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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수나무숲 Oct 11. 2023

동그란 그이가 만든 네모김밥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것


결혼 7년 차 30대 중반.     

하고 싶은 것 많고 프리랜서로 다양한 일에 도전하느라 바빴던 나는 가족계획이라는 건 먼 일과 같았다.

사실 이 부분은 진지하게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문제였다.     

프리랜서라 워낙 단발적으로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분들과 일 이야기 외에 스몰 토크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이, 결혼유무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28살에 한 결혼이 요즘 추세로 봤을 때 꽤 이른 결혼으로 보였는지 아니면 프리랜서 아나운서, 쇼호스트로 일하는 사람들이 늦게 결혼하는 걸 잘 알아서인지 모르겠지만 대다수의 반응은

“ 어머 벌써 결혼하셨구나!”였고 연달아 나오는 질문은

“그럼 아이도 있나요?”였다.


그 당시 결혼했다는 걸 놀라워했으면서 바로 이어서 아이 유무를 물어보는 게 나는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질문하는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대화의 물꼬를 트는 다양한 수순이었다 생각이 든다.

그럼 나의 답변은 “결혼은 나름 일찍 했지만 아직 아이는 없어요”라고 가볍게 웃어넘긴다.

여기서 대화가 간결하게 끝나면 문제없지만 굳이 아이에 대한 계획을 물어보는 사람이 있을 때면 가장 빠르게 이 대화를 종결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다.

“글쎄요 내년쯤? 계획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아이 계획이 있다는 말 안에는 ‘내년’이라는 멀지만 한정된 기간을 알려줌으로써

“왜 아이를 안 낳아요? 딩크족이에요?”라는 추가적인 구구절절한 질문이 따라오지 않는 깔끔한 답변으로 내 경험상 아이계획과 관련된 질문에는 완벽한 답변으로 추정되었다.     

흔히들 “아이를 낳든 안 낳든 선택이지만 낳을 거면 빨리 낳는 게 좋다”라고 조언하는데 실제로 아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아이를 낳고 말고의 문제는 그리 가벼운 결정이 아니었다.

결혼했을 때는 막연하게 언젠가는 아이를 낳겠지?라는 생각이

나이가 30대 중반 문턱에 서자 갑자기 조급해졌다.


물론 나라에서 만 나이 기준이 달라져 모두가 한 두 살씩 나이를 적게 먹게 되어 기분은 좋아졌지만 그렇다고 실제 내 신체나이까지 젊어지는 건 아닌 터라 문득 내가 건강한 사람인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반대로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 조기축구를 하고 나처럼 예민하지도 않아서 육체와 정신이 매우 건강한 사람이었다.

내가 봤을 때 남편은 좋은 아빠가 될 자격이 충분했고 그는 늘 아이를 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코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아이의 유무에 대한 결정권을 나에게 주었고 아이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며 언제나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다 문득 남편을 닮은 아이가 나온다면 내 인생이 더 부드러워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어떤 부분은 남편의 모습을 닮고 어떤 부분은 내 모습을 닮고 이렇게 선택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절반은 남편과 유사한 아이가 나온다고 생각하면 나의 2세가 꽤 궁금해졌다.     


굉장히 멀어 보였던 2세 계획이 마음먹자마자 빠르게 진행됐고

너무나 감사하고 신기하게 계획을 세우자마자 나는 임신하게 되었다.

늘 스트레스를 달고 살아온 나였기에 언제나 ‘내가 건강한 사람일까?’라는 의문을 품어왔던 것들이 마음먹자마자 바로 찾아온 임신소식에 ‘안도감’으로 돌아왔다.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뜬 걸 본 남편은 매일 아침 출근 전 나의 먹거리를 살핀다.

신기하게 임신과 동시에 나의 입맛이 조금씩 바뀌었다.

언제나 초콜릿맛을 선호했던 내가 딸기나 바나나맛 디저트를 찾고

메스꺼운 속 때문에 레몬사탕을 입에 달고 살고 있다.

아침은 늘 계란이나 빵을 먹던 나는 전날밤 아침에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어보는 남편의 말에 정말 평소에는 한 번도 먹어볼 생각 없던 네모김밥이 생각났다.

네모 김밥이 떠오른 데는 비교적 만들기 어렵지 않다는 전제가 깔려있어서 일지도 모르지만 내 요구에 다음날 아침 출근 전 새벽에 일어난 남편은 부지런히 네모김밥을 만들어냈다.     

모양은 투박했지만 스팸과 계란 볶음김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 들어있어서 이미 예상되는 맛 들이었지만 남편의 정성덕에 더 즐겁게 먹을 수 있었다.     


늘 하얀 동그라미를 연상시키는 남편이 만들어온 검은 네모김밥은 투박하지만 정겹고

그 안에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동그란 남편이 더욱 안정감 있게 가정을 지켜주는 네모난 울타리가 되듯 뾰족하기만 한 나의 모서리들이 자연스레 닳고 무뎌져 나도 동그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아이를 가졌다는 새로운 시작과 불안함.

하지만 어찌 되었든 엄마가 된다는 생각은 너무나 큰 우주에 덩그러니 서게 된 기분이다.

하지만 막망한 우주 한가운데 서 있어도 그리 외롭지는 않을 것 같다. 네모김밥을 뚝딱 해치우는 나를 보며 요리에는 큰 재능이 없다며 머쓱하게 웃는 남편이 듬직하게 옆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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