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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처 Sep 15. 2024

게임을 하면 싸우는 아이들

모래알 같은 재질의 아이들

  체육 수업 동안 게임을 하게 되는 건 필연적이다. 학생들에게 흥미를 불어넣기 위함도 있고, 자연스럽게 경기를 하면서 규칙과 기술을 습득하기도 하기 때문에 게임을 자주 한다. 흔히 하는 발야구나 피구 같은 것도 게임이고 그때그때 기능을 익히기 위해 수업마다 짧게 하는 변형 게임도 있다. 이를테면 팀별로 릴레이 달리기를 해서 오목(tic-tac-toe)을 두는 것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 중 하나다.

틱 택 토

  내가 올해 가르치는 학년이 3~6학년인데 3,5,6은 1학기에 가르쳤는데 2학기부터는 3학년 대신 4학년을 가르치게 되었다. 나로서도 익숙하고 내 방식에 익숙해진 5, 6학년은 어떻게 수업을 해도 대체로 무리 없이 마무리되는 편이다. 4학년은 시작 전부터 악명이 높은 학년이었는데 그게 참 의아하고 걱정스러웠다. 대체로 초등학교에서 4학년이란 가장 예쁘고, 다루기에 편한 학년이었다. 그건 아이들의 성장 단계와도 관련이 있는데 10살, 11살이면 마냥 아이 같기만 하던 시기를 지나 규칙을 중요하게 여기고, 사회성이 발달하면서 친구 관계나 선생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차츰 보편적인 방향으로 정립되어 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5, 6학년에 사춘기가 오는 걸 생각하면 4학년은 그래도 예쁜 학년이라는 게 선생님들의 통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올해 이 학교 4학년이 악명이 높은 학년이라는 건 결코 쉽게 넘겨짚어서는 안 될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한 번은 게임을 하면서 이 아이들이 참 특이하다고 느꼈던 적이 있다. 달리기를 해서 틱택토를 하는 시간이었는데 팀마다 팀조끼를 한 개씩 들고 달려가서 원하는 곳에 두고 팀이 한 줄을 만들면 이기는 게임이었다. 3판을 이기는 팀이 최종 승리였기에 반복해서 게임을 했다. 한판이 끝나고 나면 조끼를 수거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하는데 보통은 마지막 주자였던 아이가 자기 팀 조끼를 다 주워서 출발선으로 돌아가게 된다. 꼭 마지막 주자가 아니더라도, 다음 판 준비하라고 하면 체육관에서 뛰길 좋아하는 아이들은 얼른 뛰어가서 자기 팀 조끼를 싹 주워서 돌아가곤 했다. 그런데 4학년 한 반에서는 꼭 자기 조끼 한 개만 들고서 팀으로 돌아가 다음 판을 준비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러면 잠시 뒤 팀의 다른 아이가 뛰어와서 바닥에 남은 조끼를 전부 수거했다. 앞서 그 개인주의인 아이에게 이왕 가져갈 거면 너희 팀 걸 다 가져가야지,라고 말해봤지만 다음 판에도 마찬가지였다. 홀랑 자기가 둔 것만 다시 가져가는 아이였다. 팀 게임을 하는데 이런 식으로 하는 애들도 있구나, 살짝 당혹스러웠다. 체육 수업이지만 전혀 체육과는 관계없는 지점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게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또 한 번은 술래잡기를 했는데 평범한 술래잡기여도 아이들에게 도구를 쥐여주면 그 느낌이 새삼 달라지는 법이라 술래에게 스펀지로 된 스틱을 들고 친구들을 잡으러 다니는 게임을 했었다. 맞아도 아프거나 다치진 않지만 세게 때릴 목적으로 휘두르면 기분은 나쁠 수 있는 그런 도구였다. 매번 간단히 주의를 주고서 시작하는데 4학년에서는 한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남자애 하나가 울어버렸다. 술래였던 여자애가 얼굴을 향해 세게 휘둘렀다는 이유였다. 보통 사과를 하라고 하면 악감정이 남지 않는 이상 순순히 사과를 하고 우는 아이는 울면서도 사과를 받아주는 게 아이들이 하는 순수한 사과의 풍경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상이 빗나갔다. 스틱을 쥔 아이에게 얼른 사과하라고 하자 그 여자애는 "사과했는데요?"라고 받아쳤다. 남자애는 언제 사과했냐며 억울해하고 서러워하고 있었다. 그 순간에는 별 게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서 실수로 친 거면 잘 사과하고 친구랑 사이좋게 놀이를 하자고 타이르는 것으로 넘어갔다. 미처 이 아이들의 성향이나 반 분위기를 잘 몰랐기에 금방 또 뛰어다니다 보면 금세 기분이 풀릴 해프닝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일은 그것대로 넘어가고 수업을 마쳤지만 오후에 따로 보충 수업을 하는 4학년 그 반의 다른 아이한테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선생님, 걔 수연이는 맨날 자기가 잘못하고 절대 사과를 안 해요." 평소에도 아이들한테 사과 안 하기로 유명하다는 얘기였다. 이미 그 반 아이들에겐 익숙한 광경이 오늘 체육 시간에 또 펼쳐졌던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여러 모로 걱정스러웠는데 일단은 그때 그 여학생한테 단호하게 사과시키게 해서 마무리지었어야 했다는 생각, 그리고 앞으로 비슷한 경우도 또 생기겠구나, 하는 걱정이었다.


  초등학교에서 하는 게임이라는 게 정말 별 게 아닌 놀이에 가까운 활동들이다. 애초에 목적과 의미가 승부를 짓고 치열한 경쟁을 하려는 게 아니기 때문에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배움을 얻도록 하는 게 기본이다. 4학년 담임 선생님은 이 아이들을 데리고 웬만해서는 게임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툭하면 싸우기 때문이란 이유였다. 생각이 많아졌다. 분명 다른 학년의 수업 분위기와 다르게 4학년 이 아이들의 분위기에는 걸리는 부분들이 있었다. 좀 더 개인적이고 융화되지 않는 모래알 같은 재질의 아이들이 곳곳에서 마찰음을 내는 구성이랄까. 이런 아이들의 성향이란 건 단번에 해소되는 게 아니라서 나도 더 조심하고 유심히 봐야 할 긴장감 있는 수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전까지의 올해 아이들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다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인데, 그럼에도 체육 수업에서 벌어지는 것에 대해 가르칠 것은 가르치고 넘어가야만 한다. 물론 체육 외적인 부분 말이다. 경기에서의 매너라든가, 이기고 지는 것보다 중요한 마인드나 최선을 다해 즐겁게 하려는 태도, 잘못을 인정하고 패배에 승복하는 것 등. 그러면서 얘네는 게임을 좀 줄이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솔직히 든다. 일종의 유예이다. 모래알 재질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면 둥글게 깎여 더 고운 입자로 서로 어울리게 될지도 모르지 않나. 그렇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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