 날려서 상대를 공격하는 기술이고, 어검술은 날아간 검을 마음대로 조종해서 공격하는 기술이다. 능파의 비검술은 단순한 비검이라기 보단 거의 어검에 가까울 정도로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해서 날리는 수준이다. 내공이 얼마나 센지, 외계인들과도 호각으로 싸울 정도다. 사실 검이 날리는 사람의 의지를 반영하는 건 이 신선이 만든 검의 특징인 것 같은데, 그것을 조절하는 것도 오랜 수련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삼식이(윤경호)의 액션

삼식이는 마약밀수범으로, 경찰들에게서 도망치다 민개인에게 잡혀 지산병원에 누워있던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리고 외계인 죄수를 주입받게 된다. 다른 일반적인 범죄자에 비해서 삼식이는 꽤나 강한 무력을 지닌 것으로 나오는데, 특이하게도 사용하는 무술은 복싱이다. 아마 복싱을 제대로 배웠거나 프로로 활동한 전력이 있어 보인다. 2부 시작에서 경찰들과 대치하며 경찰을 쓰러트리는 장면이 멀리서 잡히는데 복싱으로 경찰을 때려눕힌다. 그러다 주변에서 요가를 하고 있던 민개인과 마주치는데, 사람들이 크게 주목하지 않지만 재미있는 액션이 여기서 나온다. 민개인은 의외의 무술실력으로 삼식이를 제압하는데, 삼식이는 민개인에게 한번 제압당하고 나자 파이팅포즈를 제대로 취하고 싸우려 한다.


그때 민개인이 특이한 파이팅 포즈를 취하자, 상대가 무언가를 배웠다는 걸 인지하고 오소독스에서 사우스포로 파이팅포즈를 바꾼다. 오소독스는 왼팔을 앞으로 향한 오른손잡이의 복싱 파이팅 포즈고, 사우스포는 오른팔을 앞으로 향한 왼손잡이의 복싱 파이팅 포즈다. 권투에서는 잽 등으로 거리를 재고 타격하는데, 같은 오소독스끼리는 거리감이 같아서 타격하는데 익숙해져 있으나 사우스포를 만나면 거리감이 애매해져 잘 싸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야구에서 왼손 투수도 사우스포라고 불리며 비슷한 위치를 갖고 있다. 즉, 삼식이는 필요에 따라 오소독스와 사우스포를 바꿀 수 있는 꽤 수준급 복싱 실력자이며, 이 부분에서 민개인을 자신보다 한수 위라고 보고 이길 수 있는 꼼수를 쓰려한 것이다. 물론 민개인에게 한 번에 제압당한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삼식이가 사우스포로 바꾸는 장면은 무술감독의 디테일이 엿보이는 장면이다.


삼식이는 이후에 지산병원에서 외계인을 주입당할 때도 촉수를 복싱으로 피하려 한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 인간의 무술은 인간의 움직임에 최적화되어 있어 촉수형 공격에는 무용지물이다. 결국 외계인에게 허무하게 당하고 만다.




민개인(이하늬)의 액션

민개인은 사실 능파의 후손이다. 능파는 고려시대에서 외계인과 신선들이 2022년으로 가는 것을 목격하게 되고, 신선들이 남긴 무기를 자신의 후선에게 남겨 미래로 보내 외계인들과의 전투를 대비한다. 능파는 무기만을 남긴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기를 다룰 수 있도록 비검술과 내공 수련법도 같이 전수한 것으로 보인다. 민개인은 자신이 2022년의 싸움을 할 후손이라는 것을 알고 다양한 무술을 더 익힌 것으로 보이는데, 삼식이를 제압할 때 처음엔 유술로 제압하지만 이후에 삼식이가 복싱을 했다는 걸 알고 권투랑 비슷하지만 손바닥이 아래로 향하는 특이한 파이팅 포즈를 취한다. 이것은 전통 무에타이의 파이팅 포즈다. 또, 요가는 인도에서 퍼진 중국 내공수련의 원류라고 할 수 있다. 민개인은 그냥 멋으로 요가를 하던 게 아니라, 자신만의 내공수련을 하고 있던 셈이다. 게다가 신선들의 무기를 골프가방에 넣고 있는 것을 보면 골프도 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가 선조에게서 물려받은 무술이 비검술이라는 걸 생각하면 '무언가를 타깃에 정확히 날리는'것을 평소에도 게을리하지 않고 꾸준히 단련한 것으로 보인다.  




<외계+인> 시리즈는 치밀한 SF라기엔 설정이 조금 빈약한 부분이 있지만, 무협액션으로 보자면 꽤나 흥미롭게 볼 부분들이 많다. 연출에서도 옛 무협영화의 오마주들이 많으므로, 고전 무협영화의 팬이라면 재미있게 볼만하다. 전우치부터 이어지는 한국형 무협, 한국형 SF를 꿈꾸는 최동훈 감독의 도전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기를 바래본다.






*영화와 인문학을 접목한 저의 브런치북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도 재미있습니다. :)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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