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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표류자 Sep 16. 2023

바람의 모양

[6주차] 2023년 4월 10일

나무와 산들바람이 수줍은 인사를 주고받는 계절이다. 나무에게 봄은 얼마나 반가운 친구일까. 한 자리에서 자그마치 세 계절을 기다렸으니. 나무의 오랜 기다림을 알아본 것인지 봄은 알록달록한 단풍잎을 선물했다. 역시나, 봄은 나무의 기다림을 내내 지켜보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치만 다 알면서도 자신을 찾아오지 않은 봄이 얄밉지도 않은지, 나무는 봄이 마냥 좋은가 보다. 또 다시 예고 없이 자취를 감춰 놓고는 꼬박 세 계절이 지난 후에야 나타날 나무가 미운 줄도 모르나 보다. 일 년에 한 번 선물을 주고 떠나가는 봄을 애타게 기다리는 나무의 마음은 어떨까. 나는 나무의 마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렇게 잠시 나무의 마음 안에 들어가 나무를 이해해 본다.


이파리들이 가진 색채는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 빨갛기도 하고, 노랗기도 하고, 조금은 푸르기도 하다. 한 몸에 이리도 풍성한 빛깔을 보여주는 나무는 참 고마운 존재이다. 팔을 높이 뻗어 풍성해진 나뭇잎들 사이로 슬며시 내 손을 포개어 넣는다. 바람과 함께 이리저리 움직이는 색채들이 톡톡 손등을 건드리며 간지럽힌다.


더 가까이 팔을 뻗어 가지를 내 몸 쪽으로 당겨오니, 가지 끝으로 갈수록 손끝을 살짝 오므린 이파리들이 보인다. 아직 덜 자라 손끝을 완전히 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아기 단풍잎일까, 아니면 웅크린 저 모양도 다 자란 어른 나뭇잎의 모양인 것일까? 오늘도 나무에게 묻고 싶은 문장만 고요히 늘어놓는다.


나무와 바람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다. 바람의 움직임을 따라 가지가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색색의 이파리들도 이리저리 흔들린다. 어느 순간부터는 잎이 흔들리는 모양으로 바람의 모양을 읽을 수 있게 된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좋아서,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모습이 좋아서 짧게나마 영상을 남겨본다. 나무와 바람을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찾아냈음에 뿌듯해하며.


바람은 무수한 나선형의 곡선을 그려대며 나무를 흔들고 있다.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단풍잎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자니, 이전까지 보이지 않던 바람의 모양이 점차 또렷하게 그려진다. 바람의 모양을 눈으로 따라가며 시작도 끝도 없는 선을 이어가다가, 일순간 나무의 작별인사와 함께 바람을 먼 하늘로 떠나보낸다. 그러면 나무는 다시 새로운 바람과 인사를 나누기 시작한다. 나무의 하루는 바삐 저물어간다.


가지만 덩그러니 남아 있던 겨울의 나무가 어느덧 잎을 내어 바람의 모양을 닮게 되었다니. 바람의 모양을 보여주는 나의 나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하루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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