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환 Jul 11. 2020

노란 꽃이 지면 초록색 열매가 열린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도시 농부가 되었다.

집에 화분이 몇 개 있기는 하지만, 상추 같은 채소나 과일을 좀 키워보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아내는 방울토마토 씨앗을 사 왔다.

'설마 싹이 다 나겠어?'라는 생각에 싹이 나는 것들만 큰 화분에 옮겨심기로 하고 아이와 함께 작은 화분에 20개의 방울토마토 씨앗을 심었는데, 20개의 씨앗이 모두 싹을 틔웠다.



새싹이 한동안 나오지 않아서 잘못된 줄 알고 나와 아이는 마음을 졸였다. 씨앗이 잘못되었거나 잘못 심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하나씩 방울토마토 새싹이 나오기 시작하자 함께 환호했다.




작은 화분에 너무 촘촘히 심어서 몇 개의 새싹은 한 개씩 옮겨심기에 무리가 있었다.

욕심내다가는 작은 뿌리가 다치거나 흙이 모조리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결국 많게는 5개, 혹은 2~3개씩 같은 화분에 조심스럽게 옮겨 심었다.


옮겨 심어서 그런지 원래 힘이 없던 것인지 몇 개의 씨앗은 잘 자라지 못하고 시들시들했다.

결국 상태가 좋지 않은 새싹들은 오히려 다른 새싹들이 자라나는데 방해가 될 것 같아 뽑아 버리기로 결정했다.

아이는 그 포기해야 하는 새싹들을 무척 불쌍해하고 그들에게 미안해했다.


결국 2개, 5개의 새싹들은 한 화분에, 나머지는 8개는 하나씩 새 보금자리를 갖게 되었다.

신기한 것이 하나씩, 또는 5개를 옮겨 심은 것보다 2개의 새싹을 함께 옮겨 심은 방울토마토들이 가장 잘 자랐다.

경쟁심리가 있어서 그런가 하고 생각해봤다.


얼마 후 노란 토마토 꽃이 피었다.

토마토 꽃이 노란색인 줄 몰랐다.

예전에도 텃밭에서 토마토를 키워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다른 채소와 과일들을 동시에 키워서 그런지 유심히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인공) 수분해 줘야 하지 않을까?"

"벌써 꽃이 지고 열매가 맺히고 있는걸?"


자연 상태가 아니라 열매를 열리게 하기 위해서는 붓 등으로 꽃가루를 수술에서 암술로 옮겨주는 '인공수분'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아내가 말했다.

열매가 열리고 있는 것을 먼저 본 나는 필요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실제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벌들이 꽃 주위를 맴도는 것을 여러 번 봤다.



자기 몸집보다 조금 큰 그 작은 꽃에서 먹을 게 있는지 궁금하지만 어쨌거나 꽃은 벌을 부르는 것 같다.

내가 보지 못한 사이 나비도 왔다 갔겠지.

모기도 산란기의 암컷만 사람이나 동물의 피를 빨지, 수컷이나 평상시 암컷은 꽃과 과일의 즙을 빨아 식물의 산란을 돕는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방울토마토 15그루를 키우는 '도시 농부'가 되었다.


방울토마토 씨앗을 몇 개 심었을 뿐인데 전에 잘 보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싹을 틔워내는 씨앗의 힘과 의지, 누군가에게 결정되는 생(生)과 사(死), 열매 맺기 위해서 필요한 도움, 도시에서 아직도 벌들은 열심히 꽃을 찾아 날아다니고 있다는 것 등등...

(5개의 새싹들아 미안)


한동안은 잘 익은 빨간색 토마토를 먹을 때마다 머릿속엔 노란색 토마토 꽃이 떠오를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글감'을 관리하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