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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표류자 Sep 03. 2023

말없는 나무와 말 많은 나의 대화

[2주차] 2023년 3월 13일

봄이 오는 듯하다가 금세 물러갔다. 봄의 변덕을 알아차렸는지 나무도 제 잎을 낼 둥 말 둥 하는 것만 같다. 요 며칠 오면가면 나무에게 눈길을 주며 조만간 꽃을 볼 수 있을까 기대했건만, 꽃은 커녕 작은 새싹 하나조차 당분간은 기대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따뜻한 햇살을 받는 나무의 모습을 보려 종종 옆을 지나갔으나, 종일 서늘한 바람 탓인지 해가 들어도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집에 돌아오는 저녁 7시 즈음이면 이미 해는 져 있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벌써 하늘은 껌껌히 물들어 있다. 오늘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무를 다시 찾았을 때도 이미 해가 다 져 어둑해진 후였다.


뿌리 쪽부터 살피고자 화단 안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았다. 그러자 밑동의 한 부분이 잘려나가 있는 것이 보였다. 어쩌다 잘린 것일까. 나무는 독특하게도 땅 위로 올라올 때부터 서로 다른 두 개의 줄기로 나뉜 모양으로 자라 있었다. 보이지 않는 저 땅속의 뿌리는 또 어떤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잘려나간 밑동과 그렇지 않은 줄기 사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마른 단풍잎 하나가 끼어 있었다. 흙과 낙엽 사이에서 선홍빛의 단풍잎을 보았다. 나무가 지난 봄에 남긴 흔적임이 틀림없었다. 그제서야 나의 나무가 어떤 잎을 피울지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었다. 잔가지 사이로 선홍빛 이파리들이 봄날의 햇살을 즐길 모습이 생생히 떠올랐다.


잘려나가지 않은 다른 밑동을 타고 조금 더 올라가니 또 다시 가지 한 부분이 잘려나가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어쩐지 나무가 한 쪽으로 기울어 있는 것 같았는데, 그 이유를 알고 나니 조금은 안쓰러워졌다. 그리고 나무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나무는 본래 이 자리에 있었을까. 나무는 자신의 반쪽을 언제 떠나보냈을까. 왜 그래야만 했을까.


나무가 내게 답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나무와 좀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싶어졌다. 문득 나무를 만나러 이 자리에 오는 시간은 어쩌면, 나무와 대화하는 시간인 동시에 나무를 바라보는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 아닐까, 그리하여 나무를 보는 것은 결국 나를 알아가기 위한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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