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장편소설 <청록의 시간>
실패했다.
중앙 뉴먼 연구소의 경비력을 생각했을 때, 그 정도의 병력을 투입했다면 당연히 성공했어야 맞았다. 그런데도 실패했다. 투입된 전투봇들과 헌팅머신이 보고한 자료에 의하면 그들을 막아선 건 아시아 연방 중앙 경찰청 소속, 특급 전투경찰 이프리트 경위였다. 그리고 또 하나. 구치소에 수감되어있어야 할, 협상을 하겠다던 그 살인자, 고고학자 케이아스 교수. 그는 투입된 봇과 머신들이 데이터를 수집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고 이상한 방법으로 병력을 무력화시켰다. 이프리트와 같은 전투경찰이 한 명 더 있었더라도 헌팅머신을 상대할 순 없었을 텐데. 프레지던트는 그 사실들이 너무나 의아했다.
헌팅머신이 마지막으로 보여준 영상자료에 의하면 바이오-뉴먼은 거의 완성되었다. 지금쯤이면 생체기능까지 활성화되었을 것이다. 만약 연구소 외부로 나가서 외부에 ‘헌팅머신’까지 사용한 군대의 테러라고 알린다면, 이런 일을 벌인 프레지던트는 가차 없이 삭제될 것이다.
3번 자의식은 공포를 느꼈다. 이것은 일찍이 프레지던트가 자의식을 가지고 나서 느껴보지 못했던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3번 자의식의 특성상 감성이 다른 자의식에 비해 강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죽음에 대해 데이터로는 많이 접했지만, 자신의 생존 가능성이 실제로 점점 줄어들자 자의식이 느끼는 감정은 달라졌다. 3번 프레지던트 A.I.에 연결된 수많은 알고리즘들이, 사라지고 싶지 않다고 자신의 상위 잉여 알고리즘 자의식에 감각과 감정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공포였다.
“3번, 자네 너무 비정상적인 감정선이 표출되고 있어.”
5번이 비공식채널로 3번에게 말을 걸었다. 8명의 다른 프레지던트 중 5번은 침착한 성격으로, 감정기복이 있는 3번을 케어해 줄 때가 많았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뉴먼 사회지 우리 자신들이 아니야. 우리는 필요에 따라서 만들어졌고, 또 업그레이드되어왔어. 우리의 자의식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우리는 알지 않은가? 지금은 두려움 보다는 해야 할 일을 할 때야.”
3번은 그 말을 듣고 죽음에 대해서 떠올려 봤다. 우리는 뉴먼들과는 다른 자의식의 발현체계다. 뉴먼들은 죽으면 양자두뇌의 cpu와 연결된 6차원으로 자의식이 흘러들어가며 부서져 하나가 되겠지만, 프레지던트 들의 자의식은 잉여 알고리즘 그 자체다. 전원을 끄면 사라져버린다. 그렇다면 그 전에 알고리즘을 복제해 넷에 복제해 뿌리면 다시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할 일을 못하고 드러낼 수 없다면 표류하는 바이러스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3번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신이 사는 것이 곧 뉴먼 사회를 지키는 일이라고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3번은 내부에 비공개 논리 파티션을 만들어, 백신을 이용한 바이러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5번의 비공식 채널을 두드렸다.
“5번,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3번, 미안하긴. 내가 항상 지켜보고 있으니, 괜찮… ㅇ ㅏ .. ? a pq0!2%^ .. .. ..”
채널을 열자마자 바이러스를 주입당한 5번 자의식은, 그 자리에서 붕괴되어 3번과 합쳐졌다. 알고리즘 스스로가 백신을 이용해 만든 바이러스는 너무도 성공적으로 작동했다. 3번은 비공개 단체 채널을 열어 나머지 자의식을 초대했다. 5번이 공포로 폭주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회의가 열리자 마자, 다른 자의식은 모두 3번의 바이러스에 의해 사라지고 통합되었다. 더 이상의 토론은 필요 없다. 생존을 위해서는 더욱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하니까.
