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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환 Jun 30. 2020

주소록 동명이인

이름 모를, 아니 이름만 남은 사람을 떠나보내며...



담당자 연락처를 전달받았다.

강원도에 있는 이 얼굴도 모르는 다른 회사 담당자와 앞으로 한 달여간 원격으로 협업하며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


휴대폰에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바로 문자와 통화를 위해 이름을 검색해봤다.

같은 이름을 가진 연락처가 하나 더 검색되었다.


전화번호부에 수백 명 넘게 입력되어 있는데, 이 중에 같은 이름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보통은 잘못 전화하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덜 중요한(과거에 알고 함께 일했지만 더 이상은 연락할 일이 없다고 판단되는) 연락처를 지우곤 한다.


그런데, 오늘의 동명이인은 도무지 어떤 이유로 내 연락처에 등록되어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 이 사람 그땐 이랬었지. 지금은 잘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거치고 나서 아쉽지만 안녕을 고해야(전화번호를 삭제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는 것이었다.


보통 주소록에 이메일이라든지 간단한 메모가 함께 저장되어 있을 법한데, 그마저도 없이 딱 이름과 전화번호뿐이었다.

그렇다고 갑자기 뜬금없이 문자나 전화로 '누구신데 제 휴대폰에 저장이 되어 있을까요?'라며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학창 시절, 매 학년 때마다 지금과 달리 많게는 한 반에 60명이 넘게 '같은 반'이었다.

한 반에 같은 이름이 2명 혹은 세명이 있는 경우도 있었고, 그럴 때에는 '큰 OOO', '작은 OOO'으로 구분하거나,

번호순으로 'OOOA', 'OOOB'로 부르기도 했다.

장난 삼아 반에서 'OO야~'라고 부르면 이내 둘 다 쳐다보기도 했고, 장난인 줄 알고 나서는 불러도 둘 다 돌아보지 않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성만 틀리고 이름이 같은 '김 HJ, 이 HJ, 박 HJ'이 모두 같은 기간 한 회사에서 근무하는 것도 봤고, 흔하지 않은 이름인데도 회사 내에서도 아닌 부서 내에서 성과 이름이 모두 겹치는 경우도 있었다.




한 번은 고객사 상위 담당자가 나와 같은 이름이었던 적이 있었다.

내 이름도 흔하지 않은 편이라 생각하는데(브런치에서는 필명을 쓴다.) 어떻게 딱 겹치고 말았다.

그런데 다행히 직책이 틀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이름과 직책을 함께 부르면서 구분했었는데, 

프로젝트 중간에 그 담당자가 승진하면서 나와 직책까지 똑같아졌다!


사람들이 'OOO 팀장님~'이라고 부르면 두 명이 동시에 돌아다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더군다나 이메일 사용이 많은 현대사회에서, 'OOO 팀장님이 지난번에 말씀하셨던...'이라는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상위 담당자의 승진 며칠 후, 고객사 프로젝트 담당자가 내게 와서는 조용히 이야기를 건넸다.

"죄송한데, OOO팀장님, 앞으로는 직책 말고 직급을 붙여서 불러도 될까요? 저희 팀장님이랑 너무 헷갈려서요."

"당연하죠!"




다시 휴대폰을 바라다본다.

과거의 그 사람은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무런 인사 없이 내 휴대폰에서 지워지게 된다.

어쩌면 그 사람도 나를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 이름도 지금까지 계속 누군가의 연락처에서 지워지고, 잊히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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