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나만의 할당, 중심법: 100을 다하지 말자
요즘 인간관계에서 100을 다 하지 않고 적정한 비율로 할당해야 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혹은 어떤 것에 에너지와 마음을 쏟게 되면 어딘가는 기필코 비어버린다. 나는 비어버리는 곳은 항상 다른 누군가와의 관계보다 나 자신 쪽이었다. 그런 것도 모두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나와 우리 모두를 지키기 위해 나만 소모되는 관계들을 주의 깊게 잘 들여다보고, 소모되기만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잘 조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참 내키지 않았는데, 그리고 그럴 만큼 딱히 마음이 크지 않으면서도 꾸역꾸역 어딘가에 맞춰 살아왔다. 그러면서 참 심란했고 마음고생이 많았다. 여유도 없어서 항상 어딘가에 쫓기며 밀려나가는 형상이었고 어딘가에 매달려있고, 결국 실망한 채 돌아서버리는 모양이 되길 반복했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든 완벽한 것도 없거니와 사람 살아가는 것은 다양하되 어떤 식으로든 조금씩 비슷한 것을 몰랐다. 누군가와 비교할 필요도 없고 서로 다른 모습을 보며 상처받을 필요도 없고 괴로워할 필요도 없다. 혹여나 그러기를 너무나도 강요하는 관계라면, 과감하게 잠시 끊어 두는 것이 좋겠다. 가족도 예외는 없다. 그저 서로 여유를 가진채 조금씩 다름을 받아들여주면 될 뿐이라는 것을 내려놓고 나서야 깨달았다.
애정이 있는 관계는 멀어져 보면 소중하다는 것을 깨우쳐준다. 애정이라는 말로 상처주는 관계는 건강하지 않다. 건강한 관계를 위해 기다려주며 다듬어 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서로 미숙하다면 멀어져 배울 시간이 필요하다. 서로 성장할 시간이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잠시 멀어지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고 배울 수 있다. 서로의 모난 부분은 조금씩 품어주며 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가끔은 멀어져야 좋아진다. 그리고 멀어져도 좋은 관계가 참 고마워진다. 잠시 멀어지고 나서야 관계의 소중함과 희미했던 진의가 보였다. 소모 없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저 그렇구나 인정할 수 있다.
멀어졌을 때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 없이, 서로를 소모시키기만 하는 목적만 남은 관계는 피해야 했다. 환경적 여건이든, 성격이든, 삶의 목적이 맞지 않아서 갉아먹고 먹히기만 하는, 기피해야 하는 관계도 분명 있기 마련이다. 갉아 먹히기만 하는 중이었다고 멀어지고 나서야 보였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 관계가 크게 중요하지 않음을, 나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간섭할 여지가 없음을 깨달을 수 있다.
우위를 두고 우열을 가리며 자신의 당위성을 납득시키기 위해 소모시키는 관계는 끊어내야만 한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멀어졌을 때 더욱 잘 보인다. 존중하는 관계는 선을 넘지 않으려 노력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내 삶에서 나의 에너지는 무한이 아니라 유한하고 한정적이기 때문에 나의 삶을 좀 더 돌보기 위해 아닌 것은 아니라고, 중단하거나 떠나야 할 때와 끊어야 할 때를 알아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풍요롭게 하고 좋은 관계를 다질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중심은 나라는 것이다. 삶의 중심을 나에게 맞추니 점차 안정이 되어가고 정리가 되고 있다. 인간관계법에도 참 많은 영향을 끼쳤다. 서로의 중심에 머물렀을 때 서로를 밀어내는 모양이 아니라, 서로를 품는 모양으로 변해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나답지 않고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에 끌려가지 않는 중심 잡는 방법을 기르고 단련하는 것이었다. 항상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연도에는 그게 되는 듯 안 되는 듯하는 시기를 보냈다. 말에 다다라서야 상대방의 태도나 말에 점차 영향을 받는 일이 적어지고 있다.
다만 현재 상황에서 옛 관계들이 더 이상 받아들임의 여유 없이 그저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 누군가로 자신의 빈 구석을 채우기 급급한 마구잡이식의 소모적 관계로 머물러있다면, 그 관계는 피하는 것이 맞았다. 영원히 나아지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만 너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면 과감하게 멀어져 보는 것이 맞았다. 그런 관계들을 멀리하니 정말 중요한 곳에 투자할 수 있는 여유가 나에게 주어졌다.