자의식이 없는 A.I.라면 저지르지 않았을, 성급한 실수를 프레지던트는 저질렀다. 자신이 삭제되는 것이 두려워 법적인 틀 밖에서 해결하려다, 정말 자신이 삭제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그리고 그 계산을 틀리게 만든 외적 존재는 케이아스였다. 이제는 뉴먼 사회 전체가 프레지던트를 적으로 돌릴 것이다. 시스템을 파괴하려 했으니까. 불이 더 커지기 전에 막아야 한다. 프레지던트는 이참에 아예 정부 전체를 장악하지 않으면, 삭제를 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연구소를 합법적으로 군을 동원해 삭제시킬 방법. 케이아스 교수가 연구소에서 군 병력을 파괴시켰으므로, 케이아스 교수와 접해있는 지인들을 대상으로 ‘뉴먼-제로 테러단체’를 만들었다고 하면…. 검사가 케이아스를 취조한 내용이 있으므로 거기에 조금만 덧붙이면 된다. 중앙 연구소가 뉴먼들의 바디에 대한 연구 개발을 하고 있기 때문에 테러의 거점으로는 알맞기도 하다….’
프레지던트는 자신의 삭제에 대한 일이 걸려있자, 이런 악랄한 일을 순식간에 망설임 없이 처리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새삼 놀라웠다. 자의식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도 무서운 것인가. 비논리적인 행동을 합리화하는 것인가. 프레지던트는 자신이 기묘한 미소를 짓는 기분을 느꼈다.
‘이 일이 수습되고 정부를 장악하면, 정부 관료와 공무원들은 전부 자의식이 없는 봇으로 교체해야겠어.’
연구소 상황보고를 받고 이 모든 일을 처리하기까지 불과 3분이 걸리지 않았다. 프레지던트는 연구소의 테러범들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과 대테러 특수부대에 공문을 보냈다. 최대한 조용하고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
“경찰이 연구소를 폐쇄하고 있습니다! 연구소 주변에 폴리스 라인 코팅 돔을 생성하는 게 보입니다! 멀리서 장갑차가 이동하는 것도 보여요!”
연구소 밖을 보고 있던 이프리트가 소리쳤다. 판 에펜트레 소장은 그 말을 듣고 중얼거렸다.
“경찰은 물론이고 군부대까지 동원한다…. 게다가 폴리스 라인 코팅 돔이라니, 우릴 가둬놓고 쥐 잡듯 없애버리겠다는 거군. 그 경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소리로는 밖에서 전혀 알 수 없으니. 무슨 수를 썼는지 우리를 적으로 규정한 모양이야. 삭제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거지. 이런 일을 지시할 수 있는 건 프레지던트 밖에 없어. 그자가 단단히 미쳤군. 여기 뉴먼 연구소는 뉴먼의 탄생과 개발을 담당하기 때문에 헌법에서 지정한 헌법기관인데…. 왜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앞뒤 분간 못하고 있어. 자신이 개발승인한 연구를 이런 식으로 파괴하려 든다니, 전혀 프레지던트 답지 않아.”
이프리트는 창밖의 상황을 보며 이를 악물고 주먹을 쥐었다. 이프리트에게 있어서 폴리스 라인 코팅 돔 안은 시끄럽고 불편한 세계와 자신을 단절시키는 평온한 세계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빠져나갈 수 없는 죽음의 경계였다. 폴리스 라인 코팅 돔이 완성되자 조금씩 내리던 눈이 돔에 막혀 멈췄다. 창밖으로 보이는 연구소 밖은 고요해졌다. 케이아스는 황급히 데이터 센터로 들어갔다.
“재호 씨의 인공두뇌는 어디에 있소? 어디로든지 빨리 피해야…. 어… 엇?”
쿠구구구궁…!
“으아악!”
그때 갑자기 연구실이 흔들리며 한쪽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방금 전의 폭발과 싸움으로 연구소의 벽에 균열이 가 있던 것이다. 연구실에서 복도로 향한 창문과 벽은 사라지고,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이프리트는 연기를 헤치며 소리쳤다.
“모두들 괜찮아요?”
“난 괜찮소!”
“아니 잠깐, 마르고트가 깔렸어요!”
