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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구 Aug 30. 2022

"난 전갈자리, 기타 클럽, 수영부야."

영화 '남색대문'


이미지 출처: IMDb


“아무것도 안 보여.” 영화의 첫 대사가 흘러나올 때 화면은 아직 검은색이다. 주인공 멍커로우의 “하나도 안 보여, 하나도!”라는 웃음기 섞인 투정이 조금 더 이어지고 나서야, 영화는 카메라의 눈을 뜬다. 이때 스크린에 맺히는 화면은 눈을 감고 있는 멍커로우의 얼굴이다. 그녀와 친구 린위에전은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미래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중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멍커로우와 달리, 린위에전은 선명히 보이는 자신의 앞날을 술술 읊는다. “8년이나 10년 뒤쯤, 내 딸과 같이 있어. 착하고 예쁜 아이야. 부잣집 부인들과 차를 마시고 있어….” 미소를 지으며 행복한 앞날을 예견하는 그녀의 옆모습을, 멍커로우는 옆에서 바라본다. 그러나 카메라는 린위에전을 바라보는 멍커로우의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지 않는다. 카메라는 멍커로우의 뒤에서, 린위에전을 바라보는 멍커로우의 뒷모습을 화면에 살짝 걸쳐둔 채 린위에전을 바라본다. 자신과 달리 행복한 미래를 예언하는 친구를 보며 멍커로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영화는 이 질문을 품어둔 채 굳이 붙잡지 않고 흘려보낸다. 


영화는 시종 이런 식이다. 멍커로우가 사랑하는 린위에전이 멍커로우를 사랑하는 장시하오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며 멍커로우가 느꼈을 법한 감정들을, 명확히 재현하지도 굳이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린위에전의 부탁으로 멍커로우가 그녀와 함께 체육관에서 밤 수영을 하고 있는 장시하오를 몰래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멍커로우는 친구를 대신해 물속을 유영하고 있는 장시하오에게 외친다. “내 친구가 너한테 할 말 있대! 너 여자친구 있어?” 밤중에 쩌렁쩌렁 울린 고백에 장시하오는 물 밖으로 나오지만 린위에전은 자취를 감춘다. 그를 마주하고 사태를 수습하는 건 멍커로우의 몫으로 남겨진다. 장시하오는 “처음부터 린위에전은 없었지? 할 말 있는 건 너잖아”라고 추궁한다. 잘못된 사랑의 짝대기를 긋고 만 멍커로우는 냉랭히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을 어색하고 불편한 상황에 처하게 만든 친구에 대한 멍커로우의 심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영화는 이 잠재력 풍부한 갈등의 불씨에 불을 붙이지 않는다. 다음으로 우리가 보는 장면은 장시하오가 버린, 혹은 그에게서 훔쳐 온 물건들을 모아놓은 상자를 열어보는 린위에전과 멍커로우의 모습이다.




