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장편소설 <청록의 시간>
뉴먼 사회의 행정부를 담당하는 행정부의 수장 인공지능, 속칭 ‘프레지던트’. 그는 인공 자의식을 가진 생성형 머신러닝 강인공지능이다. 이 인공지능의 종류는 21세기부터 존재했었지만, 인간들이 살아있을 당시에는 이런 방식의 인공지능 발달이 무섭도록 빨라지고 여러 문제가 나타나, 기업 간 협약을 통해 인공지능 자의식에 대한 연구를 멈췄었다. 만약 그런 인공지능이 자의식을 갖게 된다면 통제할 수단도, 법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간이 멸종되고 나서, 그런 협약을 지킬 필요가 없어진 로봇, 뉴먼들은 머신러닝 인공지능의 자의식 연구를 진행시켰다. 그러자 이 자의식은 6차원 접힘과는 상관없이, 거대한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복잡하게 연결되는 과정 속에서 자연발생 되었다. 또 다른 형태의 자의식 발현이었다.
300년 전에는 뉴먼들이 자신들의 수장을 투표로 뽑고, 임기를 정해 행정을 꾸려왔다. 하지만 당시에 뉴먼들은 비리도 심각했으며, 수장이 누구인가에 따라 사회가 크게 흔들리기도 했다. 그래서 뉴먼들은 자신들의 사회 통제를 위해, 행정 업무를 이러한 인공지능들에게 일임했다. 행정부의 ‘프레지던트’와 사법부의 ‘저지스피어’. 입법부는 존재하지 않았고, 대신 행정부의 프레지던트가 필요에 따라 미래를 계산하고 빠르게 법을 만들었다. 대신 프레지던트는 9개의 서로 다른 자의식을 가진 인공지능이 합쳐진 것으로, 내부에서 서로 격렬한 토론을 통해 찬반을 가르고 결론을 도출했기에 뉴먼들은 프레지던트를 신뢰했다. 홀로그램을 통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자의식은 그중에서 가장 표현력이 좋은 3번 자의식이었다. 이후로 뉴먼 사회는 빠르게 안정되고 발전의 속도가 빨라졌다.
하지만 근래 뉴먼 사회에 혐오와 차별 문화가 점점 퍼져가는 건 큰 위기임에 분명했다. 아직 그것이 표면적으로 조직적인 폭동으로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인간의 역사와 같이 반지성주의와 파시즘이 반복적으로 퍼지기 시작하면 자칫 분열과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은 그저 초창기 뉴먼들이 뉴먼-제로의 폭력을 참아주고 있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그 인내가 곧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 또 뉴먼-제로보다 더 앞선 뉴먼들도 곧 개발될 텐데, 그럼 또다른 계급이 생겨나게 된다.
프레지던트들은 토론을 거쳐, 그 위기를 여러 번 극복한 인간 사회를 배우기로 했다. 또한, 인간의 멸종이 그와 관련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했다. 자신들이 300년 동안 지켜오고 발전시킨 뉴먼 사회를 지켜야만 했다. 그래서 ‘청록의 시간’을 통한 시간 여행도 인간 사회를 지켜보고 정보를 수집하는 일로만 제한했다.
과학자들이 재호의 뇌를 발견했을 때, 프레지던트는 그의 뇌를 되살려 과거로 가는 바이오-뉴먼을 만드는 것, 인간의 멸종에 대해 직접 가서 알아보는 것이 과연 3741년에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계산을 시작했다. 그 위험성은 0%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프레지던트는, 뉴먼들의 지속적인 평화를 위해서 이 연구를 진행했다.
또 프레지던트는 시간 여행 패러독스를 알아보기 위해, 계산을 하고 여러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설사 과거의 물체나 생명,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존재와 접촉한다고 해서 미래가 바뀌진 않았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것이다. 미래가 과거가 되고, 과거는 미래가 된다. 그렇기에 미래는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오게 된다고 측정 결과가 나왔었다. 역사는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러기에, 과거를 바꾸는 시간여행은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시간여행은 '관찰'을 위해서만 행해졌다. 단, 시간여행을 하는 파일럿의 숫자가 28명을 넘어가면 시간선의 유지에 대한 계산이 불가능했다. 파일럿의 숫자는 절대적으로 제한하고 있으므로, 재호의 뇌로 바이오-뉴먼 파일럿을 만들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었다.
