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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수나무숲 Oct 22. 2023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분에 감사합니다.


일요일 아침.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서 맛있는 냄새가 나는 쪽으로 몸을 움직이면 멋쩍은 표정의 남편이 음식과 함께 나를 반긴다.     

식탁 위에는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은 정갈한 계란말이와 임산부에게 좋다는 미역국, 깜찍한 소시지가 구워져 있다.

원래 요리는 주로 내가 해왔는데 임신을 하면서 냉장고 문을 열 때 나는 찬공기와 어우러진 묘한 냄새가 유독 나를 괴롭게 했다. 그래서 이젠 내가 냉장고 문을 열고 부엌에서 요리하는 시간보다 남편이 부엌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남편은 살뜰히 날 잘 챙겨 먹였다.


SNS를 통해 맛있어 보이는 레시피를 발견하면 도전했고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남편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는데 요리와는 별개로 삼십 대 끝자락의 건장한 남자가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이 너무 귀여웠다.      

남편 덕분에 벌써 5kg이나 늘었다.

 임신 관련 서적을 보면 내 주 수에는 아직 몸무게가 늘 시기는 아니라고 하는데 너무 잘 먹어서인지 뱃속의 아이는 콩알만 한데 이미 예전에 입던 바지는 불편해져서 자연스럽게 원피스로 손이 간다.     


임신한 뒤로 예전보다 간이 더 강하지 않으면 맛을 제대로 못 느끼는 나는 요리할 때

“음식 모양은 어설퍼도 간을 잘 본다!”라는 나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서 요리에 대한 자신감이 확 줄었다.

취미가 요리일 만큼 요리하는 것을 즐겼던 나의 요리시간은 점점 줄고 오히려 요리에 자신이 없던 남편은 네모 김밥을 시작으로 각종 볶음밥에 파스타 미역국, 김치찌개 등 스스로 해볼 수 있는 다양한 음식들을 만들어 내 앞에 선보인다. 그의 요리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사실 임신을 하면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몸 전체적으로 체온이 높아지면서 얼굴에도 열이 올라 피부 트러블이 나고 잠도 부쩍 많아진다. 다행히 나는 입덧이 심하지 않았지만 어쩌다 체한 기분에 속이 울렁거려 뒤틀린 속을 소화제 없지 진정시키며 잠드는 과정은 고역이다.

편한 옷을 찾게 되고 화장도 귀찮아지다 보니 일하지 않을 때는 꾸미지 않아 퀭하고 트러블난 얼굴을 보자면 정말 삶이 재미가 없다.

게다가 임신한 뒤로 꿈도 매일 꾼다. 말도 안 되는 내용들로 치열하게 꿈을 꾸고 일어나면 몸은 개운하지 못하고 천근만근이다.  


 무엇보다 가장 괴로운 점은 일적인 부분이다.

특히 나처럼 프리랜서인 사람은 임신을 함으로써 함께 일하는 담당자들에게 “일 하는 거 괜찮아요?”라는 말을 수십 번 듣게 된다. 그리고 그 말을 듣고 당연히 아직은 일하는데 부담이 없다는 것을 잘 설명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너무 불편하다.

물론 임신한 나를 걱정하는 마음은 감사하지만 “쉬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는 걱정인 듯 걱정 아니게 느껴지는 이 말은 임신과 동시에 내 밥그릇이 모두 사라질까 봐 두렵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임신을 후회하는가?”라고 질문한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NO를 외칠 수 있다.

만 나이 도입으로 30대 중반 아래로 걸쳐지긴 했지만 사회적으로 결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스로가 너무나 어리숙하다고 느껴왔다. 그런데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임신 후에는 예전보다는 조금 더 성숙된 인간으로서 내가 진화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일을 하거나, 청소를 하거나, 공부를 하는 이런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는 순간에도 뱃속에는 생명이 자라고 있느니 가만있어도 무언가 뜻깊은 일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쫓기며 살아왔던 나에게 임신은 스스로에게 여유를 주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임신을 하게 되면 내가 느끼는 모든 것들이 조금씩 달라진다. 그럴 때면 나는 남편이 해주는 귀여운 음식들로 위로를 받는다. 그래서 곁에 있는 사람이 너무나 중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가임여성 1명당 0.778명으로 세계 꼴찌 수준이라고 하는데 많은 여자들이 출산을 꺼려하는 부담 가득한 이유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출산에 대한 생각은 부정적이었고 자녀계획은 아늑한 미래로만 생각해 왔지만 남편의 다정함에 생각이 바뀌었고 용기를 내 보았다.     

곁에서 내 기분과 나의 불편함을 직접 느끼는 것처럼 공감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지 현재의 상황이 마냥 괴롭지만은 않다.


임신이 처음이라 나도 모든 것이 서툴다.

기분이 날카로워지고 몸도 예민해졌다.

그럴 때 남편의 멋쩍은 미소와 그가 만든 요리는 나를 웃게 만든다.

“덕분에 감사합니다.”

내가 나에게 주어지는 한 끼 한 끼에 위로받고 마음을 다독이는 것처럼 모든 이들이 매 순간 먹는 끼니가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길 바란다.     


그럼 나는 내일은 또 무엇을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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