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다품종 체육 수업
그런데 엄연히 수업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체육이 노는 시간으로만 여겨져선 곤란하다. 매번 평가도 있고 학생들이 배울 교육과정이라는 게 있는데 아이들이 이번 시간엔 뭐 하면서 놀까, 라고만 생각하게 해선 나중에 해야 할 것들을 다 못 한다. 무용이나, 체조, 안전, 건강관리 같은 것도 다 체육에서 다뤄야 하는 부분이라는 걸 아이들은 직관적으로 잘 받아들이질 않는다.
특히 고학년이 될수록 자기들이 원하는 스포츠 종목, 피구면 피구, 배구면 배구, 이렇게 딱 종목을 찍어놓고 그걸 안 하면 실망하고 선생님이 다음번엔 해주겠지,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수업에 한 종목을 반복해서 하는 건 흥미도도 떨어질뿐더러 아이들마다 참여 의지 같은 것도 종목 따라 고착화되어 버려서 별로 좋지 않다. 또 피구야? 그냥 빨리 죽고 뒤에서 쉬어야지, 하는 경우가 나온다. 일부 소수가 운동 신경을 발휘해서 날아다니는 수업 말고 대다수가 흥미를 갖고 열심히 할 수 있는 걸 찾고 소개해야 한다. 그래서 적당히 안 해 본 것을 해보는 도전 의식도 심어주고 그럼에도 아이들이 원했던 것과의 교집합을 고심하면서 수업을 구성하곤 한다.
학기 초반에는 남녀 할 것 없이 승패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구기종목이 아닌 활동 위주로 수업을 하는 편이다. 이를 테면 여러 가지 변형된 방식의 술래잡기 같은 걸 들 수 있는데 사실 아이들의 심폐지구력과 순발력을 키우는 데엔 술래잡기만 한 게 없다. 본격 운동 전 몸풀기나 수업마무리 전 자투리 활동으로 하기에도 좋다. 수업에서 한 번 재밌게 하고 나면 아이들은 그걸 또 점심시간에 자기들끼리 하면서 놀기도 한다. 그러면 사실 체육 수업이나 점심시간이나 아이들 입장에선 똑같이 노는 게 맞다는 연결고리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내가 소개하고 알려준 걸 자기들끼리 노는 데에 써먹거나 따로 연습도 하는 걸 볼 때면 뿌듯하다.
교사 입장에서 체육 수업의 큰 장점이라고 한다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과목인 만큼 어지간하면 동기 유발이 되어 있는 채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어떤 멋진 역사적 사실을 사회 시간에 배울까, 기대하는 아이는 거의 없지만 체육은 이미 시간표에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 잡담하면서 떠드는 애들을 잡거나 지지부진하게 아이들과 입씨름을 하며 딴짓을 하는 아이를 수업 속으로 끌어앉혀야 하는 노력도 거의 필요 없다. 스스로 계속 뛰어다니면서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다른 데에 정신 팔릴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입장에서야 참 바람직한 학습자의 상태이자 수업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거시적으로 보면 수명이 늘어나고 건강의 중요성도 더 강조되는 시대에 체육 수업의 위상과 중요성도 드높여져야 하지 않나 생각도 든다. 여차하면 아이들을 위해 학교 체육 수업을 더 늘리는 방안은 어떨까. 물론 그러기엔 여러 여건 상, 시설 사용 시간의 부족이나 다른 교과와의 형평성 등 쉬운 건 아니지만 또 중요한 사실은, 체육 수업은 교사 입장에서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아이들 입장에서 농장 체험, 텃밭 가꾸기 이런 거 한 번 해보고 가는 건 즐겁고 다음에 또 하고 싶겠지만 평소 그걸 늘 관리하고 꾸려가야 하는 농부의 입장에서는 그 한 번이 다가 아닌 것과 같다. 더군다나 키우는 작물이 하나의 품종이 아닌 소규모 다품종이어야 한다면 소출에 비해 자질구레하게 신경 쓸 게 많다. 인기 있는 점포에서 끊이지 않는 손님을 응대하는 알바생 같다고 하면 왜곡된 측면이 좀 있겠지만 어쨌든 비슷한 면도 있다. 아이들 입장에선 여기가 알려진 맛집이다. 매장 매출은 나와 크게 상관없는 알바생이지만 프라이드는 생긴다.
체육으로 오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매번 날아갈 듯하다. 내가 주는 작물을 먹고 자라 나중에 어떻게 커 있을지 몰라도 골고루 먹어라, 하는 심정으로 체육 수업을 가꾼다.