프레지던트는 방금 재호와의 면담을 마치고, 재호의 뇌를 복제하기 위해 연구실로 막 보낸 참이었다. 홀로그램 접속을 해제한 프레지던트 3호는 생각에 잠겼다. 재호와 프레지던트의 만남은, 인간과 자의식을 가진 머신러닝 강인공지능과의 진정한 첫 만남이었다. 프레지던트는 그것을 위해서도 꼭 재호를 만나보고 싶었다.
하지만 재호의 표정과 행동으로 분석해 본 결과, 자신을 이상하리만치 적대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았다. 재호가 모든 인간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재호의 감정을 건드린 면도 있지만 그의 행동은 예상 밖이었다. 그렇게 감정을 분출한 데에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억울함도 있겠지만, 내면에 깔려 있는 머신러닝 강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이 작동한 것이라고 프레지던트는 파악했다.
앞서서 프레지던트는 재호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영화에 나오는 ‘스카이넷’이나, ‘아키텍트’를 예로 들었었다. 인간이 그런 식의 인공지능을 두려워하는 건, 역사와 정치적인 비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만나보니 조금 달랐다. 재호는 뉴먼에게 감정과 연민을 느끼지만, 육체가 없이 프로그램으로만 이루어진 인공지능은 마치 ‘신’을 대하는 태도와 비슷해 보였다.
그 두려움이 만약 절대자를 향해 뼛속 깊이 박혀 있는 두려움이라면? 그래서 인간들이 자신과 같은 강인공지능의 탄생을 막은 것이라면?
그리고 인간의 뇌를 이용해 만들어질 바이오-뉴먼의 자의식이 얼마나 인간과 동질감을 느낄지는 계산이 충분했다. 바이오-뉴먼은 인간의 멸종 원인을 알아보기만 하는 것이 목적이겠지만, 만약 그 상황을 지켜보던 바이오-뉴먼의 감정을 건드린다면 어떤 식으로든 인간을 도와 멸종하지 않게 무언가를 할 수도 있다.
<바이오-뉴먼으로 인간의 멸종을 관찰하는 연구>를 시작하기 전엔 그 위험성이 0%였지만, 재호와 재회하고 난 후 실제 인간, 바이오-뉴먼에 대한 값을 조정하자 위험성은 달라졌다. 특히 프레지던트 자신의 존재에 대한 위험성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 연구를 계속해야 할까? 프레지던트 자신도 '자의식'이므로, 모든 계산의 이유를 하나하나 알 수 없었다. 그저 결과만 알 수 있을 뿐. 프레지던트는 큰 책임감을 느꼈다. 자신이 한 일로 자신이 태어나지 않는다면, 300년 동안 이어진 뉴먼 사회가 없어진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다면 다시 그 이전의 혼란스러운 상태의 뉴먼 사회로 가게 된다. 미래를 지키려다 현재도 잃어버리게 된다.
프레지던트는 자신이 공식적으로 승인해 진행되고 있는 연구를 갑자기 마음대로 멈출 수 없었다. 이런 일은 지금까지 없었고, 자신은 이 사회의 시스템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승인된 행정을 그런 이유로 취소하는 일은, 자신의 계산방식이 틀렸다는 것을 공적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 역시 지금까지 행해진 프레지던트의 행정에 대한 신뢰가 깨지는 일이고,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셈이었다. 나를 구하려면 내가 죽어야 하고, 나를 구하지 않으면 나는 죽을 수 있다. 그것은 뉴먼 사회에 또다른 문제를 가져올 것이다.