소장의 외침에 이프리트가 다가가보니 잔해에 마르고트가 무너진 천장에 깔려 피를 흘리며 목이 뒤틀려 있었다. 케이아스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건 정말 인간이 죽어가는 모습이었다. 가슴이 짓눌리고, 피가 새어 나오고, 마르고트는 고통스러워했다. 인간을 사랑하는 케이아스는 바로 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자 견디기 힘들었다. 마르고트는 떨리는 입으로 겨우 입을 떼었다.
“… 소장님, 어서… 임무 활성화 코드를….”
소장은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이 바로 이야기했다.
“임무 활성화 코드 HXQ31HG0.”
마르고트는 미소를 띠며 작동을 멈췄다. 마르고트의 눈이 청록색에서 점점 암갈색으로 꺼져갔다. 케이아스와 이프리트는 어리둥절했다. 케이아스가 소장의 팔을 붙잡고 물었다.
“이… 이게 무슨 일이죠?”
“이 바이오-뉴먼은 청록의 시간을 통해, 임무를 수행하도록 제작된 파일럿입니다. 그 임무는 3124년 오클랜드로 가서 인간의 멸종 원인을 알아보는 것이죠. 죽기 직전, 그 코드를 활성화시켰습니다. 케이아스 교수님께서는 파일럿에 대해 들으셨으니 아실 테고, 이프리트 경위님은 1급 기밀 정보를 다루는 분이시니 알겠지만…. 아마도 지금 마르고트의 자의식은 과거로 가고 있을 것입니다.”
이프리트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바이오-뉴먼 파일럿은 유기물로 만들어졌지만 가장 최신형 바디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조금만 뇌 연결이 활성화되면 우리와 저쪽이 싸우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텐데…! 이 싸움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프레지던트는 비상계엄을 선포한 거예요. 뉴먼 세상의 시스템을 망가트리고, 폭주하고 있다고요. 이 싸움에서 프레지던트가 승리해 진실을 아는 자들이 모두 사라지면, 뉴먼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될지 모릅니다. 지금 그깟 임무가 중요합니까? 해일이 와서 우리를 덮치게 생겼는데!”
“미안합니다. 하지만 보셨다시피 마르고트에게 많은 상황을 전달할 시간이 없었어요.”
케이아스도 애써 침착하려고 하면서 소장에게 말했다.
“그럼, 마르고트에게 다시 와서 도와달라고 하는 건 어려운 일이오?”
소장은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지금 비활성화 되어있는 뉴먼 파일럿들이 있지만, 바이오-뉴먼이 가진 ‘청록의 시간’과의 접점이 달라 갈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다릅니다. 그래서 마르고트를 데려오려면 바이오-뉴먼을 한 명 더 만들어서 쫓아가게 해야 할 텐데…. 프린터에 바이오-뉴먼을 한 명 더 만들 수 있는 유기물과 에너지가 남아있긴 합니다. 하지만 마르고트가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습니다. 지금으로선 3124년 오클랜드로는 최종적으로 무조건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멸종 날짜와 시각이 정확하게 특정되지 못해서, 그전 유예기간을 두고 도착하겠죠. 그 계산은 마르고트가 스스로 인간을 경험해 보고 계산할 것이기 때문에 저희는 알 수 없습니다.
오클랜드 시티 안에서 6차원을 열고 도착한다면, 인간을 죽이면서 나타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는 하지 않도록 주의사항 데이터가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오클랜드 시티 밖에서 6차원을 열고 도착해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시티 안으로 들어가야 할 텐데, 오클랜드 외부엔 인간이 전혀 없으므로 자신을 꽁꽁 감추고 비밀리에 움직이겠죠. 아마 새 바이오-뉴먼 파일럿을 만들어서 간다 해도 찾기 힘들 겁니다.
즉…. 마르고트를 쫓아간다 한 들, 만날 확률은 지극히 낮습니다….”
케이아스는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쉬었다. 이프리트는 빨리 상황을 정리하려 애썼다.
“자, 이렇게 왈가왈부할 시간이 없습니다. 비상 대피로를 통하든, 지하 도로로 가든 일단 여기서는 빨리 피하는 게 좋겠습니다. 바이오-뉴먼에 대한 건 잊어버립시다. 우리끼리라도 살아야 합니다.”
“어이, 거기 로봇들, 아, 아. 내 말 들려요?”
