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 (여자아이들)
6. 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
카페 2층 창밖에는 점심을 마치고 나온 사람들의 그림자가 겹겹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 손에는 테이크아웃 커피와 구겨진 영수증이 뒤섞여 있었고, 누군가는 웃는 얼굴로, 누군가는 찡그린 얼굴로 통화하며, 또 누군가는 어깨를 나란히 맞댄 채 낮은 웃음을 나누며 자유로운 점심시간의 마지막 여운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미연의 시선은 창밖을 향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만히 손등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인가 유리창 너머로 들어온 햇살이 조용히 그녀의 손등을 덮고 있었고, 조금 전까지 마음을 휘저었던 기억은 마치 찻잔 속에서 피어오르던 마지막 김처럼, 서서히 온기와 함께 증발하고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찻잔을 들어 올렸다.
차는 이미 식어 있었고, 입술에 닿는 향기는 희미해졌지만, 손끝의 미세한 떨림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눈앞에 앉은 남자는 잠시 그녀의 눈치를 살피듯 말없이 아메리카노 잔을 굴렸다.
그리고 문득, 그가 말했다.
“그래서 이제는, 저보다 자격이 낮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그 말은 오래전, K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떠난 말과 너무 닮아 있었다.
미연은 기억을 떨쳐내기 위해 손가락으로 찻잔을 조심스레 돌리며,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안에서 무언가, 아주 작고 오래된 감정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았다.
사무실로 돌아온 시간은 오후 두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점심 미팅 내내 곱씹던 대화가 좀처럼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미연은 텀블러에 물을 따르며 긴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컴퓨터를 켰다.
모니터가 켜지자 이번 주 소개팅 피드백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간단한 만족 표시부터 세세한 인상 평가, 사소한 호감, 사소하지 않은 불편까지.
그녀는 사내 시스템에 접속해 회원들의 후기 하나하나를 읽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잘 웃는 분이었고 대화도 편했어요. 근데 너무 조용하셔서 저만 말한 것 같아요.”
“첫인상은 괜찮았는데 대화 주제가 맞지 않았어요. 저한테 관심이 없는 느낌이랄까…”
모니터 속엔, 모두가 자신의 조건에 맞는 사람을 찾기 위해 기준을 세우고, 상대를 가늠하는 문장들이 끊임없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런 조건들이 정말 사랑을 보장해 주는 걸까?'
어느새 오후 네 시. 모니터 앞에 앉은 지 두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이어서 미연은 이번 주 접수된 클레임 보고서를 열었다.
소개팅 후 상대에게 불쾌감을 느꼈다는 내용이었다.
말끝마다 스펙을 강조했고, 질문은 없었으며, 대화는 오로지 자기중심이었다는 지적.
그녀는 해당 회원의 상담 이력을 다시 열어 요점을 정리해 리포트 양식에 입력해 나갔다. 손은 멈추지 않았지만, 마음은 어느 한 문장에 오래 머물렀다.
‘좋은 분인 거 같아요. 그런데...’
그 짧은 부사 뒤에 덧붙여진 말들이, 다시 오래전 이별의 한 장면을 불러왔다.
회색빛 공항, 말없이 흐르던 작별의 공기.
K는 캐리어를 건네며 고개를 숙였고, 느릿한 말투로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수고했어… 여기까지 와줘서, 고마워.”
끝까지, 그는 원망하지 않았다.
‘내가…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한 게 아니라, 시험했던 걸까?’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스스로에게 던졌던 그 물음이, 다시 또렷하게 떠오른 건 점심 미팅에서 한 남자가 무심히 내뱉은 그 말 때문이었다.
“자격이 낮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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