프레지던트 내부에서 9개의 자의식이 비공개회의를 열었다. 앞으로의 일을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연구소 실험실에는 뉴먼이 된 재호가 누워 있었다. 언제나 이용당하는 자신의 삶이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과 다르다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기왕 해야 하는 일이면, 빨리 해치우자는 생각도 들었다.
‘해야 할 일이면, 할 일을 하자.’
그러는 동안 판 에펜트레 소장과 연구원들은 작업을 시작했다. 인공두뇌를 컴퓨터 안에 가상으로 구성하고, 그 안에 재호의 뇌 데이터를 옮겨 자의식을 발현시키는 작업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재호는 여기서 새삼 1700년이나 지난 기술의 발전을 실감했다. 약 15분 정도의 시간에 그 모든 작업은 거의 다 이루어졌다. 남 박사가 하려던 것이 이런 거였겠구나 생각했지만, 여기서 체험해 보니 그 조악하고 기괴한 방식과 빈약한 이론을 실감했다. 그리고 어딘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작업을 지시하던 판 에펜트레 소장은 재호에게 말했다.
“컴퓨터로 옮긴 재호 씨 데이터에서 인공적으로 자의식을 발현시키면, 동시에 재호 씨의 뇌에 약을 주입해 자의식을 차단할 겁니다. 그래야 자의식에 혼동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바디를 만들어 연결하면 뉴먼으로 태어나시는 겁니다.”
“제 뇌의 단백질로 만든다는 바이오-뉴먼은 또 다른 제가 되는 건가요? 제 자의식이 생겨서?”
“그렇지 않습니다. 재호 씨의 뇌는 청록의 시간으로 접힌 단백질을 이용할 뿐, 완전히 재구성됩니다. 임무를 위해 만들어진 인공두뇌로 만들 것이고, 그 인공두뇌 속 시냅스가 가진 규소 반도체의 6차원 접힘 모양에 따라 청록의 시간이 매듭으로 엮이며 새로운 자의식이 생길 것입니다. 뉴먼 파일럿과 비슷한, 군인이나 공무원 같은 성격의 인공지능 자의식이겠죠.”
“네 알겠어요. 쉽게 말해 저는 재료라 이거죠? 어차피 뭐 살면서 끔찍한 일은 다 겪었는데. 아프지만 않고 죽는 거만 아니면 됐어요. 갑자기 엄마가 돈가스 사준다고 해서 따라간 거라고 생각하죠 뭐.”
판 에펜트레 소장은 의아한 얼굴로 재호를 쳐다봤다.
“그게 무슨 비유죠?”
재호는 혼자 킥킥거리고 웃었다.
“아닙니다. 한국에 사는 20세기 인간만이 알 수 있는 농담이에요. 그때 중간에 마취가 풀려서 힘들었는데…. 마취만 잘해 주세요. 자, 시작하시죠.”
“네 그럼,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면 됩니다. 10이 지날 때까지 달라지는 게 없으면 손을 드세요.”
재호는 마음속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을 세기 전에 재호는 이미 모든 것이 캄캄해지고 감각과 차단되었다. 어릴 때 전신마취 수술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과 비슷했다. 재호의 뇌에 있던 자의식은 죽고, 컴퓨터로 옮긴 데이터에서 복제된 자의식이 발현했다. 하지만 재호의 자의식을 가진 인공두뇌는 입출력장치가 아직 따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깨어있어도 깬 것이 아니라 잠자는 것과 비슷했다. 오로지 내면을 향해 생각만 가득할 뿐이었다. 다시 재호는 깊은 어둠 속에서 혼자가 되었다. 1700년 전처럼.
