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부나 권력에 있어서 언제나 계급은 존재해 왔고 사람은 자신이 밑바닥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한다. 조선시대에는 노비도 돈이 생기면 노비를 둘 수 있었다. 일을 주는 쪽이 아니라 받는 쪽에서는 하청에 하청에 하청에 하청을 주기도 한다. 내가 가장 밑바닥이 아니려면, 내 밑에 또 한 사람을 두면 된다. 사회에 만연한 대상화와 혐오도 마찬가지다. 내가 속한 곳에서 내가 밑바닥인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으니까, 나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을 대상화해서 나보다 못한 계급으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들을 혐오함으로써 자신이 조금이나마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가까운 미래의 한국, 어느 도시. 그 도시(누가 봐도 서울이지만 도시 이름을 말하진 않는다)는 미세먼지로 공기 질이 매우 좋지 않고 사람들이 몰려 있어, 살기에 '가성비'가 좋지 않은 곳이다. 윤은경 감독의 <세입자>는 이런 환경에서 세 들어 사는 주인공의 삶을 그린다. 이 도시엔 월월세와 천장세라는 새로운 타입의 세가 있다. 월세를 사는 사람도 세를 놓을 수 있고, 그럴 경우 집주인이 함부로 내쫓지 못한다. 하지만 월세를 빼고 나가려면, 자신의 아래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모두 책임지고 끝내야 한다. 주인공은 집주인의 리모델링에 쫓겨날 위기에 처하고, 친구의 말을 들어 월월세를 놓기로 한다. 그리고 자신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기묘한 남자와 그 부인이 자신의 집에 살게 된다.
전혀 SF처럼 보이지 않는 일상을 그리고 있지만, 전화 통화나 통근전철과 같은 아주 작은 설정에서 여기가 근미래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현실의 서울을 흑백으로 찍고서 마치 미래처럼 느낄 수 있게 한 것은 장 뤽 고다르의 <알파빌>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기묘한 사람들과 기묘한 행동과 대사들이 이토준지의 만화처럼 스릴러와 블랙코미디의 줄을 탄다. 집을 소재로 사람의 계급을 보여주는 면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도 일면 떠오른다. 장은호 작가의 단편소설 <천장세>를 원작으로 만들었지만, 영화적으로도 꽤나 감각적이고 훌륭하게 만들었다. 흑백영화지만 긴장을 놓칠 수 없는 연출이 훌륭하다. 한국의 현실을 극단적으로 묘사했기에 누구나 보면서 공감할 수 있는 주인공의 삶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세입자>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장치들이 있다. 단순히 부와 권력, 혹은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로 보고 느껴도 무방하지만, 정치적인 상징이나 사회갈등으로 확대해석할 수도 있다. 누구나 자신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 믿고 열심히 일한다. 언젠간 월세에서 벗어나 전세로, 전세에서 벗어나 집주인으로, 집주인을 벗어나 건물주로, 건물 한 채가 아니라 여러 채로. 끝없이 이어진 계급의 관계에서 나는 어디를 차지하고 있을까. 과연 그것을 벗어날 수 있을까? 혹은 그렇게 된다고 해서 정말로 내 삶이 나아진 것일까, 아니면 그냥 그렇게 착각하는 것일까. 나선에서 내려오지 않으면, 나선은 보이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까지 보면, 처음 주인공의 친구가 하는 말이 섬뜩하게 느껴진다.
"생각을 해 봐라. 우리를 위한 진짜 정책이 있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