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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표류자 Oct 02. 2023

나무가 없는 곳

[10주차] 2023년 5월 8일

중간고사 기간이 끝나자마자 급하게 자취방을 구해 이사를 하게 되었다. 나의 새 보금자리는 작년 한 해를 살았던 학교 근처 동네라,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이 더 크다. 그러나 이곳에는 나무가 없다. 나의 나무가 없다는 그 사실 하나가 이곳을 낯설게 한다. 짐을 싸서 본가를 떠나온 날부터 새 동네에 정착한 지금까지도 나무가 문득문득 내 마음에 걸린다.


새 집으로 오게 된 날, 차에 짐을 가득 싣고 한강을 건너는 고속도로 위에서 생각했다. 이제는 나무를 만나려면 꼬박 한 시간 반을 달려가야 하는구나. 글을 쓰기 시작하니 나무와 멀어졌다는 것이 실감이 나 마음 한켠이 아릿해진다. 두 달여의 시간 동안 마음을 두었던 나의 나무가 정말로 이곳에 없다.


나무를 만나기 위해 일주일 만에 내가 살던 동네를 찾았다. 먼 길을 온 탓에 제시간에 학교로 돌아가지 못할까봐, 본가에 들를 여유도 없이 바로 나무가 있는 자리로 향했다. 이제 내가 살던 동네는 나의 나무가 살고 있는 동네가 되었음을 느꼈다. 곁에 머물러 있을 때 더 아껴주어야 했는데, 좀 더 자주 바라보았어야 했는데. 여러 종류의 아쉬움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시간에 쫓기느라 나무 곁에 오래 머무르지는 못했다. 나무를 떠나는 순간이 그리도 길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멀리 하면서도 몇 번을 뒤돌아보며 지금, 이 순간의 나무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담아가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나무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나 자신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내가 살게 된 이곳에는 그곳과 달리 나무가 없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일주일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곳에 '나무가 없는 곳'이라는 별명을 붙이며 나무의 존재를 그리워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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