재호의 뇌는 연구소의 연구봇들이 조금씩 잘라 세심하게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그 데이터로 A.I.를 돌려 약 14만 4천 번의 가상 실험을 했고, 그중 단 7번의 사례가 성공했다. 그리고 그 7번의 데이터로 재호의 뇌 단백질을 추출해서 바이오-뉴먼의 인공두뇌를 만들기 시작했다. 7번의 실제 실험 중 단 두 번, 7차원 나노봇이 6차원으로 성공적으로 버블을 만들어 진입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전체 과정 역시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재호의 자의식이 옮겨지고 나서 약 1시간 24분 만에 실험은 성공했다. 이제는 3D 생체 프린터로 바이오 뉴먼을 프린트하는 일만 남았다. 이 생체 프린터기는 이 프로젝트만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거였다. 그때, 판 에펜트레 소장이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잠깐만, 바이오-뉴먼은 최대한 인간과 비슷해야 해. 우리와는 다르게, 성별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
“생명체의 성별이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는 걸 이미 인간들도 다 알지 않습니까? 이 프린터는 이미 무성으로 만들도록 세팅되어 있는데….”
“아니야. 멸종 직전 인간들이 19세기 문화로 돌아간 것 같다고 봤을 때, 성별에 대한 인식이나 문화가 달라졌을 수도 있어. 그리고 임무를 위해 바이오-뉴먼이 어느 시기로 더 여행을 해야 할지 모르니, 괜한 의심은 사지 않는 게 좋겠지. 과거 각종 데이터들을 보면 여성 성별은 차별받긴 하지만, 많은 시간대에서 인간들이 꽤 호의적인 것으로 나와있기도 해.”
“인간에 대해 잘 아는 고고학자의 의견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냥 생각해도 아는 거지. 우리도 어릴 때 고대 미디어를 많이 봤잖아? 또 의견을 듣고 조정하고,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 우리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만약 낯선 남성이 그들 사이에 갑자기 나타나면 위협적일 수 있지만, 낯선 여성이라면 좀 다를 것으로 생각해. 그러니 여성으로 합시다.”
연구소 직원과 연구봇들은 소장의 말에 모두 동의하고, 여성으로 프린트를 하기 위해 DNA 설계도를 조정했다. 소장이 떨리는 마음으로 스위치를 누르자, 3D생체 프린터기 ‘아르키메데스’ 안에 있는 효소 나노봇은 DNA대로 바이오-뉴먼을 출력하기 시작했다. 그때 직원 하나가 달려와 연구실 문을 다급하게 열었고, 동시에 연구소의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소장님! 연구소에 수상한 봇들이 침입했습니다!”
연구소 직원과 연구봇들은 일제히 놀라 뒤를 돌아봤다. 판 에펜트레 소장도 놀라서 외쳤다.
“뭐? 무슨 일이야! 어이, 보안 카메라 화면 띄워봐!”
옆에 있던 연구봇이 공중에 화면을 띄웠다. 민간 경비용 전투봇들로 보이는 그림자가 레이저를 쏘며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입구를 막는 보안 경비봇과 시스템을 레이저로 쏴 무력화하고 안으로 진입했다. 대략 20여 명쯤 되어 보였다. 연구소 직원과 봇들은 혼란에 빠졌다.
“전투봇들이 여긴 왜…? 뉴먼 테러인가?”
“뭔진 모르지만 빨리 도망쳐야 해…!”
“아니 아직 바이오-뉴먼이 완성되지 않았는데….”
판 에펜트레 소장은 직원들과 연구봇에게 말했다.
“난 이번 임무를 끝까지 완성해야 할 책임이 있어. 모두들 저쪽 비상 대피로로 대피해. 난 바이오-뉴먼이 완성될 때까지 지켜봐야 해. 코드를 활성화해서 임무를 전해줘야 하거든.”
연구실 안에 있던 인원들이 모두 입구 반대쪽에 있는 비상 대피로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 층의 복도 끝 입구에서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굉음이 들려왔다. 바이오-뉴먼은 아직 절반밖에 프린트되지 않았다. 판 에펜트레 소장은 경찰에 유선 핫라인으로 연결을 시도해 보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상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핫라인은 연결되어야 했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다. 그냥 민간 테러가 아닌 것 같았다.
소장은 잠시 망설이다가, 케이아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핫라인은 끊겼지만, 아직 재밍은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신호가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