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희구 Mar 19. 2023

넘치는 용기

3월 19일의 기록

이미지 출처는 보이듯 신서유기 3



오전 여덟 시에 눈을 떴다. 늘 그렇듯 바로 몸을 일으키지 않고 핸드폰으로 밤새 일어난 사건들부터 확인했다. 그중 눈을 사로잡은 건, 한 젊은 남성이 거리에서 산 음식을 갖고 PC방에 갔다가 외부 음식 반입 금지라는 규칙을 듣고 그 음식물을 책상 위에 엎어버렸다는 소식이었다. 뉴스를 통해 공개된 cctv 화면 속 남성은 게임이 끝나자 음식이 들어 있던 일회용기를 엎은 뒤 그 위에 pc방에서 구매한 음료를 부었다. 그리고 깃발처럼, 꼬치를 그 위에 꽂았다. ‘보아라, 네가 잔소리하면 내가 너에게 할 수 있는 일을.’ 실제 그의 심리가 무엇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화면으로 바라본 그는 상당히 여유로워 보였다. 한참 뒤틀린 심사가 그렇게 여유롭게 표출될 수 있다니 그의 행동은 실로 여러 면에서 놀라웠다. 조금 더 자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날 만큼.


몇 년 전 위층 집과 층간소음 문제로 기싸움을 벌인 적이 있다. 윗집에서 들려온 소음은 다양했고 크기 또한 대단했다. 경비실을 통해 조금 조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다음날 우리 집 앞에 소금이 뿌려져 있었다.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너무 황당하니까 싸워야겠다는 생각이나 의지가 사그라들었다. 뭐 사는 게 바쁘기도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궁금하다. 그게 그렇게 기분 나빴을까? 소금 한 바가지를 들고 나와 계단을 내려온 뒤 바닥에 소금을 골고루 흩뿌려 놓을 만큼? 소금이 아깝지도 않나? 읽어본 적은 없지만 문득 “미움받을 용기”란 책 제목이 떠오른다. 기이한 세상이다. 어떤 사람은 타인의 눈치를 너무 본 나머지 미움받을 용기를 쥐어 짜내야 하지만, 어떤 사람은 타인의 눈치를 보기는커녕 세상 사람 모두와 싸울 용기를 갖추고 있다. 전자에 속하는 사람 눈에, 후자에 속하는 사람은 멋있다기보다 무섭다. 미움받을 용기를 쥐어 짜내 용건을 전해도 그로부터 돌아오는 건 소금이나 엎어진 음식이기 때문이다. 『미움받을 용기』에서 말하는 자기 수용이 비사회적 인격에 대한 긍정은 아닐 텐데 어쩐지 부끄러운 행동을 저지른 사람들이 창피함은커녕 당당함을 유지하는 광경이 자주 목격된다. 혹, 그들은 본인이 미움받을 용기를 냈다고 생각할까? 아침에 본 짧은 뉴스 영상에 이토록 생각이 꼬리를 무는 까닭은, 오늘 새벽 1시, 본인들의 고함과 비명이 누군가의 단잠을 방해할 거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은 채 미친 듯이 떠들던 사람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달려 나가서 뭐라고 할까 잠깐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엎어진 음식과 음료를 치운 pc방 사장님은 앞으로 외부 음식을 가져오는 손님들에게 뭐라고 말할까.     


매거진의 이전글 비를 온몸으로 맞는 상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