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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환 Aug 03. 2020

직장에서의 반말과 존댓말

깨지긴 했지만 나름 철학은 있다.

나보다 한 살이 어리던, 10살이 어리던 절대 직장 동료들에게 말을 놓지 않는다.

어느 한쪽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말을 놓게 되면 어느덧 상하관계로 느껴져서, 관계가 동등했을 때는 요청하지 않았을법한 일을 지시한다거나, 그러한 일을 지시받더라도 항의하지 못하는 등 여러모로 상대방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나름의 직장 생활 원칙을 갖고 그렇게 하고 있다.


심지어 사내 스터디를 할 때에는 서로 별명을 부르며 진행한다.

스터디에서는 나이나 직급에 상관없이 서로 의견을 개진해가며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낸 아이디어다.


그런 생각을 오래 지켜오고 직장생활을 해왔으나, 지금 직장에 다니면서 상황이 좀 바뀌었다.

한 직장에 너무 오래 다닌 결과다.




"이제 그만 말씀 좀 낮추세요. 오히려 저희가 불편해요."


오래 같이 지내온 동생 혹은 조카뻘 직원들과 저녁에 술 한잔 할 때마다 한 번씩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개인적으로도 정말 친해지고 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서로 연락하게 될 것처럼 가까워진 직원들에게는 한 명씩 말을 놓게 되었다.

물론 공식적인 회의 시간이나 다른 직원들과 여럿 함께 있는 경우는 다시 말을 높인다.


재직 기간이 늘어날수록 내가 말을 놓거나, 반대로 내게 말을 놓는 직장 동료들이 한두 명씩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어린 신입 직원들에게는 존댓말을 하고, 친해진 나이 많은 직원들에게는 반말을 하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심지어 내가 어떤 팀의 팀장에게는 반말을 하고, 팀원들에게는 모두 존댓말을 하고 있는 경우도 발견했다.


관찰해보니 말을 높이고 낮추는 경우는 상당히 다양한 것 같다.

어떤 직원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남자 직원에게는 무조건 말을 놓고, 여자 직원들에게는 무조건 존댓말을 한다.(이런 걸 성차별이라고 해야 하나?)




직급을 평준화한 기업들과도 많이 일을 해봤다.

팀장, 부장, 그룹장, 실장 등 직책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매니저"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이 있다.

동일 직급으로 통일되었다 하더라도 회의 때나 업무를 진행할 때 어느 한쪽이 반말을 하게 되는 상황이라면 사실상 의도했던 수평적 조직문화가 아닌 수직적 조직문화가 된다.

제도적인 노력이 있더라도 오랜 조직 문화를 이기기는 힘든 것 같다.




온라인상의 공간에 글을 올릴 때 어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 적이 있다.

"... 했습니다."와 "... 했다."는 분명 어감이 틀리다.

한동안 통일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다가 지금은 양쪽 모두를 쓴다.

주로 내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하는 글이나 서평 등은 반말로 쓰고, 누군가에게 설명하거나 이야기하는 글은 높임말을 쓴다.

브런치에서도 일반적인 글은 반말로 쓰고, 매거진 '직업으로서의 PM'은 내가 생각하는 직업관과 PM이라는 업무를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방식이라 경어체로 쓴다.




직장에서는 서로 존댓말을 해야 한다는 내 철학이 깨진 것 같아 가끔 찜찜한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금 직장에 계속 다니는 동안은 이렇듯 직장동료 간 반말과 존댓말의 혼용하며 생활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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