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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처 Oct 05. 2024

잘 아는 스포츠를 변형하기

자전거의 보조바퀴를 붙였다가 떼는 일

  아마도 전 세계적으로 공을 이용해 가장 많이 하는 스포츠는 축구일 것이다. 공 하나만 있으면 큰 제약 없이 사람 수나 골대, 경기장 크기도 환경에 맞게 적당히 정하고 해도 재밌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아닐까. 야구나, 배구, 농구에 비교하면 축구의 간소함이 더 돋보인다. 그래서 옛날엔 선생님들이 그렇게 공을 던져주고 알아서 놀아라 했는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 체육을 할 때는 잘 아는 스포츠라도 사소한 것에서부터 변형해서 경기를 하곤 한다. 아예 부상 위험은 줄이고 운동 시간을 더 늘리기 위해 만든 뉴스포츠라는 분류의 종목들이 있기도 하다. 나는 피구를 수업 시간에 거의 하지 않는데 하게 되면 공 대신 천 재질의 플라잉디스크로 하거나, 말랑말랑한 공을 2개 동시에 넣어 경기하기도 한다. 또 다른 성별의 친구가 던진 공에는 아웃되지 않게 하면 남자애들이 여자애 공을 대신 막아주고, 반대로 여자애들이 남자애 공격을 막아주는 등 경기의 양상이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바뀌곤 한다.

  초등학생에게 배구를 가르치는 것에도 모든 아이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게 기회를 주려면 그냥 배구 규칙대로 해서는 곤란하다. 당연히 네트 높이도 낮추고, 공을 배구공이 아니라 더 커다랗고 가벼운 재질의 공을 써야 한다. 공을 3번 만에 상대편으로 넘긴다는 규칙도 없앴고, 심지어 공을 한번 바닥에 튕기고 받는 것도 가능하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아이들은 끝까지 공을 쫓아다니면서 일단은 무서워하지도 않으며(공이 아프지 않으니까), 힘닿는 대로 공을 친다. 비록 처음엔 방향이 제멋대로이지만 하다 보면 점점 나아진다. 한 시간 정도 수업하면 5, 6학년 아이들이라면 공을 네트로 넘겨가면서 플레이하는 경기의 리듬을 충분히 익힐 수 있다. 오히려 너무 수월해져서 혼자서 공을 다 처리해버리려고 하는 아이들이 나오기 때문에 여기서 또 규칙을 수정하고 추가한다. 한 번에 혼자 공을 쳐서 넘기지 않기(블로킹도 금지). 팀원이 모두 한 번씩 공을 터치한 뒤 공격이 성공하면 5점 득점으로 치기. 이렇게 하면 아이들은 필사적으로 협력적인 플레이를 한다.


  그렇게 몇 번 변형된 규칙에 익숙해지면 다시 규칙을 더 타이트하게 바꾼다. 목적은 충분히 익숙해진 경기 방식에 이제는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한 것이다. 개개인의 기량도 높아져 있기 때문에 블로킹을 허용하고 최대 5번 안에 넘겨야 한다는 규칙으로 하면 이제 공격은 더 신중해지면서 나름의 득점 전략도 생각해 낸다. 이때의 경기 모습을 가만 보자면 분명 배구와는 공도 다르고, 한 번 바운드하고 받는 등 완전히 배구 같지는 않지만 의외로 방식은 굉장히 배구스러운 경기를 아이들이 흥미진진하게 하고 있단 걸 발견하게 된다.


  마치 이제 막 자전거의 보조바퀴를 떼고 신나게 내달리는 것 같은 모습이랄까. 나는 언제 보조바퀴를 뗄지, 또다시 어떤 식으로 어디까지 신나게 달려도 되는지 등 적절히 제한하고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체육을 가르치는 일엔 어느 정도 스포츠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이건 유소년 스포츠 코치의 역할과 목적과도 다르다.


  이를 테면 저렇게 변형된 형태의 배구를 진짜 배구라고 할 수 있을까. 진짜 배구가 아니어도 괜찮다. 아이들은 아마 졸업할 때까지 실제 배구공과 정식 룰로 하는 배구는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즐겁게 할 수 있는 수준의 배구를 완벽히 경험하고 있는데도 도달해야 할 최종 배구의 중간 단계인 것처럼 여겨선 안될 것이다.


  우리가 TV에서 보는, 프로 선수들이 강서브를 때리고 스파이크를 넣는 배구가 오히려 특수한 배구 상황인 것 아닐까. 각종 프로 스포츠에서는 선수들이 찰나의 부상으로 시즌을 쉬기도 하고, 자칫 경력을 마무리해야 하는 수술과 재활훈련까지 받는 모습들을 보면 운동이 승부의 세계로 다가가면서 운동의 본질에선 한참 멀리 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축구나 야구 선수들도 몇 십억 연봉 계약을 하면서 몸을 망치면서까지 경기를 뛰다 잘못되면 또 그런 운동을 재개하기 위해 재활을 해야 하는 극한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4학년 여자아이가 수업이 끝나고 나가면서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이제 체육 수업한 힘으로 영어 수업 가야겠다." 분명 영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친구인 것 같다. 살면서 스포츠는 참 중요하다. 체육을 가르치는 입장이지만 스포츠를 가르친다는 것에는 살짝 비껴 서서 바라보자는 게 내 관점이다. 수업이 반복되는 하루하루 속에서도 나도 사실 그 아이와 마찬가지의 마음이다. 지나가며 들은 그 말의 힘으로 또 남은 하루를 보낸다. 둥실 떠서 내게 바운드되어 오는 공을 나는 기쁜 마음으로 다시 건너편으로 보내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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