나는 그동안 나 자신에게 너무 엄격했다. 과연 최선을 다한 것이 맞느냐며 스스로를 모질게 꾸짖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나를 잃어가면서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다. 나 자신을 위해 노력해야 했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갈리고 갈리며 부서져만 갔다. 역시 상황은 내가 노력만 한다고 좋아지지 않았다. 똑똑하게 알고, 현명하게 굴어야 했다. 계산이 잘 되지 않는 성격이면서도 동시에 이해타산적으로 계산했기 때문에 원망과 실망만 느낄 수밖에 없던 것이다. 나는 나를 잃어가면서까지 노력했는데!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갈피 잡지 못하고 이끌려 다니는 내가 상대방에게 어떻게 비쳤을지는 뻔하다. 내가 나를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데 상대방이 나를 귀하게 여겨줄리는 없었다. 그러면서도 나를 귀하게 여겨주는 귀한 관계들도 있긴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내가 나를 귀하게 여길 줄 모르면 결국은 누구에게나 빌미를 제공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럴 필요 없이 그저 잠시 멀어지면 된다. 먼저 내 마음을 돌봐야 하는 준비 기간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관계에 대해 고민한 지 3-4년이 되어가는 것 같다. 올해 전에는, 그리고 불과 며칠전만 해도 결국 원망스럽다는 감정을 자주 가졌고 “이번에도 역시나!”라는 실망감을 느끼면서 이번에야말로 이 모자란 관계들을 잘라버려야 할지 어쩌면 좋을지 참 많이 고민했다. 기대도 믿음도 없어지고, 관심도 없어진 상태였다.
그렇게 반복하다보니 나름대로 둘러 둘러 조금씩 표현하는게 어렵지 않게 되었고 잠시 멀어졌다. 원망이 희석되어 저 사람은 틀렸다는 식으로 무시하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 그럴 시간에 나 자신에게 집중하니 다행히 무시하는 표현은 하지 않을 수 있었고, 무시하기보다는 점점 안타까워져 갔다. 비록 만나게 되는 텀은 길어졌어도 이러든 저러든 이끌려 다니지 않게 되면서 관계들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 관계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서 성장했음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부족한 모양새도 나름 괜찮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정이 가고 상처를 받으면서도 마음을 주게 되는 이유들이 있던 것을 발견했다. 서로가 서로를 애틋하게 생각했다. 서로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 미운 정도 정이고 그러면서도 고운 정이 함께 곁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최선과 상대방의 최선이 달랐던 것뿐인데, 나 또한 같은 방식을 바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 다 달리 상대방을 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꾸만 잊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는 왜 나만 참아야 하는 걸까 고민하며 이렇게 생겨먹은 나의 처지를 비관했다. 그러다 올해에는 상대방을 품어줄 수 있는 조금 더 여유가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자랑스럽게 느껴졌고, 상대방 또한 달라지니 관계에 믿음이 생기고 관계의 발전도 생겼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품어보는 감각을 몇 번 느끼게 됐다. 억지 부리지 않아도 마음이 잘 느껴지고, 잘 전달했다. 나의 중심도 잘 지켜졌다. 충만하고 만족스러운 에너지였다.
그때그때의 상황마다 진심으로 다가가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좋은 자세이다. 나는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내 여유가 채워지지 않았을 때, 모자랄 때, 힘들 때에는 일단 멀리 두어보는 시도도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멀리했다고 노력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그저 상황에 맞게 살아가면 된다. 너무 애쓰며 따라가려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노력하지 않아도 옆에 남을 관계들은, 내게 여유가 생겼을 때에 다시 돌보아줄 여력과 마음을 쏟을 시간이 다시 자연스럽게 돌아온다. 억지로 끼워 맞출 때 보다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부드럽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단단한 힘이 생긴다. 뭐든 자연스러운 것이 제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관계를 놓칠까, 망칠까, 놓아버릴까 걱정하고 속상해하며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글을 쓰다 보니 관계에서만 아니라 일도, 글쓰기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뭐든지 중요한 것은 나의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나의 소리를 잘 듣고 나를 따라가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