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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처 Jul 13. 2024

우는 아이, 짜증 내는 아이, 화내는 아이

ADHD와 분노조절

  체육 전담으로 수업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3학년부터 6학년까지다. 나이로 따지면 만 8세~만 12세. 어린아이들은 꽤 어린데, 동시에 제법 청소년스러운 학생들도 함께 가르치는 꼴이다. 나이가 많을수록 학교 수업에도 익숙하고 체육 활동도 많이 해봐서 대체로 능숙하게 잘 해내곤 하는데 3학년의 경우 역시 아직 애기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이를테면 수업을 하다 우는 아이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3학년에서 가장 빈번하다. 보통은 뛰다가 넘어지거나 공에 맞아서 울곤 한다. 6학년은 대체로 공에 맞아도 그냥 넘어가는 편이고 그런 것보다는 뭔가 불만이 있을 때 표정이 안 좋은 케이스가 더 많다. 수업에 오기 전부터 이미 안 좋은 얼굴로 오는 경우는 집에서부터 문제가 있었거나 이전 시간에 다 풀리지 않은 문제 때문일 수 있다. 아이들의 문제도 어른만큼 복잡 미묘한데 어른들보다 더 얼굴로 많은 게 드러나는 게 아이들이다.


  체육 시간 우는 아이는 특별히 문제 될 건 없지만 짜증 내는 아이, 화내는 아이는 문제가 된다. 넘어져 우는 것처럼 일시적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 3학년 민지는 학기 초가 좀 지나고부터 매번 찡그린 얼굴로 수업에 온다. 운동 신경이 좋은 편은 아닌데 달리기도 한 번만 해보고 나서 자기만 느리다고 짜증 내면서 구석에 가 앉아버리기도 했다. 말투 같은 걸 보면 보통의 3학년 아이답지 않게 말하는 게 성숙하다고 해야 할지, 과하다고 해야 할지, 자꾸 눈에 띈다. "나는 우리 팀의 트롤이야."같은 말을 하는 여자 아이, 3학년에서는 거의 보기 힘들다. 게임이나 유튜브로 보내는 시간이 많은 듯한데 뭘 해도 금방 포기하고 울상이 돼버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참 난감하다.


  담임 선생님을 통해 들었는데 반에서 줄넘기를 할 때 민지가 이렇게 말했더란다. "왜 못하는데 최선을 다하라고 해요!" 어떤 모습이었을지 눈에 선하다. 줄넘기가 어려우니까 울분을 토하듯이 저런 말을 뱉었을 것이다. 담임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민지야, 아무도 최선을 다해서 하라고 하지 않았어. 너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돼."


  비슷하게 거듭되는 일로 담임은 부모와 상담했고 요즘에는 민지가 ADHD 약을 먹는다고 들었다. 체육 수업에서 이상하게 울분을 토하듯 말하는 일이 많이 줄었다. 운동 능력은 달라진 게 없고 여전히 좀 더디고 생각처럼 몸이 안 따라주는 건 똑같지만 그냥 한다. 예전처럼 포기하듯이 주저앉고 울상이 되진 않는다. 말투나 사고방식은 비슷해서 완전히 ADHD만의 문제일까 싶지만 어쨌든 현재 확연히 개선된 태도로 체육 시간을 보낸다.


  5학년에서는 한 남자애 때문에 최근까지 고심했다. 보경이는 제자리멀리뛰기를 하면 뛰고 나서 "왜 나만 이렇게 멀리 못 뛰는 거야!" 하면서 발을 구르고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내가 가서 '잘한 거야, 이렇게 해보면 더 멀리 할 수 있을 거다.' 하는 식으로 조언하고 달래줬다. 하지만 다음에 공을 차고 나서도 "왜 나만 이렇게 못 차!" 하며 또 발을 구르며 악 지르듯 화내는 걸 볼 수 있었다. 민지의 경우와 약간 달랐다. 운동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러면 순간 주변 아이들의 분위기가 얼어붙으면서 긴장되고, 누가 가서 '괜찮아. 그럴 수 있어.'라고 말을 건네는 것도 보경이의 화가 좀 스스로 가라앉어야 해 볼 일이었다. 나는 몇 번 더 그런 모습을 봤을 때 짜증 내지 말라고, 고작 한 번 해보고 왜 화를 내냐고 주의를 주었다.