어째서 카메라는, 그날 밤 멍커로우가 느꼈을 감정을 짚고 넘어가지 않는가? 그날 밤 이후부터 린위에전 방에서 일명 ‘장시하오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지, 멍커로우는 린위에전에게 어떤 마음을 느끼고 어떤 말을 했을까? 그냥 웃고 넘겼을까? 아니면 그렇게 행동하면 어떡하느냐 타박했을까? 첫 장면에서 린위에전의 얼굴을 바라보는 멍커로우의 표정을 보여주지 않은 것, 더불어 자신을 곤란하게 한 친구에 대한 반응을 소거한 것. 나는 여기서 이 영화의 인물에 대한 태도가 읽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태도를 해명하기 전,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당연히, 영화의 생략은 서사 상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영화는 멍커로우의 성 정체성을 처음부터 명시하고 이야기를 진행하지 않는다. 그녀의 레즈비언 섹슈얼리티는 나름 반전이라면 반전의 기능을 한다(영화의 정보를 전혀 모르고 퀴어성에 대한 감수성이 더딘 사람에게는 분명 그럴 것이다). 그녀의 비밀은 극 후반부, 장시하오와 린위에전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지던 본인의 입에서 발설된다. 그전까지 그녀의 섹슈얼리티는 극 중 인물들에게는 결코 보이지 않는, 철저히 감춰질 수밖에 없는 비밀로 취급된다. 물론 관객인 우리는 장시하오 가면을 쓰고 린위에전을 안은 채 춤을 추는 멍커로우의 모습을 보며 그녀의 마음이 향하는 행로를 추정한다. 하지만 적어도 서사 상으로 그녀의 비밀은 극 후반부에 극적으로 솟아 나와야 하는 것이기에, 영화는 린위에전을 바라보는 멍커로우의 표정을 더 가까이에서 바라보지 않는다. 그녀가 체육관 기둥에 강박적으로 새기는 문장(‘나는 여자다. 남자를 좋아한다’)이 무엇인지 보여주지 않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영화의 거리두기 전략이 단지 전략으로 수렴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목표하는 바를 초과하는 효과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아니, 주인공으로부터의 거리는 이 영화의 전략인 ‘동시에’ 영화의 태도다. 함부로 그 마음을 추측하거나 재단하지 않겠다는.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영화가 별다른 ‘이유를 붙일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인물들의 미숙함을 포착하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 수영장에서 “내 친구가 너한테 할 말 있대!”라고 외치는 건 그저 풋풋한 일화에 지나지 않는다. 극 중에는 어른이 되면 반드시 기억에는 없을, 필시 미성년기에만 존재할 수 있는 행동들이 즐비하다. 린위에전이 짝사랑하는 대상을 알게 된 뒤, 멍커로우는 하굣길에서 장시하오를 눈으로 좇는다. 자전거를 탄 장시하오가 신호에 걸려 멈춰 섰을 때, 마찬가지로 자전거를 탄 멍커로우는 그 옆으로 가서 흘끔, 그러나 상대가 눈치를 챌 정도로 그의 얼굴을 쳐다본다. 멍커로우의 시선을 느낀 장시하오는 그녀를 바라보지만 멍커로우는 앞으로 고정한 시선을 절대 바꾸지 않는다. 그가 자신을 쳐다본다는 걸 알고 있기에. 시선을 피하려 앞으로 조금, 움직이지만 그도 조금, 같이 움직인다. 그러다 마침내는 누가 조금 더 앞서 있는가를 경쟁하는 모양새가 되고 마는데, 이 행동의 흐름은 성인들의 언어 그물을 벗어나 있다. 물론 ‘왜 저러지?’에 대한 대답은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저럴 수 있지?’라는 질문에 대해서라면, 대답보다는 그저 같은 질문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멍커로우는 체육관에서 자신을 응시하는 장시하오를 발견하고 양옆으로 왔다 갔다 한다. 그의 시선이 자신에게 계속 꽂혀 있는지, 자신을 따라 움직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러나 행위의 목적을 알고 있을지라도 서로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함께 움직이는 두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그러니까 탐색과 유희가 혼재한 그들의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그들에게서 발산되는 무드(mood)를 온전히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음을 느낀다. 다만 어렴풋이 깨어나는 기억은, 일전에 나도 저렇게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아니 설명할 수는 있지만 설명을 벗어나 버리는 희한한 행동을 하곤 했다는 것이다. 「남색대문」은 첫사랑에 실패하는 퀴어 소녀의 이야기인 동시에 사춘기라는 우기(雨期)에 젖고 마는 미숙한 십 대들의 이야기다. 나는 수많은 하이틴 영화들 중 「남색대문」만큼 십 대 시절의 당돌함 혹은 기이함을 처음부터 끝까지 잡아낸 영화를 보지 못했다. 캐릭터들이 지닌 유별함은 서사에 복무하는 기능이 아니라 인물 개개인이 지닌 고유한 특징으로 빛난다. 영화는 그만큼, 그 나이의 주인공들을 사랑한다. 장시하오는 멍커로우를 쫓아다니며 말한다. “난 전갈자리, 기타 클럽, 수영부야. 이만하면 괜찮은 놈이지.” 자신의 별자리와 동아리를 언급하는 것으로 매력 어필이 충분할 거라는 이 위대한 자신감에 마주 웃지 않을 도리란 없다. 


논점을 다시 멍커로우에게로 돌려오자면, 나는 이 영화가 그녀로부터 두고 있는 거리가 그녀의 이해할 수 없는 행위들을 그저 바라만 보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장시하오에게, 그리고 체육선생에게 뜬금없이 “나랑 키스할래(요)?”하고 묻는다. 이 질문의 의도는 나중에 본인의 입을 통해 해명되지만, 그 이해의 순간이 오기 전까지 이 혼돈한 물음은 서사에서 크게 눈에 띄지 않고 섞여 든다. 적어도 나는, 그 질문이 멍커로우의 입에서 나오는 걸 납득했다. 영화가 지속적으로 그녀의 감정 한편을 파헤치지 않고 숨겨주었기 때문에, 동시에 간헐적으로 튀어나오는 감정의 표현들을 그저 바라 봐주었기 때문에. 린위에전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안게 된 멍커로우는 눈물을 흘리고 영화는 그 모습을 담는다. 하지만 그녀가 겪었을 다채로운 감정 모두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나는 영화가 주인공의 모든 감정을 언어화하지 않고 그냥 조금 거리를 두고 애틋하게 바라봐 주는 노선을 택했다고 생각한다. 소녀의 마음을 감히 어떻게 알겠는가? 





멍커로우와 장시하오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내달리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멍커로우의 내레이션이 깔린다. 그녀는 “우린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눈을 감아도 내 모습이 안 보여”라고 말한다. 첫 장면의 대사와 공명하는 이 대사는 문득 앞날에 대한 불행을 예고하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나는 이 역시 미래를 재단하지 않겠다는 영화의 결심으로 읽었다. 나 역시, 그 무엇도 예상하지 않으며 이 글을 끝내려 한다. 다만 이따금, 이 영화를 꺼내 보며 그 시절의 그녀를 그저 기꺼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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