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말고 while (Intermission I)

인터미션 - 소낙비(예빛)

by 박경민


Intermission I

. 소낙비


P는 어젯밤, 업무를 마무리하느라 새벽까지 일을 했고, 덕분에 아침 열 시가 넘어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분명 몸은 피곤했지만 늦잠 덕분인지 평소보다 눈꺼풀이 쉽게 열렸다.

그는 잠시 멍하니 자리에 누워있다가, 몸을 한번 쭉 피고는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 밖에는 소낙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는 비가 내리는 모양을 보고 싶어 천천히 몸을 일으켜 베란다로 향했다.

아파트 화단에 심긴 나무들의 잎사귀가 굵은 빗줄기를 맞으며, 쉼 없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바람도 제법 부는구나..."

그는 조용히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먹구름 사이로 하얗게 빛나는 구름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오래가진 않겠네."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누웠다.


잠시 눈을 감자, 오래전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초·중 시절, 그는 단독주택 마당 건너편의 작은 방을 썼다. 시골식으로는 '모방'이라 불렀다. 창호지로 된 나무 미닫이 문이었고, 문을 한쪽으로 열면 작은 마당과 마당 끝 편에 파란색 대문, 왼쪽은 마루와 연결된 큰방과 작은 방이 오른쪽은 화장실과 '광'이라고 부르는 창고와 목욕을 할 수 있는 욕실이 따로 떨어져 있었다. 따로 떨어진 건물 위에는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 옥상이 있었고, 오래전에는 그 위에 장독대도 있었다. 옥상을 제외한 마당은 모두 햇빛이 통과할 수 있는 물결무늬의 투명 슬레이트가 덮여 있었다. 처음에는 분명 연한 파란빛이었으나, 어느 순간 푸른빛을 잃고 반투명한 흰색으로 바래 있었다.


비가 오면, 그의 방에서는 그 슬레이트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느 날은 후두두둑 굵은 빗방울 소리로 시작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샤워기 물줄기가 욕실 바닥에 닿으며 내는 소리처럼 잔잔하게 시작하기도 했다. 파도처럼 바람이 불어오는 대로 '촤-악-', '촤-악-' 일정한 간격을 두며 소리가 나는 경우도 있었고, 쉴 새 없이 강한 빗줄기가 쏟아질 때는 마당 건너편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강렬한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때는 굳이 밖을 내다보지 않아도, 방문을 열지 않아도 비가 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학교에 갈 때는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었고 길가에 고인 물웅덩이를 일부러 찾아가 첨벙거리기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늘은 5부제라 차를 못 끌고 나가겠군. 하긴, 지금 나가면 주차장 자리도 없겠지.’

그는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신발과 양말이 젖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고는 장우산을 챙겨 집에서 나왔다.

아파트에 살고부터인지, 아니면 나이를 먹고부터인지, 그는 날씨에 대한 감각이 확실히 무디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회사에 도착했을 무렵엔 비가 그쳐 있었다.

우산을 툭툭 털고 엘리베이터에 올라 24층 버튼을 눌렀다. 사무실은 회의가 한창이었다.

그는 전날 야근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한다고 메신저에 남겨두었기에, 조용히 회의실을 지나 자리로 향했다.

모니터 전원을 켜고, 노트북에 로그인했다.

어제 작업하던 코드를 띄우고, 사내 업무시스템에 접속하자 해야 할 일들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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