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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표류자 Sep 09. 2023

나무의 가족, 나의 가족

[4주차] 2023년 3월 27일

나무 앞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무 주위에 다른 생명이 있으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었다. 닮은 모습을 한 나무 몇 그루가 듬성듬성 서 있을 뿐, 지금껏 그외에 다른 어떤 생명도 발견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이미 몇 차례 나무를 보았기에 더 이상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기대는 접어둔 채 나무를 찾아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나무를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는 관목이었다. 그것은 마치 울타리처럼 나무를 에워싸고 있었다. 아무도 보살펴 주지 않는 것 같아 보였던 이 나무는, 실은 가장 가까운 생명으로부터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안도감이 들었다. 낯선 이의 침입으로부터 나무를 보호해 줄 무언가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관목을 보고 떠오른 뜻밖의 존재는 바로 나의 가족이었다. 관목이 나무에게 울타리 역할을 하는 모습은, 나에게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는 '가족'이라는 존재를 떠올리게 했다. 지금껏 내가 이 나무를 바라본 적지 않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나무가 가진 든든한 울타리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듯이, 어쩌면 나도 내가 가진 든든한 울타리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고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낮춰 주위를 둘러보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을, 늘 더 먼 곳, 더 높은 곳만 바라보며 그들의 소중함을 알아채지 못한 날이 얼마나 길었던가. 그럼에도 나무에게 관목은, 그리고 나에게 가족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으리라. 그리하여 나무는 자신의 한쪽 밑동이 고통스럽게 잘려나갔을 때에도,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기어이 그 아픔을 견뎌낼 수 있었을 것이리라.


관목 앞에 웅크리고 앉아 한참을 뚫어져라 보고 있으니, 관목은 무수한 이파리들 사이로 자신을 찾아오는 벌레들에게 쉼터가 되어주고 있었다. 맞이함과 떠나보냄을 반복하면서. 관목은 사계절 내내 자신을 뽐내지 않으며, 이따금씩 자신들이 원하는 모양대로 깎아 유지하려는 자들에 의해 이파리 몇 개를 잃어가면서도 묵묵히 나무를 지켰을 것이다. 나무와 관목은 그렇게 서로에게 의지하며 한 계절, 한 계절을 버텨 지금의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가족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의 따뜻한 쉼터를 떠올린다. 그곳은 나를 성장하게 했고, 내가 아픔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되게 했다. 그리고 인고의 시간을 거쳐 이제는 나를 더 큰 세상으로 보낼 준비를 하는 그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진정한 가족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관목 너머 깊숙이 자리해 있는 뿌리 쪽을 들여다보니, 나무는 제 뿌리와 가까운 쪽에 이름 모를 작은 싹들을 기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나무 자신이 관목으로부터 받은 보살핌을 어린 새싹들에게 돌려주려는 마음 같았다. 그러자 나무의 몸짓은 새끼를 품는 어미처럼 너그럽고 우아한 몸짓이 되어 다가왔다.


나도 언젠가 저 나무처럼, 내가 받은 정성스럽고 따뜻한 보살핌을 나의 새싹들에게 돌려줄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또 다른 '가족'이라는 존재를 선물하고 또 선물받게 될 것이다.


나는 오늘 좁은 화단 안에서 생명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서로를 지키고, 감싸고, 품는 기적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나의 가족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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