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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수나무숲 Oct 22. 2023

씻을수록 채워지는

엄마의 만능 김치



 자랑할 일이 아니라 굳이 알리진 않지만 사실 나는 볶거나 찌개로 끓이지 않은 그야말로 그냥 생김치는 먹지 못한다. 라면에는 김치, 한국 사람이라면 매 끼니마다 김치가 밥상에 올라가는 것이 당연스럽게 느껴지겠지만 다 큰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고백하건대 아직까지 요리하지 않은 그냥 김치를 먹기가 어렵다.

  이 부분을 굉장히 부끄럽게 생각하기에 엄마와 남편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전혀 이 사실을 모를 것이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냥 김치는 못 먹는데 김치전, 김치볶음밥, 김치찌개, 김칫국 등 김치를 활용한 다양한 음식들은 나의 최애 음식들이다.     

 

엄마는 김치가 최고의 영양소를 가지고 있는 완전식품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엄마는 집에 김치가 떨어지면 상당히 불안해서 미리미리 사시사철 틈틈이 김치를 담그신다.

때론 비싼 물가와 김치를 담는 번거로운 과정 때문에 홈쇼핑에서 저렴하게 판매하는 여러 가지 브랜드의 김치를 사서 먹는 도전도 해보셨으나 결과는 늘 엄마의 입맛에 미치지 못했고

결국 김치만큼은 꼭 직접 담가 먹자가 엄마의 건강한 고집이 된 셈이다.     

덕분에 나는 엄마가 수시로 만들어준 맛있는 김치, 김장철마다 꼭 행사처럼 김치를 담그시는 시어머니 김치. 이렇게 양쪽에서 번갈아 가며 보내주시는 건강한 맛으로 맛있게 요리해 먹는 호사를 누려왔다.     


탄수화물보다 단백질을 잘 먹이고 싶은 엄마는 엄마집에 갔을 때 주로 나에게 질 좋은 고기를 구워주시는데 그 옆에는 엄마가 담근 김치의 양념을 다 씻어낸 하얀 묵은지가 나를 반긴다.

신기하게 나는 그냥 김치는 안 먹어도 양념을 씻어낸 하얀 묵은지는 신나게 잘 먹는다.      

엄마는 맛있게 구운 고기 옆에 하얀 묵은지를 내놓을 때면

“양념을 씻어서 올려놨으니 고기 먹을 때 김치랑 꼭 같이 먹어 김치가 얼마나 몸에 좋은데!”라며 어떻게든 다 큰 딸에게 김치를 먹이고 싶은 의지를 내보이셨다.     

날은 추워지고 물가는 치솟고 어제도 김치를 조금 담갔다는 엄마의 말에 엄마는 김치를 어떻게 담그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온 가족이 모여 살던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김장하는 날 꼭 옆에서 아빠는 수육도 함께 삶아서 다들 맛있는 한 끼를 했던 기억이 있는데 정작 매운 고춧가루 냄새에 멀리 도망가 있던 나는 엄마가 김치 양념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엄마 김치는 어떻게 담가?”

나의 뜬금없는 질문에 엄마는 놀라며

“왜? 김치 담그게?”라고 되물었다.     

“아니~ 그냥 엄마 김치가 맛있어서 궁금해서 그러지.”

엄마는 김치양념을 만들 때 꼭 다진 소고기를 넣는다고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 먼발치에서 외할머니가 만드는 걸 보고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다고 했는데 우선 큰 솥에 찹쌀, 물, 다진 소고기를 넣고 오래도록 끓여 찹쌀풀을 만든다.

걸쭉 해진 찹쌀풀에 고춧가루, 마늘, 멸치 액젓등 재료들을 넣고 잘 섞어서 붉은 양념장을 만 든 후 절인 배추김치 잎 사이사이에 양념장을 듬뿍 넣고 버무려서 완성시킨다.

언젠가 남편이 엄마가 해준 김치볶음밥에는 고기가 들어가 있지도 않은데 고기 맛이 나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미 양념 속에 소고기가 들어가서 그렇게 느꼈나 보다.


엄마의 김치 양념에는 다른 김치의 양념 재료에 비해 들어가는 것이 많아서 씻어내긴 아까운 양념이다. 지금까지 그 귀한 양념들을 씻어서라도 딸에게 김치를 먹이겠다는 엄마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지 설명할 수 없는 깊고 진함이 느껴졌다.

 나도 입맛 까다로운 자식이 잘 안 먹는 걸 먹이기 위해 귀한 양념을 씻어서라도 입에 넣어주는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냉장고에는 그냥 김치를 안 먹는 내가 쉽게 요리해 먹을 수 있도록 김치를 쫑쫑쫑 썰어서 참기름에 볶아놓은 엄마가 해준 사랑이 담긴 볶음김치가 한가득 있다. 반찬이 없을 때 햄, 고기, 통조림 참치 등 넣는 재료만 달리하면 지겹지 않게 볶음밥을 만들어 먹을 수가 있다. 게다가 엄마집에 가서 하얀 묵은지를 찾으면 엄마는 아깝지만 귀한 양념을 또 씻어내며 식탁에 내가 좋아하는 먹거리로 채워주실 것이다.     


왜 씻어내는데 마음은 채워질까.     

하얗게 변한 묵은지를 먹지만 마음은 붉게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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