  그러다가 다른 전담 과목 선생님으로부터 여러 얘기를 들었다. 영어나 음악 때 자꾸 화장실 간다고 나간다는 것. 예전부터 그림 그리는 것만 좋아해서 다른 건 안 하려고 한다는 것. 무서운 선생님한테는 태도를 바르게 한다는 것. 흘려듣듯이 들었던 얘기였지만 또 한 번의 체육 수업 때 공 한 번 던져보고 나서 역시 발을 구르고 악 쓰듯이 화를 내는 보경이를 보았다. 화를 내면서도 내 쪽으로 힐끗 눈치를 보는 모습에 아, 이런 건가 싶어서 나도 화를 내고 말았다. 평소보다 강하게, 나는 보경이보다 크게 소리치면서 말했다. 왜 선생님이 바로 앞에 있는데 수업 시간에 악을 지르고 화를 내냐고, 너처럼 화내는 사람 아무도 없이 다들 최선을 다해서 하는데, 왜 그러느냐고 크게 혼냈다. 그제야 목소리가 줄어들면서 "아니 이게 잘 안 돼서요."하고 변명하듯이 말했지만 난 그걸 무시한 채 너 앞으로 이 태도 고치라고, 체육 수업 때 소리치고 화내는 거 한 번만 더 보이면 그냥 안 넘어갈 거라고 눈을 부릅떠가며 경고했다.


  누가 봤으면 애를 무섭게 혼낸다고 또 아동 학대니 뭐니 했으려나. 모르겠다. 다독임과 격려로 규칙과 질서를 학습시킬 수는 없다. 자기 기분 상했다고 수업 시간에 발을 광광 구르면서 악 지르는 5학년 아이를 이대로 너 알아서 커라,라고 내버려 두는 게 오히려 방임과 직무유기 아닌가. 게다가 늘 보경이의 버튼이 눌릴까 봐 신경 쓰는 주변 아이들과 교사의 문제를 생각하면 진작에 방법을 강구했어야 하는 문제였다.


  이후로 5학년 수업을 여러 번 했는데 정확히 그때 크게 혼낸 이후로 보경이의 태도는 달라졌다. 모든 활동을 웃으면서 한다. 더 이상 자기 분을 못 이겨 화낼 것 같은 기미조차 보이질 않는다. 단번에 달라진 태도를 보니까 내가 왠지 씁쓸하고 허탈하다. 너 이제 화내지 않는구나, 잘했다고 칭찬해줘야 할까. 다 지켜보고 있지만 모르는 척, 아니 반대로 모르는 척 그러나 언제든 널 지켜보고 있다는 듯이 넘어갈 뿐이다.


  아이들마다 다 다르니 고려할 점도 제각각이다. 그나마 올해는 체육이라서 덜한 편이긴 한데 이런 문제는 수월한 적이 없다. 자연스럽게 커 가는 과정이라고들 하지만 직업 특성상 여러 아이들을 보다 보니 그 틈에서 자연스럽지 않은 모습은 유독 눈에 띈다. 분을 못 이겨 발을 구르고, 짜증 내며 주저앉고, 씩씩거리며 교사를 노려보고... 하. 그동안 봤던 수많은 케이스가 스쳐간다. 차라리 우는 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울면 안 돼'라며 캐럴에 등장하는 가사는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어른이 만든 우스갯소리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난다'는 소리도 마찬가지다. 그런 아이들일수록 오히려 정신이 건강한 건데?


  분명한 건, 학교에 가면 수업에서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하는 어른이 앞에 한 명 서 있는데 그 사람이 제일 고생하는 사람이라는 거다. 교사들은 정신적인 문제와 스트레스에 늘 시달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금 시대는 자기 자식을 가르쳐줬는데 부모가 고소를 먹이는 시대니까. 부디 한 해가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며, 나는 날 응원하면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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