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고양 Apr 27. 2024

서른이 되면 돈이 많아져요?

아니요




회식이었다. 절대 내 돈 주고는 못 사먹을 것 같은 비싼 고기가 바싹 바싹 잘 구워지는 걸 보고 있는데 불쑥 아기 직원이 내게 물었다.


서른이 되면요. 돈이 많아져요?

서른이면 좀 여유로워져요?


우리 아기 직원은 종종 월급에 대한 이야기를 내 옆에서 혼잣말하듯 중얼거리곤 했다. 아기 직원의 순진무구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그래도 자존심이 있어서 당신 월급은 개미똥꾸멍이고, 경력 좀 쌓인 내 월급은 여왕개미똥꾸멍 정도 된다는 말도 차마 꺼내지 못 했다.


그런데 오늘은 마침 올해 서른이 된 내게 서른이면.... 하고 물어온 것이다.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직격탄이었다. 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답했다.


서른이 돼도 돈은 없어요.


물론 어디까지나 당사자성 발언이라고도 덧붙였다. 아기 직원의 꿈과 희망이 와장창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산다는 우스갯소리도 하고 싶었는데 옆에 사장님이 떡하니 계셔서 차마 못 했다.


벌써 서른인데 나는 돈이 없다. 끼리끼리 만난다더니. 서른이 된 내 친구들도 돈이 없다.

만나면 항상 그런 이야기를 한다. 우리만 빼고 세상 사람들 다 돈 많다. 무슨 20대에 1억을 모았다니. 어떻게 퇴직금 3000만원으로 3억을 만들었대? 아니 내가 여기서 퇴직금 3000을 받으려면 등골을 뽑아야 돼. 대기업에서 연봉 7000 받다가 퇴사한 2n세.... 엥 나는 평생 7000도 못 모을 것 같은데 어떡해?


난리도 아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도 없어! 술 없이도 잘만 외친다. 돈은 없지만 너무 즐겁다.

죽지 않고 잘 살아서 서른이 된 우리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만담이 나는 너무 좋다.


그래서 살짝 후회된다.

서른이 돼도 돈은 없어요. 라는 말 뒤에 한마디를 덧붙였어야 했는데 말이다.


서른쯤 되면 없으면 없는대로 즐겁게 살게 된다고.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봤다. 다음에 아기 직원과 또 다시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올까? 아마 없을 것이다.


스물 넷, 스물 다섯의 언저리. 그러니 대학을 막 졸업하고 첫 직장에 입사했을 때는 나도 지금의 아기 직원과 똑같은 고민을 했다.


나 역시 누군가의 아기 직원이었을 때, 그러니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수였던 대리님에게 그런 질문을 했었다. 원래 신입은 월급이 이렇게 쥐똥만한지. 대리님이 신입이었을 때는 어떻게 굶지 않고 살았는지. 그리고,


저희는 앞으로 계속 이렇게 평생 일해야 하는 거예요?

대리님은 어떻게 6년을 버티고 계세요?


그 때 대리님은 큭큭 웃다가 그냥 버텨요, 그랬다. 어떻게 버티긴. 그냥 시간이 이만큼 지난거죠. 매주 로또나 사면서. 로또가 되면 일 그만둬도 되고. 안 되면 평생 일해야지. 그게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불행해지는 거고.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죠.

대수롭지 않다는 듯 중얼거리는 대리님이 꽤나 멋진 어른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6년 전 ‘나’라는 신입을 떠맡아 가르치던 대리님도 서른이었다.


내가 이 바닥에서 6년을 버틸 수 있던 건 전부 대리님 덕분이다.


대학은 어제 졸업했어요. 그 바쁜 와중에 아무것도 모르는 쌩 신입을 떠맡아 참 답답했을 텐데 대리님은 '신입'이란 원래 다 그런 거라며 출근 첫 날 내 의자의 높낮이부터 맞춰주었다. 사무직이니 몸은 안 아플 거라고 생각하지만 큰 오산이라고. 오래 앉아 있다보면 허리가 무너지고 어깨가 무너지고 나라가 무너지고....


그러니 나도 나의 첫 부사수로 아기 직원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내가 대리님에게 배운 태도로 모든 걸 전했다. 나는 나의 사수에게서 단순히 업무만 배운 것이 아니고, 평생 돈으로 살 수 없는 크나큰 무언가를 배운 것이다.


얼마 전 아기 직원도 새로운 신입을 맞이했다. 만나기 전까지는 내내 어떤 사람일지, 자기가 잘 가르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긴장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정말 멋지게 잘 해내고 있다. 


일종의 순환 고리인 것이다. 잘 키운 신입은 결국 좋은 사수가 되고, 좋은 사수는 또 훌륭한 사수를 만들어 내게 되는. 그냥 나는 어디서든 '신입'에게 너무 매몰차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게 어떤 일이든 우리 모두 '신입'이었으니까.



그런데 정말 궁금하긴 하다.

언젠가 서른이 된 아기 직원은 서른에 돈 없다는 내 말을 떠올리게 될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