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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표류자 Sep 05. 2023

존재의 무게, 시간의 무게

[3주차] 2023년 3월 20일

나는 때때로 나무에게 가벼운 시선을 준다. 수천의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나무의 곁을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가끔은 고개를 들어 찰나의 순간이나마 나무를 보았을 것이다. 그 시선에는 찰나의 예외도 허용하지 않는 무관심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나는 나무에게 다만 잠깐의 시선을 줄 뿐이다. 부디 자신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나무의 바람을 외면하기라도 하듯, 나무가 제대로 눈에 담기기도 전에 시선을 거두어버리고 만다. 나무를 보는 나의 시선에는 무거움이 없다. 그리하여 나무는 나의 무의식에 잠깐 머물다 가는 존재에 불과하다.


내가 지금껏 나무에게 무거운 시선을 건네지 않은 이유는, 아마 나무가 늘 제자리를 지키는 지루한 존재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알아가기에도 바쁜 삶이기에, 변하지 않는 것들에 관심을 두는 이들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나무에게 보내는 시선에 약간의 무게를 더할 때, 나무는 나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나무는 나에게 무거움에 대한 깨달음을 준다.


나무는 내게 존재의 무거움을 깨닫게 한다. 보이지 않는 땅 속 깊은 자리까지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기 위해 인고의 시간을 견딘 저 나무가 가진 존재의 무게를 깨닫게 한다. 나무에게 보내는 무거운 시선 끝에서 비로소 나는 늘 같은 자리에서 자신의 무거움을 간직한 채 서 있는 나무의 모습을 발견한다. 사계절 내내 항상 그 자리에 있기에, 나무가 가진 무거움은 그 어떤 인간의 아름다움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그렇게 나무는 나로 하여금 인간보다 무거운 존재가 세상에 있음을, 나아가 세상의 그 어떤 존재도 결코 가볍지 않음을 생각하게 한다.


나무는 내게 시간의 무거움 또한 깨닫게 한다. 나무를 만나는 데 필요한 시간, 단 5분. 나무와의 세 번의 만남 끝에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나무를 만나는 시간이 보통의 시간에 비해 더디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나무를 보는 시간이 나에게는 일주일 중 가장 무거운 시간이다. 나무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돌아오기까지의 5분이라는 시간에는, 지하철 안에서 눈을 붙이는 5분의 시간이나 방 안에서 편하게 앉아 화면 속 영상을 보는 5분의 시간과는 다른 묵직함이 있다. 멈추어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요즈음,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온종일 멈추어 있는 것을 찾아가 가만히 그리고 조용히 살피는 것은 초침의 속도를 더디게 한다. 고요와 정적을 허용하지 않는 바쁜 삶에 나무가 들어올 수 있는 작은 틈을 낼 때야 비로소 나는 시간의 무게를 알게 된다.


무관심뿐인 가벼운 시선이 아닌, 공감과 동경이 담긴 무거운 시선으로 나무를 보자. 그러면 나무는 우리에게 존재와 시간의 무게를 알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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