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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구 Apr 16. 2023

차단하고 노래 얹으면 충전?

4월 16일의 기록


엄마가 딸과 아들에게 가진 불만은 ‘귀가 먹었다’는 것이다. 집에서도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는 우리는 이따금 엄마가 하는 말을 바로 알아듣지 못한다. 우리는 엄마가 화가 난 후에야 민망하게 “불렀어?”하고 쭈뼛쭈뼛 눈치를 보며 다가간다. 집에서 이어폰을 사용하지 말았으면 하는 엄마의 바람과 달리 동생이나 나나 이 자그마한 음향 장치를 포기하지는 못한다. 우리의 영화 및 드라마, 그리고 음악 취향은 다 다르다. 무엇보다 tv는 엄마의 것이다. 그러므로 동생과 나는 각자의 방에서 이어폰을 끼고 덕후 생활을 할 수밖에. 이어폰이 없다면 집안엔 소음이 넘쳐날 것이고, 볼륨을 작게 줄인다면 덕심이 차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동생과 내게 이어폰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세상과 얼마간 단절된 채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서다. 이른바 노동요라는 것은, 이미 기운이 넘치는 육신에 더 큰 활력을 불어 넣어주기 위함이 아니라 일할 상태가 아닌 몸과 마음을 단도리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노래도 세상 소음의 일부지만, 그건 내게 에너지를 수혈해 주는 일종의 자양강장제다. 반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귓속을 파고 들어오는 여타의 소리는 내 심신에 피로를 누적하는 스트레스 요인이다. 프리랜서지만 강사이기에 늘 출퇴근을 반복하는 나는,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향할 때, 눈썹을 시곗바늘 10시 10분 모양으로 그린 채 파워워킹으로 빠르게 사람들을 지나쳐 걷는다(물론 온몸에 힘을 뺀 채 터덜터덜 좀비워킹을 할 때도 적지 않다). 그때 내 귀엔 당연히 이어폰이 꽂혀 있다. 나는 길이 넓은데도 내 뒤에 바짝 붙어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들을 잘 못 견뎌한다. 강사도 결국엔 사람을 대하는 일인지라, 한바탕 인간관계를 치르고 난 뒤엔 사람들과 마주하고 싶지 않다. 내게 직접 던지는 말이 아니더라도 세상과 잠깐 연결을 끊은 채, 노랫말과 멜로디 속으로 침잠하고 싶다. 그렇게 그 속에서 한동안은 굴러야 다시 예의를 갖춘 문명인이 되는 느낌이다.


몇 시간 전 동생의 이름을 연달아 불렀는데 대답이 없었다. 내가 큰 소리로 “○○야!” 하고 부르고서야 그는 “아, 불렀어?” 하며 쭈뼛쭈뼛 내 눈치를 봤다. 대체 뭘 그렇게 큰 소리로 듣냐고 했더니 ‘빗소리’를 듣고 있다고 했다. 그리곤 “되게 좋아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빗소리. 가끔 나도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틀어놓는 소리다. 동생의 손을 잡고 ‘네 마음 알아’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는 내가 손을 잡자마자 산책을 나간다며 명상에 필요한 도구(스마트폰과 이어폰)를 챙겨 나갔다. 그의 등을 바라보며 속으로 외쳤다. '브로(Bro), 나도 안다고!'



영화 <킬링 로맨스> 장면 /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어제 영화 <킬링 로맨스>를 본 여파로, 이 글을 쓰며 비의 레이니즘(Rainism)을 들었다. <킬링 로맨스>는 노래가 인간에게 얼마나 강력한 최면을 걸 수 있는지 설파하는 뮤지컬 영화다. 여래(이하늬)가 조나단(이선균)과 사랑에 빠지는 결정적 이유는, 그의 콧수염도 재력도 “잇츠 뀻”을 남발하는 재간 때문도 아니다. 오로지 그가 “행복”(by HOT)을 부르는 순간 마법처럼 홀리기 때문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조나단은 행복을 부르며 다시 여래를 꾀어내려 하지만  ‘여래바래(극중 여래의 팬클럽 이름)’가 여래이즘 부흥회를 열어 그를 저지한다. 팬들과 함께 “여래이즘”을 부르며 용기와 제정신을 충전한 여래는 조나단에게 귤을 먹인다. 여래이즘이 나오는 순간 나는 주위에 다른 관객이 있다는 걸 깜빡하고 박수를 치고 말았다. 솔직히 어롱 상영관이 나온다면 동생 손을 잡고 다시 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되겠냐). 내면으로 들어가게 하는 음악 말고, 세상과 연결되는 음악도 치유력이 있으니까. 물론 평소 그의 취향을 생각해 보면 그는 영화 상영 내내 벙쪄있고 나만 낄낄 댈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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