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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구 Jun 04. 2023

산책은 갖은 잡념을 불러

6월 4일의 기록

내가 <와일드> 사진을 올리는 건 본문과 크게 관련 없음. 사실 아무 의미 없음. 이미지 출처는 디즈니 쁠러스


예전 직장 동료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걸어서 대략 50분이 되는 거리를 걸어왔다.

무작정 걷기의 예찬자 리베카 솔닛(『걷기의 인문학』)은 기왕이면 의도적으로라도 길을 잃을 것을 추천했지만, 길치인 나는 아는 길을 걸었다. 길에 관한 한 나는 매우 겁쟁이다. ‘아니, 어차피 사시는 동네 아니에요?’라고는 안 물으셨으면 좋겠다. 진지하게 나 상처받는다.

길을 잃지 않는다고 해서 산책이 즐겁지 않을 리는 없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작은 황금빛 벌레를 봤다. 제법 귀여웠다. 햇빛이 뜨거운데 운동장에서 팀별 유니폼을 입고 축구를 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대단했다. 운동장을 지나자 바로 옆에는 ‘시니어 클럽’이라는 문구와 함께 어르신들을 위한 테니스장이 마련되어 있다. 문득, 내가 시니어 클럽에 속하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지를 계산했다. 시니어 클럽에서 절대 멀어질 는 없고 앞으로 가까워질 일만 남았다는 사실을 깨닫자 기분이 묘해졌다. 귓가에 꽂은 이어폰 속에서 사이먼 앤 가펑클(Simon&Garfunkel)의 ‘엘 콘도 파사(El Condor Pasa(If I could))’가 흘러나왔다. 이 노래를 들으면 나는 꼭 장 마크 발레 감독의 영화 <와일드>가 떠오른다. 사실 그 영화에서 이 곡을 처음 접했다. 하지만 나는 영화보다 원작 도서를 더 좋아한다. 스물한 살이었나, 내가 나를 가장 싫어하고  스스로에게서 가장 벗어나고 싶었을 때 셰릴 스트레이드(<와일드>의 원작자)의 이야기를 접했다. 엄마를 잃은 상실감에 인생의 저점을 기록하고 망가져 있던 그녀는, 자신의 문제를 똑바로 마주하기 위해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4,300km)을 두 다리로 걸었다. 사실 이따금 내가 즐기는 긴 산책은 리베카 솔닛보다는 셰릴 스트레이드에게서 받은 영향이 크다. 나는 걸으면서 나 자신을 떨쳐버리고 싶었고, 때로는 나 자신을 긍정하고 싶었다. 엄마를 그만 연민하고 싶었고 동시에 엄마를 위해서 강해지고 싶었다. 친구와 멀어지고 싶었고 그럼에도 가까워지고 싶었다. 내 한 걸음걸음에 담겼던 고민의 길이를 죽 길게 연결시켜 본다면, 글쎄,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만큼은 당연히 안 될 것이다.

갖은 잡념으로 버무려진 오늘의 산책길에 틈틈이 끼어든 생각은, 오늘 만난 엑스(ex) 동료로부터 전해 들은 한 젊은 여강사의 이야기다. 수학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고등학생들에게 수년간 과외를 한 경험이 있는 이 선생님은 학원에 들어오며 고등부를 지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학원이 그에게 맡긴 학생들은 중등부도 아닌 초등부. 2년간 꾸준히 고등부로 옮겨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그만뒀다고 한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몇 년 전 논술학원 재직 당시 내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중등부를 지원한 내게 학원은 ‘선생님은 초등부가 어울린다’며 초등부 수업을 주었다. 원치 않았다. 아이들이 귀여운 것과 별개로 초등학생 수업은 진행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내 일은 강사보다 학생들 돌보미에 가까웠다. 그런 와중 내 후배로 들어온 남자 강사는 곧바로 중등부에 배치됐다.

논술학원에 있을 때도, 이후 영어학원에 있을 때도 나보다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곧잘 이런 말을 했다. ‘이 일(강사), 여자는 괜찮아.’ 하지만 나는 내가 강사를 하고 있으면서도 정확히 이 일의 무엇이 내게 괜찮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일을 쉬고 있는 지금도 ‘괜찮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에서 괜찮다는 건지 아리송하다.

집이 가까워진 시점에 어제 동네 서점을 방문한 일이 떠올랐다. 몇 년 전 미투 운동으로 인해 여성학 도서가 한창 서점가를 휩쓸었을 때 동네 서점에도 여성학 코너가 따로 마련됐었다. 하지만 코너의 규모가 점점 줄어들더니 오랜만에 방문한 어제는, 코너가 아예 사라져 있었다. 꼼꼼히 돌아본 결과 단 6권의 책이 ‘주체적 여성이 되기 위해’라는 글과 함께 책장에 꽂혀 있었다. 페미니즘이 사라진 자리에는 챗GPT 담론이 들어서 있었다. 나는 쥐뿔도 모르는. 어제도, 그 광경을 떠올리는 오늘에도, 기분은 그다지 산뜻하지 않다.

집에 도착하니 등이 조금 축축하다. 오늘의 산책은 6월의 햇살을 선캡이나 앞머리 없이 쌩이마로 대략 50분을 대면했을 때 받을 수 있는 느낌 그대로 마무리됐다. Hot 뜨거 뜨거 Hot 뜨거 뜨거 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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