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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표류자 Sep 19. 2023

어두울수록 밝게 빛나는

[7주차] 2023년 4월 17일

이번 주는 나무를 낮에 한 번, 밤에 한 번 만났다.


유난히 하늘이 눈앞을 뿌옇게 덮은 어느 낮, 나의 나무를 찾았다. 그날따라 나무보다 하늘과 구름, 그리고 주변의 다른 생명들에게 더 눈길이 갔다. 미세먼지가 잔뜩 껴 푸른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하늘과 목구멍을 따갑게 하는 탁한 공기, 알록달록한 빛깔을 띠는 주변의 다른 나무들 따위에 시선을 빼앗겼다. 애석하게도 나무는 나의 시선에 닿지 못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내 나무 바로 맞은편에서 새빨간 이파리들을 자랑하고 있는 홍단풍이었다. 그 순간 내 나무가 가장 돋보이는 나무의 자리를 그 나무에게 빼앗기고 말았음을 알았다. 저만치에 서서 두 나무를 보니 나의 나무가 주인공 자리를 빼앗겼음이 더욱 자명했다.


분명 잎을 피우기 전까지는 내 나무도 저 나무처럼 새빨간 잎을 피워낼 거라 기대했었는데. 같은 단풍인데도 내 나무는 왜 저 탐스러운 빛을 갖지 못했는지 괜히 심술이 나고, 햇빛을 덜 받았나 싶어 속이 상했다. 잡다한 생각들 사이를 맴돌다 나의 나무에는 제대로 눈길을 주지 못한 채 집에 돌아왔다.


이대로 이번 주의 나무와 작별하기에는 아쉬움이 남아 다시 한 번 나무를 찾아갔다. 이번에는 자정을 앞둔 늦은 밤이었다. 노오란 가로등만이 환하게 빛나고 있을 뿐, 그 외에 다른 어떤 빛깔도 없는 정적인 풍경이었다.


그리고 다른 풍경에서 마주한 나의 나무는 낮보다도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보니 내 나무의 잎들은 본래 옅은 선홍빛을 띠는 아이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비로소 새빨간 단풍잎을 가진 맞은편의 저 나무보다 선홍빛 단풍잎을 가진 나의 나무에게 매력을 느꼈다. 주변이 어두울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 가장 밝은 빛을 내어 집 앞을 환하게 비춰주는 나의 나무가 자랑스러웠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나무를 본 그 밤, 나에게는 닮고 싶은 존재가 생겼다. 나는 나의 나무를 간절히 닮고 싶다. 나도 세상이 어두울수록 빛을 내는 존재가 되어야지. 나의 나무만큼 아름다운 존재가 되어야지.


나는 내 안에 빛을 가득 안고 태어났다. 빛은 내 마음의 기쁨과 슬픔을 먹고 자란다. 빛은 내 안에서 점점 밝아져서, 날 세상을 눈 멀게 할 만큼 강인한 빛을 가진 존재로 만들어 준다. 나는 내가 언젠가 빛을 낼 사람임을 알고, 또 빛을 내야 할 때가 반드시 올 것임을 안다. 그리하여 세상이 어두워질 어느 날을 숨죽여 기다리고 있다. 그날이 오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밝은 빛을 낼 것이다. 나의 빛으로, 내 곁의 사람들에게 어둠에 굴복하지 않고 삶을 살아낼 용기를 줄 것이다. 나의 빛은 위로가 되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가 닿을 것이다.


나는 모두에게 계속 살아가라고 말할 것이다. 사람들은 작디 작은 반딧불만큼 소중한 나의 마음을 알아볼 것이다. 그들도 마음 안에 빛을 품고 온통 빛으로 채워져서, 나처럼 세상을 빛낼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지더라도 우리는 밝게 살아갈 수 있다고, 계속 살아가야 한다고 모두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의 빛은 세상을 다시 밝힐 것이다.


나무와 나, 우리는 그렇게 서로 닮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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