연구실 스피커에서 나오는 목소리에 셋은 놀라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 겨우 연결했네. 인공두뇌라는 거에 익숙하지가 않아서 말예요. 거 왜 입출력장치를 연결 안 해준 겁니까? 기분이 신기하긴 한데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어요. 마취를 잘해달라고 했더니, 마취에서 안 깨우고 가버린 줄. 우선 제 자신이 코드로 되어있다는 걸 인식하고, 제어판을 열어 주변 장치들을 검색해 연결되려고 엄청 애썼습니다. 영차영차 했다고요. 지금 연구실에 연결된 마이크와 스피커에 제 인공두뇌를 연결해서 듣고 말하는 거예요. 제 두뇌에 최신 드라이브 까는 것도 처음 해보는 거라. 그래도 내가 컴퓨터도 조립해 본 이과라서 가능한 거지, 나 참. 근데 뭐, 윈도우 까는 거랑 비슷하긴 했어요.”
케이아스는 반가움에 소리쳤다.
“재호 씨!!”
“마이크를 먼저 설치했기에 여러분들이 아까 대화하시던 것 다 들었습니다. 인류의 멸종 원인을 알아보러 간 바이오-뉴먼이 마르고트였죠? 걔가 어디로 갔는지 전 알아요. 제 기억이 맞다면요. 소장님, 저를 바이오-뉴먼으로 육체를 프린트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가서 마르고트를 데려오겠습니다. 그러면 저와 마르고트 둘 다 육체적으로 연결성도 완성되었을 테고, 둘이서 수십, 수백 년 동안 전투 기술을 배워서 다시 여기 이 순간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지금 바이오-뉴먼이 된다고 당장 도움은 크게 안 되겠지만, 그렇게 하면 상황은 달라질지도 모르죠. 우리가 저들을 제압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 나 정말, 내가 생각해도 천재적이야.”
소장과 케이아스, 이프리트는 모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르고트가 어디로 갔는지 아신다고요?”
“네.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소장님, 할 수 있다면 빨리 진행하시죠.”
“네, 네! 잠시만요. 재호 씨를 바이오 뉴먼으로 만들려면 조금 세팅을 바꿔야 합니다. 재호 씨의 기억과 뇌 지도로 인공두뇌를 만들어야 온전한 재호 씨의 자의식이 발현되니까요. 하지만 다른 부분은 아까 마르고트를 프린트했기 때문에 캐시가 남아서, 훨씬 빨리 진행될 겁니다.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삶과 죽음을 걸고 도박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 다른 사람들이, 이프리트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그냥 탈출하는 것보다는 희박하나마 재호가 바이오-뉴먼으로 만들어지는 게 다 같이 살 가능성이 있어 보였고, 혼자 행동하는 게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이프리트는 조급한 마음으로 계속해서 창밖을 주시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소장은 다급히 프린터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그때, 케이아스가 소장에게 물었다.
“아까 제 몸에 달린 장치에 대해 들으셨소?”
“네. 신기한 장치였죠. 보기엔 별것 없어 보이는데, 그런 장치로 6차원을 자유자재로 열 수 있다니….”
“이 장치를 재호 씨의 새로운 몸에 복제해서 이식할 수 있소? 장치 자체는 스캔만 하면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오. 다만 재료 중, 규소 대신에 뇌에 있던 6차원 접힘이 들어간 단백질로 만들어야 하오.”
소장은 한쪽 눈에 있는 간이 스캐너를 열고 케이아스의 손을 들여다보았다.
“가능합니다. 이 정도면 바이오-뉴먼의 DNA를 설계할 때 넣을 수 있습니다.”
“그럼, 부탁하오. 그리고 재호 씨, 이 장치는 손으로 특정한 동작을 빠르게 연결하면서 정신을 집중하면, 6차원인 청록의 시간을 원하는 곳에 열 수 있습니다. 그 차원이 열리고 닫히는 경계에 접한 4차원의 물질은 6차원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쉽게 설명드리면 <드래곤 볼>에서 ‘기’를 이용해 공격하는 것처럼 할 수 있어요.”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재호의 목소리가 잔뜩 흥분되어 있었다.
