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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구 Apr 02. 2023

머리카락이 보여주는 것

4월 2일의 기록

“아무래도, 이제 나이 들면 긴 머리는 못할 테니까.”

선미가 긴 머리를 휘날리며 ‘가시나’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였다. 아는 언니가 머리를 짧게 잘랐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보고 따라한 거였는데, 가시나 뮤비 속 선미를 보니 또 긴 머리가 예뻐 보인다며 ‘나도 참 변덕스러워’하고 웃어 보였다. 그러더니 새삼 진지하게 스물아홉에는 머리를 아주 길게 기를 거라 다짐했다. "나이가 들면 머리가 짧아지기 마련이니까..." 나는 어렴풋이 “맞아요” 맞장구를 쳤다.


초등학생 때 내 머리 길이는 거의 언제나 어깨를 훨씬 넘어섰다. 하지만 중학생 때 처음 숏컷을 한 뒤 나는 종종 머리를 짧게 잘랐다. 의외로 짧은 머리가 잘 어울렸고 무엇보다 머리칼을 잘라냈을 때 느껴지는 시원함이 긴 손톱을 잘라냈을 때 못지않게 컸다. 바로 그 시원함 때문에, 나는 미용의 목적보다는 스트레스가 많을 때, 어떤 힘든 과제를 앞두고 있을 때, 머리칼을 잘랐다. 내게는 그것이 머리를 질끈 동여매는 의식이었다.


스물아홉이 되었을 때 머리를 기를 거라던 언니의 말이 떠올랐다. 나도 해볼까 싶었지만 좀처럼 되지 않았다. 긴 머리는 너무 거추장스러웠다. 어깨에 닿는 가방끈에 머리가 끼이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늘, 머리를 쳐냈다. 하지만 서른이 되고도 몇 해를 넘긴 오늘의 나는 초등학생 때만큼 머리를 길렀다.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며 깨닫게 된 사실은 긴 머리가 오히려 편하다는 것이었다. 일단 머리가 뻗치지 않는다. 거지존에 접어들었을 때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스타일링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푸석한 머리칼도 일종의 스타일이 된다!


오늘은 날씨가 좋았다. 외출을 위해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섰는데 문득 긴 머리카락에 시선이 갔다. 이걸 언제 자르지? 철저히 편의를 위해 기른 것이므로 짧게 잘라야겠다는 생각은 더 이상 들지 않는다. 하지만 머리카락과 내가 맺어온 역사를 돌이켜보니, 문득 내가 더 이상 어떤 것에도 도전하지 않는 어른이 된 걸까 의심이 든다. 왜 나는 더 이상 머리를 질끈 동여매는 의식을 하지 않는 걸까.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나는 지금의 긴 머리도 꽉 묶지 않는다. 머리를 풀어헤친 채, 당장 앞에 주어진 일을 허겁지겁 해내기 바쁘다. 어쩌면 내 머리 모양은 지금의 내 상태에 대한 정확한 반영일지도 모른다. 올해가 가기 전 머리를 자를 수 있을까? 지금은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그 언니에게 묻고 싶다. 나는 머리카락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방치하고 있어요. 언니는요? 때에 맞춰 미용실에 가는 어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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