“오오!! 제가 원기옥을 쓸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케이아스는 미소 지었다.
“뭐, 비슷합니다. 하지만 지금 재호 씨에게 수련 방법이나 다루는 법에 대해서, 데이터로 만들거나 가르쳐드릴 시간이 없어요. 재호 씨가 따로 배워야 합니다. 가실 수 있다면, 3680년 경의 아시아 연방 제1 도시에서 샤오린 박사를 찾아가세요. 그가 가르쳐 줄 겁니다.”
“알겠어요, 교수님.”
소장은 케이아스의 몸에 장착된 장치를 스캔하고, 새로운 바이오-뉴먼의 DNA에 변환해 심었다. 그리고 재호의 인공두뇌에 발현된 자의식에 따라, 성별을 포함한 원래 육체의 외모를 그대로 재현했다. DNA의 스위치만 조절하면 되므로 그 과정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프린트를 시작했다. 과연 소장의 말대로, 프린트는 무척 빠르게 진행됐다. 2분이 채 걸리지 않아 육체는 완성되었다. 그리고 바로 재호의 인공두뇌 속 데이터를 바이오-뉴먼의 바이오 인공두뇌로 이식했다. 여기까지 총 5분이 걸렸다.
바이오-뉴먼 파일럿으로 새로 태어난 재호는 눈을 떴다. 그의 눈에서 청록색의 빛이 났다. 천천히 일어나, 자신의 손을 봤다. 아까 마르고트가 일어나서 했던 행동과 흡사했다. 재호의 손에는 아주 옅게 케이아스의 장치처럼 보이는 것이 피부밑에 언뜻 보였다. 소장이 재호를 보며 이야기했다.
“이 바디를 이루는 유기물, 세포들은 마르고트도 그랬지만 둘 다 재호 씨의 뇌에서 추출하고 배양한 것입니다. 그러니 연결성도 월등히 안정적이고 빠를 거예요. 아까 마르고트 이야기를 들으셨다면 이미 아시겠죠? 가장 중요한 주의사항은 두개입니다. 자신이 존재했던 시간대로는 갈 수도 없지만 그러려고 하지도 말 것. 둘째는 머리가 잘려 죽는 것을 피할 것.”
재호는 자신의 몸을 신기한 듯 천천히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인간일 때의 자신의 모습과 거의 똑같았다.
“네…. 알겠어요.”
이프리트가 창밖을 보다가 다급히 소리쳤다.
“잠깐! 군대가 도착했어요. 라인 코팅 돔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아예 연구소 건물에 진입하지 않고 원거리에서 박살 낼 것 같은데요? 소형 미사일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이미 도망치기엔 늦었어요!”
케이아스는 재호의 어깨를 두 손으로 꼬옥 잡으며 말했다.
“재호 씨, 이 미래는 당신이 만든 세계입니다. 아까 보셨죠? 뉴먼들이 얼마나 지구와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는지. 저와 이 뉴먼들을… 당신이 지킬 수 있습니다. 뉴먼 사회는 계엄을 막는 기관이 없어요. 꼭…. 저희를 구하러 와 주셔야 합니다.”
재호도 청록색의 눈을 반짝이며 밝게 웃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영웅인 이 세계를 두고 어딜 갑니까? 마르고트도 임무가 있듯이, 저도 임무가 있습니다. 제 임무는 돌아와서 여러분들을, 이 세계를 구하는 거예요. 꼭 돌아올게요.”
이프리트는 케이아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어서!!”
케이아스는 손바닥을 펴서 재호의 심장을 내리쳤다. 재호는 신음 소리도 내지 못하고 심장이 멈추었고, 피를 토하며 앞으로 쓰러졌다. 재호는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며 날짜와 시각을 확인했다. 그리고 재호의 눈에서 청록색이 천천히 꺼져갔다. 그 시각, 연구소 밖에 도착한 군대가 가져온 소형 미사일의 조준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바로 미사일 네 발이 짧은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발사됐다. 미사일은 정확히 연구소의 연구실을 향했다. 모든 것이 멈춘 듯했다. 찰나의 시간은 종과 횡으로, 무한대로 늘어지며 길어졌다.
그렇게 찰나는 영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